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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비둘기아저씨’에서 ‘펭귄아저씨’로
  • 전순란
  • 등록 2017-02-03 10: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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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일 수요일, 맑음


아침 일찍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손과장이 새로 찾은 일터로 갔다(어제 간 곳에서는 내 차의 부품을 못 찾았대서). 가 보니 유부장이 30년 된 카센터를 인수해서 일을 시작한 곳이었다. 손과장에게 자동차 수리를 처음부터 가르쳤던 인연으로, 먼저 카센터 주인이 바뀌자 자기가 시작한 일터로 손과장을 부른 것이다. 남자들의 세계가 여자들 눈에 놀랍다. 어려서부터 골목대장과 졸병이 나눠 어울리고, 사회에서도 형님 아우 하면서 직장에 끌어가고 사업을 함께 하고, 한번 맺은 우정은 일평생 이어간다.



날씨가 추워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내 또래 부부가 있는데 유부장 부모님이란다. 금산에서 인삼, 아로니아, 쌀 등을 농사짓는데 아들이 따로 나와 시작한 사업이라 걱정이 크단다. 엄마 말투로 보아 카센터 준비자금을 대준 듯하지만 얼굴과 온몸에 기름때를 묻히고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쉬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는 아들에게 종자돈을 대줄 수 있다는 건 부모로서 오히려 복일 게다. 내 차는 부속품을 수소문해서 중고품이 구해지면 고치기로 했다. 배기가스 배출이 더 되는 것 외에 차체에는 별 문제가 없다지만 내가 마시는 고마운 공기를 더럽히는 건 큰일이다.


어제는 꿈을 찾아 낯선 세계로 날아가는 젊은이들을 보았다면 오늘은 삶의 현장을 육체노동과 기술작업으로 뛰는 남정들을 본다. 분야는 다르지만 혼신을 다해 자기 몫을 해내는 사람들은 참 아름답다. 남자들에게 할 일은 생활비를 벌어오는 곳(먹이를 물어오는 사냥터) 그 이상이며 자기를 실현하는 터전이다. 대기업일수록 ‘정리해고’에 ‘비정규직’으로 사람들의 일자리를 함부로 빼앗는 횡포는 특히 남자들에게는 일종의 살인이다. 내가 손과장을 만난 T-스테이션의 경우, 그곳 영업이 잘 되자 본사에서 직영하겠다며 일터를 빼앗고 사장과 우두머리 기술자들을 다 내보냈다. 우리나라는 잘 돼도 망하고 안 되면 꼭 망한다.



며칠 전 신청한 여권을 찾으러 구청에 갔다. 지하에 도착해서 1층 여권과로 올라가자면 화살표와 함께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승강기 쪽 여자는 뚱뚱하여 한걸음 움직이기도 힘들게 그려졌다. 그런데 계단 쪽 여자는 팔등신에 날씬하다. 계단 앞머리마다 ‘한 계단 오르는데 3초를 더 산다’ ‘걸으면 건강하다’ ‘계단을 오르면 심장이 좋아진다’는 문구가 쓰여 있는데 그걸 읽으며 오르다 보면 ‘다 오르셨네요. 어때요 상쾌하죠?’ 라는 말로 사람을 환영한다.


나이든 사람들은 몸무게가 나가니 무릎이 아프고, 그래서 덜 걸으니 더 뚱뚱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보스코도 서울에 오면 2층에서 마당에도 안 내려가고 책상 앞에 앉아 있거나 소파에 눕기만을 계속하니 갈수록 배가 나온다. 예전에 미루가 ‘비둘기 아저씨’(윗도리를 젖힌 채 뒷짐 짚고 걸으면 그 짧은 다리에 영락없는 비둘기)라고 놀렸는데 요즘엔 그가 양옆으로 약간 뭉그적거리며 걷는다고 ‘펭귄 아저씨’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언니가 어제 퇴원했다기에 반찬을 해서 언니네 집엘 갔다. 다행히 항암치료는 안 해도 된다니 그나마 고마운 일이고 언니는 생각보다 얼굴이 밝았다. 얼마간 오빠를 안 봐설까? 그런데 언니 말이 상상을 뛰어넘었다. “오늘 아침에 오빠가 내가 살아 돌아와 감사하댔어요. 입원한 날 내 수술 잘되고 큰일 없기를 열심히 기도했대요. 집에 와도 썰렁했는데 내가 돌아오니 집 같고 포근하대요. 지지고 볶으며 40년 살았으니 앞으로 15년만 탈 없이 잘 살재요” 


언니의 마지막 말이 더 놀랍다. “여자가 감격하는 것은 다이아 반지가 아녜요. 진심어린 따뜻한 자기 고백이죠” 수술마취에서 깨어나자 종이를 달래서 ‘남편접근금지’를 써서 흔들던 그 여자 맞아? 아아, 참 남녀관계란, 부부관계란 바닥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심연이다, 내가 44년을 살아보고서도.


‘주의 봉헌축일’ 저녁기도를 바치며 성모님 생각을 많이 했다. 시므온이라는 도사가 당신 아기를 안아보자며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라는 말엔 얼마나 흐뭇했을까? (“역시 아들은 낳고 보는 겨”) 그러면서도 애기 신수를 봐준다면서 “이 아기는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라는 말(“아이고 내 팔자야” 철렁하셨을 성모님)은 아기 태몽과는 너무 딴판이 아니던가?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주시어,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꿈에 본 그 천사가 그럼 공수표를 뗐나?)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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