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 NEWS.VA > 의 2월 19일자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원제 : 교황 삼종기도 강론서, ‘정의와 복수를 명확히 구분해야’ ) - 편집자주
지난 19일 주일 삼종기도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의 법칙을 뛰어넘는 사랑의 법칙을 통해 진정한 정의의 길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그리스도 혁명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대목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오래된 이 (보복의) 법칙은 범법자에게 그 사람이 일으킨 피해와 동일한 처벌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죽인 사람에게는 죽음을, 타인을 다치게 한 이들에게는 신체의 절단을 부과하는 것이 바로 이 법칙이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악에게 굴복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보다는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악에 대해) 또 다른 악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선함으로 대응하라고 말씀하셨다. 오로지 이러한 방식으로만 악의 사슬이 끊어질 수 있으며 (…) 진정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은 어떤 것의 부재, 즉 선함의 부재이며 부재는 또 다른 부재로 채워질 수 없고 오로지 충만함으로만, 다시 말해 선함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 보복은 절대로 분쟁의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 ‘네가 나한테 이렇게 했으니, 나는 너에게 이렇게 할 것이다’라는 식의 태도는 어떤 분쟁도 해결하지 못 하며, 이는 그리스도적인 태도가 아니다”라고 복수 논리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어서 “예수께 있어, 폭력의 거부는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는 일을 내포하고 있기도 한데, 예수께서는 이에 대한 몇 가지 예시를 보여주고 계신다. 이를테면 (한 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내어주라거나 자신의 외투나 돈을 준다거나 다른 종류의 희생을 감내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포기하는 행동이 정의에 대한 요구가 묵살되거나 부정 당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와 정반대로, 이는 그리스도적 사랑을 의미하며 이러한 사랑은 특별히 자비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이는 더 높은 차원의 정의 실현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정의와 복수에 대한 명확한 구별이다. 복수는 절대로 정의롭지 못 하다. 우리는 정의를 요구할 수 있으며, 정의를 실천하는 것은 우리 의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복수란 증오와 폭력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복수를 감행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이러한 복수를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정의와 복수의 구별에 대한 필요성과 복수의 폭력과 증오의 성질에 강조했다.
“예수께서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사회 질서를 선포하려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선포하고자 하신 것이며, 여기에는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는 것도 포함된다. ‘네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 물론 이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말은 원수가 행하는 악을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선과 악에 그 분의 해를 비추시고 정의와 불의에 비를 내리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닮은, 더욱 고귀하고 자애로운 관점을 권유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원수조차도 비록 지금은 그 모습이 온당치 못한 행동으로 가려져 있지만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 존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정의와 정의를 실천해야 할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교황은 “원수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우리와 다르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떠올릴 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이나 때로는 우리 친지들과도 분쟁하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자. 얼마나 많은 원수들이 가정 내에 있겠는가! 이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자. 우리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우리를 비방하고 모욕하는 원수가 있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우리는 이 모든 것에 선함으로 응답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것이며, 이러한 선함 역시 사랑으로 말미암은 자신만의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자기 성찰을 요구하고, 원수와 원수의 본질에 대해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가 이 어려운 길을 따라 예수님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또한 우리가 인내와 대화, 용서를 실천하고 일상 속에서, 가정 안에서 일치와 인류애를 빚어내는 장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하며 강론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