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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카이로스 2017을 놓치면 우리는 망한다!
  • 전순란
  • 등록 2017-02-22 10: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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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0일 월요일, 새벽에 비 낮엔 맑음


겨우내 지리산에 눈다운 눈 한번 안 내렸고, 비라도 온다던 날조차 서너 방울 빗물을 겨우 찍어 바른 하늘을 본 게 전부다. 내 이런 불만을 알았던지 오늘 새벽엔 회리바람으로 창문을 뒤흔들더니 ‘우수’의 빗소리에 이불은 끌어 올리고 마음은 쓸어내리며 새벽잠에 빠졌다.


휴천재 마루의 봄 (매화, 진지아난, 칼랑코에)




빗소리에 고른 숨을 쉬는 아침 창밖으로 온 세상이 샤워하고 있다. 우산을 쓰고 밭으로 내려가 가늘디가는 양파 모종들이 주리고 마르고 힘없어 우유조차 못 넘기는 소말리아 어린이들처럼 널브러진 모습을 보며 여린 싹을 쓰다듬는다. “비가 온다, 비야. 한 모금만 넘겨보려무나” 하지만 땅속과 나뭇가지 생명들이 봄맞이를 준비하는 기운이 사방으로 느껴진다.


요즘 모든 것이 놀랍도록 빨리 돌아가는 시간대에 살며 여태까지와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요즘은 수시로 핸드폰 뉴스를 검색하면서 간절함을 담아 깊은 한숨을 쉬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기회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몰라 온 맘을 다해 공을 들이는 우리들 간절한 마음이 모이면 하늘도 움직이겠지.


뒷머리를 붙잡을 수 없는 ‘시간’ 또는 ‘기회’


오늘 본 책에서 그리스신 제우스의 아들로 ‘기회의 신’ 카이로스가 등장한다. 카이로스는 앞머리는 무성하지만, 뒷머리는 대머리에다 벌거벗은 모습이다. 어깨에는 커다란 날개가 있고 다리에도 작은 날개가 달렸다. 옷을 벗고 다니기에 사람들 눈에 잘 띄는데 앞머리가 무성해서 그가 누군지 쉬이 알아채지 못한다. 그가 ‘기회’라는 걸 알아챈 사람은 쉽게 그의 머리칼을 쥐어 잡을 수 있지만 ‘아차’하고 지나쳐 버린 순간 그의 머리채 잡으려면 뒷머리가 대머리여서 다시는 잡을 수 없단다. 더구나 등과 발에 달린 날개로 휘리릭 날아가 버린다.


한신시절 성서신학 강의에서 째깍째깍 여일하게 가는 ‘크로노스’ 시간과 한번 놓치면 다시는 얻지 못하는 ‘카이로스’ 시간을 구분하라 하시던 안병무 교수님 말씀! 주님이 오셔도, 한 민족에게 구원의 기회가 닥쳐도 때를 알아보지 못하면 망한다! 사회적으로 너무 어수선하여 모두가 정신이 없지만, 병신년을 쫓아내고 우리가 맞은 2017년을 놓치면 암울한 절망만 남을 게다.


효소단식을 지도하고 돌아와 보식이 겨우 끝난 미루가 점심에 휴천재에 왔다. 굴죽을 만들고 밭에 나가 겨울을 난 봄뜸을 뽑아와 데쳐서 나물을 했다. 시금치, 미역 무침을 했는데 그니의 보식을 가늠해서 절간에서처럼 들기름과 간장으로만 간을 했다. 단식을 하면 모든 음식의 본 맛이 그대로 살아난다. 양념을 덜 쓰고 심심하게 하면 평상시 잊었던 음식 맛을 살려준다.



아랫집 도메니카 1도 왔다. 셋이 모두 건전한 좌파이기에 우리끼리는 얘기가 잘 통한다. 보스코는 요즘 태극기 집회의 늙은이들을 보면서, 박근혜를 편들어 헌재에 나선 변호사들의 추태를 보면서 늙는 게 오욕으로 느껴진단다. 삼청교육대 재가동하여 저 늙은것들 싹 쓸어 넣고 싶다는 말까지 주변에서 나오지만 그건 “보수여 일어나라, 군대여 일어나라! 계엄만이 살길이다” 하는 말과 진배없다. 그래서 보스코더러 “당신은 아우구스티누스 번역하는 일 외에 절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세상사는 누구 말대로 65세 미만들에게 맡기라”고 다그쳤다.


밤에 소담정 도메니카가 뉴스룸을 보러 왔는데 끝부분에 안희정이 ‘뉴스대담’에 나왔다. ‘이명박이건 박근혜건 선의로 시작했는데 그 선의가 현재 수사에서 다 드러난 불의가 되고 말았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면서 어제의 사단을 해명하였다. 해부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을 취합과 통섭으로 가야 한다나. 아마 ‘중도세력’을 껴안겠다는 말 같은데, 그러나 정치가나 지도자로서 매 순간순간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결단하여 행동으로 옮겨야 하므로 입장이 다르다. 개인으로는 잘못하면 자신의 잘못으로 혼자만 망하는 데 그치지만, 정치가는 자신 하나의 생각으로 인해 사회와 국가의 명운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지도자의 생각은 자신 하나의 것이 아니다.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지만 실생활에 적용해야 할 철학적인 기반이 약한지, 전달이 어려운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못하기에 자꾸 꼬이는 듯하다. 다수가 “이 사람은 아닌데...” 하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까?


뉴스가 끝나고도 도메니카와 10시 너머까지 얘기를 나눴는데 서로의 마음 깊은 속을 나누다 보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스인들 얘기처럼, 알면 사랑하게 되는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대로, 사랑하면 알게 되는가? 10년 전 출판한 보스코의 퇴직 논문집 제목이 「사랑만이 진리를 깨닫게 한다」였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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