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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기도하고 일하라!”
  • 전순란
  • 등록 2017-02-15 10: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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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4일 화요일, 맑음


참 힘도 좋다. 우리는 11시에 방으로 들어왔고 새벽 미사에 갈 생각에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는데 안신부님과 젊은이들 몇은 밤을 꼬박 새우고 놀았다. 얘기 소리, 웃는 소리, 박수소리에 나까지 잠을 잤는지 샜는지 머리가 띵하다. 나에게도 밤새우며 놀만큼 재미있던 젊은 날들이 틀림없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가물가물 기억조차 없다. 그래도 총장 신부님 휘하여선지 6시 40분의 아침미사에는 모든 신학생들이 참석했다.


역시 젊어서 좋고 기운이 좋아 잘 버티는 것 같아 부럽다. 빵기도 서울 오면 발표문 준비로 밤을 꼴딱 새우고 새벽에 집을 나서곤 하는데 그를 보는 내가 더 졸립다. 그래서 모든 일에 우리 늙은 사람들은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젊은이들이 하는 일을 소리 없이 맘으로 응원해 주는 정도가 좋겠다. 청춘은 아름답다! 그리고 힘차다! 



오늘아침 유튜브에 “김천의 박X 신부 박근혜 어쩌구 큰절하다”라는 동영상을 보고 너무 놀랐다. 우리 집에 몇 번 다녀갔고 우리도 그를 찾아가 식사도 함께하던 전직사제인데, 애들 말로, 그야말로 ‘또라이짓’ 아닌가! 서석구 변호사가 대표로 있다는 단체 신자들이 그를 가리켜 ‘자기들이 찾던 참 목자’라는 말에 더는 할 말이 없다.


저녁늦게 전화한 빵고신부에게 저런 사람이 전화해 오면 “딱 자르고 상종을 않겠다”니까 “엄마, 그분은 자기의 성무정지와 박근혜의 직무정지를 똑같은 것으로 보고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청와대를 향해 사랑한다고 큰 절을 했을 거에요. 얼마나 불쌍해요? 그런 사람을 누가 받아주고 상대를 하겠어요? 그냥 모르는 척 받아주면 ‘아~ 이 사람들은 자기와 생각이 달라도 인간적인 분들이구나’ 하든지, ‘뭐야? 순 빨갱이인 줄 알았는데 속으로는 우익인사였구나’ 하고 동질감과 존경을 표할지 누가 알아요?” 작은아들 표현에 깔깔거리며 역시 젊은 세대는 우리보다 덜 경직되고 유연하구나 싶어 걔 말이 낫게 들렸다.


엊그제는 ‘박근혜가 김정남한테 대북 비밀라인을 대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더니 오늘은 김정남이 독침을 맞고 죽었다는 소식이 뜬다. ‘박이 나하고 선을 대려 했다고?’ 하면서 김정은이 김정남을 제거하라는 지령을 내린 것일까? 세상 제대로 돌아가는 꼴이 별로 없다.


아침식사를 하고 수녀님과 신학생들이랑 분도수도원을 한 바퀴 산보했다. 예전 70년대엔 담밖으로 수도원 소유의 논밭도 있었고 배밭과 복숭아밭도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땅이 점점 쫄아드는 형국이다. 출판사가 있던 건물은 사람들이 모두 서울로 가고 영업부와 스테인 글라스를 하는 집은 아직도 일을 하고 있다.



94세로 그제 돌아가신 노신부님의 빈소에도 들렀다


특히 목공소에 계신 수사님은 보스코를 보고 무척 반가워하셨는데 70년대에 ‘신학전망’을 교정보러 보스코가 오던 수도원이니 40년 넘는 세월을 알고 지내던 수사님이다. 그분은 18세에 입회했는데 지금 78세라니 60년의 긴 세월을 ‘기도하고 일하라!’는 사부님의 한 마디로 살면서 톱밥과 나무먼지를 마시며 톱질과 대패질로 목공일을 해 오셨구나 존경스러웠다. 무슨 일이라도 한 가지 일을 변함없이 한 평생 해나가는 게 이 수도원의 전통이라는 보스코의 설명. 이 수도회가 유럽 문화를 간직했다 전수시켰다는 사실도 바로 1500년 세월이 쌓여 이룬 업적인 듯하다.


1시에는 모든 행사가 끝나고 마무리가 되었는데 1975년에 보스코의 대학원 논문을 지도한 정달용 신부님이 ‘중세철학회’에 참석차 도착하셨다. 그분에게 강의를 들었던 제자들도 여럿 학회에 왔고, 중세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도 대부분 보스코가 서강대 중세철학 교수로 있으면서 알았거나 학위논문심사에 참석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스승과 제자가 자연스레 이어지고 세대가 바뀌는 광경이 보였다. 


어제 하성수 박사가 분도출판사 ‘교부총서(敎父叢書)가 사실상 (돌아가신)이형우-성염 총서’라고 하던 농담처럼(현재 24권 발행된 총서중 이형우 아빠스의 역주서가 7권, 보스코의 역주서가 9권이다) 저 긴 세월 날마다 열 시간 넘는 오랜 시간을 지치지 않고 책상을 지켜온 보스코가 자랑스럽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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