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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지옥?’ ‘도저히 스스로 용서 못하는 뜨거운 자책’
  • 전순란
  • 등록 2017-02-08 10:01:29
  • 수정 2017-02-08 10: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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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7일 화요일, 흐림

 

서울에서 보통 일기를 쓰고 나면 밤 1. 그 시각이라도 아래층 엽이가 돌아오면 빠른 거고 3시가 넘어서 돌아오거나 밤을 꼬박 지새고서 귀가할 때도 있다. 늘 눈이 반쯤 감겨 피곤한지 휘청거린다. 얼마 전 걔 엄마가 하던 말. 모처럼 고향에 내려온 엽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엄마, 참 평화롭고 좋다. 나 시골로 내려와 살까?”하더란다. 그런데 아들의 그 한 마디에 엄마로서 비명처럼 안 돼!”라고 했단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에 걸쳐 경향신문에 게임산업 노동자 잔혹사 (1): 우리네 청춘 저물고 저물도록, 게임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는 제목으로, 엽이의 업종에 대한 기사가 났기에 관심을 갖고 읽었다.

 

구로 등대라고 불리듯, 하루 24시간 불이 안 꺼지고 젊은이들이 일하는 동네. 게임산업이라는 게 사람의 두뇌가 생산 수단이고 끝 간 곳 없는 인간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기업주는 최고의 생산을 위해 필요에 의해 쉽게 해고하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면서 그야말로 인간이 게임산업 생산의 부속품 정도로 취급 된단다.

 


10시 퇴근은 반차’, 12시 퇴근은 칼퇴’, 새벽 2시 넘어야 잔업이라니! 넷 마블에 머물수록, 회사가 성장할수록, 프로그래머는 괴롭기만 하단다. 그래서 어떤 퇴직자는 판매 시장이 아니라 가족이, 회사의 성장이 아닌 행복을선택했단다. 지난해도 구로 등대에서 세 명이 죽었는데 두 명은 돌연사, 한 명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 했다는 얘기도 있단다.

 

그렇게 힘들여 만든 물건이 시장성이 없다고 졸지에 회사부터 사라지고, 직장도 잃는 게 다반사.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구글 같은 왕서방이 챙겨가는 비참한 현실. 개발자의 비애가 내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엽이한테서 일어나기에 가슴으로 느껴온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임이 소비자 측에서 즉 현실에서는 어른 아이 모두, 집에서는 남편과 아이 심지어 아내까지 게임에 빠지고 중독되기도 한다. 요즘 포켓몬을 하는 사람들을 보는 내 눈에는, 죄다 나사가 빠져서 빠진 나사를 찾아다니는 놀이로 보인다. 인간들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고 무엇을 찾아 나서야 하는지 가치관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세상에 사는 기분이다.

 


점심에 소담정 도메니카씨가 왔다. 송목사 어머님이 보내준 새싹채소한 상자가 냉장고에 숨어 있어서 점심으로 날치알을 넣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듬뿍 넣어 새싹비빔밥을 해서 먹었다.

 

식사 후 최근에 있었던 자기 지인의 죽음, 그 죽음을 신앙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자기 고백적인 얘기를 그니와 나누었다. 같은 죽음을 놓고 떠나던 이가 평소와는 달리 모든 것에 고마워하고 모든 사물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며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이는 그 죽음에 전혀 공포가 없는데, 평소에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모습만을 보아왔던 사람의 방에 들어서니 옆에서 자기를 떠미는 거북함이 느껴지더란다. 죽은 이의 문제일까? 살아남은 내 느낌뿐일까?

 


늦은 밤 보스코와 그 얘기를 나눴는데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정말 악당(최순실처럼)이 아니라면, 모두 구원하시리라는(어쩜 최순실도) 결론이 나온다. 심판 혹은 영벌이라는 것은 오로지 선하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앞에서 자기의 부끄러운 삶에 대한 끝없는 후회, 도저히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뜨거운 자책이리라는 보스코의 신학적 해석.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휴천재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다짐하게 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윤동주, 「서시(序詩)」에서)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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