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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6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7-02-11 21:21:05
  • 수정 2017-02-11 21: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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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집회 15,15-20)

<아무에게도 불경하게 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 참으로 주님의 지혜는 위대하니 그분께서는 능력이 넘치시고 모든 것을 보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굽어보시고 사람의 행위를 낱낱이 아신다. 그분께서는 아무에게도 불경하게 되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고 어느 누구에게도 죄를 지으라고 허락하신 적이 없다. 


시편(118)

행복하여라,

주님의 법을 따르는 이들


제2독서(1코린 2,6-10)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


형제 여러분,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복음(마태 5,17-37)

<옛 사람에게는 그렇게 일러 주었었으나 나는 달리 말하노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연중 제6주일 독서·복음 해설


제1독서(집회 15,15-20) 해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다>


이 대목에서는 사람에게는 어디까지나 자유의지(선택의 자유)가 있음을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이처럼 사람이 지닌 선택의 자유를 명시적으로 말한 예는 매우 드물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하느님께 속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하느님께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욕심에 따라 살려고 남을 무시하고 착취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시대나 사람의 죄와 참상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고 하느님을 거부하고 저주하는 수가 많다. 세상 안의 온갖 불합리나 불의를 마치 하느님께서 몸소 저지르기라도 하신 듯, 실망에 빠지고 포악해지는 수가 많다. 그러나 집회서의 저자는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자율성과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사람이 공동체 안에서 이기심과 착취와 미움과 분열과 싸움을 택하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주고 가진 바를 나누고 화해하고 단합하고 평화를 이룩하든지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 선택의 자유가 없다면 사람의 사람다운 알맹이가 빠져버리는 셈이다. 사람이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려고 노력할 때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는 것이다.


시편 (118) 해설

<행복하여라, 그 길이 온전한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걷는 이들!>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사람의 노력을 요구하는 선택인 동시에, 하느님께서 당신께  자신을 맡기는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쁜 소식을 받아들일 수 있음도, 그리하여 새로운 하느님 나라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음도 순전히 사람 스스로의 힘으로부터 우러나올 수 없다. 끊임없이 새로이 찾아 나서고 거듭 힘겨운 선택과 결단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하느님의 말씀과 씨름하고 고뇌하고 자신을 극복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제2독서(1코린 2,6-10) 해설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


바오로는 자기가 하느님의 지혜를 선포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그 지혜는 욕심 사나운 사람들이 꾸며낸 지혜가 아니다. 그 지혜는 하느님께서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열어 보이시는 지혜이다. 홀로 하느님의 생각을 모조리 알고 계신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사람들만이 그 지혜를 마음으로 몸으로 체험하듯 절실하게 느끼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자랑하고 싶은 말쟁이 뿐인 사람의 아는 체 함도 실은 그 내용이 텅텅 비어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만이 당신 정을 받아 느낄 수 있고 마음으로 당신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런 사람은 누구인가? 각자가 항상 스스로를 반성하고 회개하여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순박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신 마음을 쏟고 그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신다. 따라서 회개하여 가난한 사람들 속에 비집고 들어올 수 없다면 그는 하느님의 지혜를 누릴 수 없다. 인류 구원의 주역은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느님께서 그 사람들을 사랑하고 당신 성령을 보내어 당신의 마음을 깨닫게 해주신다.


욕심 부리고 자랑하려는 지혜는 거짓 지혜이고, 사람들 사이에 정을 맺어주고 함께 배고프고 천대받고 아파주는 마음의 전달만이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 지혜다.


복음(마태 5,17-37) 해설

<옛 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히브리인 신자 대부분이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 한 가지는 구약의 율법에 관한 예수님의 태도와 교회의 태도였다. 예수님 시대에 율법은 온갖 지혜 가운데서도 가장 숭고한 지혜로 간주되고 있었다. 흔히 율법을 하느님의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계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태오는 자기 복음서 5,17-48에서 율법 전반에 관한 예수님의 태도와 입장을 설명해 보려고 한다.


마태오 17-20절이 서론으로 나온다. 먼저 예수님께서 여러 경우에 여러 가지로 하신 말씀을 수집한다. 우선 율법에 관한 정당하고 적극적인 평가는 고대의 전승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예수님의 말씀으로부터 비롯되는 율법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17절은 예수님의 처신과 태도가 율법을 무효화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음을 전제한다. 실상 복음서들을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 규정을 지키지 않고 정결 예식(손을 씻어야 하는 등)의 규범을 지키지 않으면서 바리사이들과 실랑이와 입씨름을 자주 벌이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율법을 폐지하러 오지 않고 완성하러 왔다고 명백히 밝히신다. 언뜻 보기에 예수님께서 율법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서론 부분을 마치고 “옛 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는 형식으로 일련의 ‘반명제들’이 나온다.


21절: “살인하지 말라”는 제5계명을 제시하고, 그 금지 계명의 참된 뜻을 밝히고, 살인의 근본 뿌리는 사람에 대한 무관심·외면·싫어함·무시·천대·억압·착취·미움임을 명백히 밝히신다.


27절: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제시하고, 남성이나 여성을 당신이 생명과 피를 바쳐서 얻으신 하느님의 자녀로서 존경하지 않고 감히 자기 욕구 충족을 위해 이용하려는 마음가짐부터가 벌써 간음임을 명백히 밝히신다.


31절: 이혼에 관해서, 결혼은 예사 일이 아니고, 경이로운 하느님의 창조사업이요, 남녀가 서로 기대면서 구원받는 길을 가야하는 구원사업이므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감히 사람이 풀 수 없음을 명백히 밝히신다.


33절: 사람이 맹세할 수 없음은, 아무도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구원받은 사람으로 자신하거나 교만할 수 없음이요, 언제까지나 조금도 남보다 낫다고 자랑할 수 없음이요,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은 하느님의 권한을 침범하는 것이며, 누가 하느님의 자비와 온정을 더 받는가를 판단할 수 없음을 명백히 밝히신다.


묵상


율법과 자유와 지혜


하느님의 계명과 사람의 자유 사이의 관계라는 문제는 인류가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다. 사람은 자유롭고 선과 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기에 사람이고, 자기의 선택과 결정에 책임을 져야하기에 사람이다. 한편 윤리와 자연법은 그의 양심에서부터 울려나와 삶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시는 규범들이 사람의 양심을 사람다운 양심으로 길러주고 있다. 인류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구원의 길을 달리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인류 대부분인 가난한 사람들을 통하여 오늘에도 수난하고 피 흘리며 인류를 화해와 일치로 이끄신다.


충실성 여부는 각 사람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다.


구약성경 가운데서 집회서만큼 사람의 자유를 뚜렷하게 밝힌 예는 없을 것이다. 전쟁·학살·빈곤·영양실조·환경오염·생태계의 파괴로 하루에도 수만 명씩 굶어죽고 병들어 죽어가는 참상, 노예노동에 동원된 어린이들과 창녀들이 처한 참상의 탓을 하느님께 돌리고 하느님을 향해 주먹질을 할 것인가? 이럴 양이면 왜 사람과 세계를 만드셨냐고, 열 번 죽어도 시원할 듯싶은 내 목숨을 왜 만드셨냐고 눈망울을 부릅떠 반항할 것인가?


그러나 소수의 이기심과 불의의 결과로 시달리는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원망과 절망에 빠지지 않고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묵묵히 비장하고 감동스러운 행진을 감행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힘・바위・피난처・몫이 되어주시기 때문이다. 무정하고 무심한 하느님이 아니라 당신의 사람들이 매 맞는 아픔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함께 매 맞는 하느님 아버지, 그 하느님께서 몸소 소수의 불의한 자들에게 채찍질을 하고 그들을 돌아서게 하여 그들에게서 돌 심장을 빼내고 살 심장을 넣어주어 인류를 화기애애한 가정으로 만드실 것이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십자가의 길을 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깨달음과 그들의 노력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몸소 벌을 내리고 용서하고 화해하게 하고 일치하게 하는 수술 작업을 행하고 계신다. 이렇듯 사람의 자유는 깊디깊고 귀하디귀한 것이다.


“옛 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양심은 하느님의 법률이다. 사람은 누구나 얼마나 그 양심을 무디게 하지 않고 올바른 양심으로 살았느냐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양심을 사람이 생겨난 목적을 지향하는 올바른 양심이 되게 하여 무한히 들어 높이신다. 양심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무한히 발전되고 완성된다. 개인 양심이 깨끗해지고 높여지는 단계와 사회적 양심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실정법도 모두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완성을 향하여 끊임없이 개선되어야 한다. 국가·국제 정치 경제 구조와 체제와 법률은 인류의 양심 상태를 반영한다. 인간과 인류는 하느님께서 주신 고귀한 자유와 선택의 능력을 잠재우지 말고 갈고 닦고 발휘하고 끊임없이 개선과 개혁을 단행하여 인류의 양심을 그리스도의 마음 자체로 바꾸어가야 한다. 이것이 인간과 인류가 할 일이고 사명이다. 불의한 기존 현상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데 급급한 자세가 아니라, 단호한 결심으로 없앨 것은 없애고 보존할 것은 보존하여 개선하고 발전시키려는 전진적이고 투쟁적인 자세가 먼저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강력히 발휘되어야 한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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