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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8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7-02-24 15:04:29
  • 수정 2017-02-27 10: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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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이사 49,14-15)

<나는 너를 잊지 않으리라>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시편(61)

내 영혼아, 

오직 하느님을 향해 말없이 기다려라 


제2독서(1코린 4,1-5)

<주님께서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복음(마태 6,24-34)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연중 제8주일 독서・복음 묵상


제1독서(이사 49,14-15) 해설

<내 너를 아니 잊으리라>


시온을 위로하는 이 노래는 제2이사야서에 나오는데, 하느님께서 자기를 버리셨다고 실망하는 말로써 시작한다. 일찍이 바빌로니아에서 귀양살이하던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장래를 어둡게 생각하고 있었다(40,27). 외부 상황으로 보아서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듯싶고, 하느님께서 아주 포기하고 버리신 듯싶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감동스런 표현으로 시온을 향한 당신의 변함없는 격정적 사랑을 역설하면서 안심시키신다. 어미가 젖먹이 자식을 잊는 일이 있을지 몰라도 당신은 시온을 아니 잊으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인 가난한 사람들을 어미가 젖먹이에게 애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애지중지하신다. 가난한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에 처하고 절망에 빠지려는 순간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겨 의탁할 수 있는 분이 바로 그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서 강력하신 팔로 울부짖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출해내실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그리스도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누룩 역할을 한다. 교회는 바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출해내시는 하느님의 강력한 팔이신 그리스도의 사명을 이어받고 있다. 


다시 말하면, 가난한 사람들 자신이 성령께서 구원활동을 펴시는 무대요, 그리스도께서 애지중지 구출하고 구원하시려는 대상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결정적으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자녀로 맞아들이려고 벼르시는 사람들이다.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 안에 끼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 외형적으로 세례를 받은 신자들의 공동체도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깨우칠 중대한 임무와 사명의 차원으로 자기 신분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를 자기 안에 품고 있으면서, 자기 역시 그리스도를 안다고 명시적으로 자부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와 닮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요 넓은 의미에서 커다란 하느님의 백성이라 할 수 있다.


시편 (61) 해설

<당신께서는 저에게 피신처, 원수 앞에서 굳건한 탑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신뢰하며 사는 사람은 자기에게 들이닥치는 고초와 난관과 박해가 어떤 것일지라도 낙담하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를 아끼고 보호하는 분이 바로 강력한 팔을 지닌 하느님이심을 알고 마음 든든하다. 그런 사람은 재물에 의탁하지 않고 그릇된 권력에 빌붙지도 않는다. 그는 하느님 안에서 고이 쉴 줄을 안다.


제2독서(1코린 4,1-5) 해설

<하느님의 심오한 진리를 맡은 관리들>


코린토 신자들이 기쁜 소식의 내용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설교자들이 지닌 외적인 매력과 인기에 쏠리고 파벌을 만듦으로써 공동체의 일치와 단합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바오로는 꾸짖는다(3,1-4). 그런 태도가 복음을 설교하는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이며 평가인가? 설교자들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느님의 심오한 진리를 맡은 관리인’에 지나지 않는다. 사도들과 설교자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을 펴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시와 진리를 설파하는 중대한 임무를 띠고 있는 사람이다. 관리자에게 요구되는 첫째 임무는 주인이 맡긴 것을 주인의 뜻에 따라 충실히 관리하는 일이다. 제멋대로 바꿔치거나 처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3-5절에서 바오로는 관리인들이 받을 심판에 대하여 말한다. 허황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선포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관리인의 의무다. 그 의무를 다했는지의 여부는 아무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판단하실 자격은 오직 하느님께만 있다. 하느님만이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 얼마나 충실하고 정직하게 살고 있는가의 가치판단은 오직 하느님께서 하실 일이며, 사람으로서는 늘 겸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복음(마태 6,24-34) 해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산위에서 행하신 설교’ 부분에서 마태오는 일정한 순서 없이 주님의 ‘말씀’을 수집해 놓고 있다. 루카 복음서에도 그 설교가 나오지만 그 문맥이 다르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공통적인 명제를 정한다면 ‘의향의 단순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오직 하느님을 섬기는 데만 온 힘을 기울이고, 그 외에 허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24절에서는 자기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양다리를 걸칠 수 없음을 강조한다. 하느님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맘몬’을 선택하든지 양자택일이 있을 따름이다. 하느님을 대적하는 맘몬은 재물로 나타난다. 하느님의 것인 재물을 자기 것인 양 착각하고 자기만을 위해 차지하고 거침없이 소비하는 생활태도로 나타난다.


25-34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근본적으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재물욕, 욕심은 덧없는 것이다. 가지면 얼마나 더 가지며, 한 끼에 밥을 몇 그릇씩 먹을 수 있으며, 옷을 몇 벌씩 껴입을 수 있는가? 창고에 곡식을 그득 쌓아놓아 보았자 그리고 은행에 돈을 한없이 쟁여보았자 또 집을 몇 채씩 가지고 땅을 몽땅 가져보았자 그것이 얼마나 속편할 일이 되는가? 재물로 세도를 부리고 다른 사람보다 유능하다고 평가받고 다른 사람을 부릴 수 있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것이 좋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것은 사람이 너무 걱정이 많기 때문이다. 죽으면 그만일 재물욕과 지배욕에 매달리고 꼬락서니가 불쌍한 하느님이시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께서 애지중지하면서 먹을 만큼 먹이고 입힐 만큼 입히려고 마음먹고 계신데 말이다. 사람은 다만 서로를 위해주고 당신이 주신 것을 골고루 나누어 사용하면 그만인 것을 말이다. 사람을 정말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서로 친해지고 정을 나누는 자녀들의 기쁨일 뿐이다.


묵상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속이거나 실망에 빠뜨리는 하느님이 아니시다. 충실한 분이고 구원을 내리는 분이시다. 그분은 하늘의 새들과 들꽃보다 사람을 더 아끼는 분이시다. 그러니 쓸데없는 집착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날고 뛰어 보았자 우리는 그분의 손아귀 안에 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에 온전히 따르고 몸 바치면 그만이다.


내 너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인류는 바야흐로 극에 달한 비참과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하여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어디 숨어 계시는가? 하느님께서 인류를 아주 버리신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주저하거나 지체하지 않고 충실하고 영원한 사랑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야 말 것이다. 어미가 제 젖먹이를 잊는 일이 혹시 있을지 몰라도,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한시도 잊지 않고 계시면서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는 당신 백성을 굽어보면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피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지금 막 자포자기에 빠지려는 천덕꾸러기·병신·가난뱅이들의 눈물이 그분의 마음을 울리고 펄떡 펄떡 뛰게 만들고 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울부짖고 있는 당신 아들을, 온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굽어보시면서 가슴을 쥐어뜯고 계신다. 그분은 당신 아들을 구하러 지체 없이 당도하실 것이다.


공중의 새들을 보고 들꽃을 보아라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아끼지만 그중에서도 사람을 특히 아끼신다. 그리고 사람을 통해서 다른 피조물을 아끼신다. 사람은 다른 피조물들을 아껴주면서 자신도 하느님께 아낌을 받게 되어 있다. 사람이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하느님도 사람을 지켜주고 아껴주신다. 지상의 재물과 사물을 그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고 이기심과 욕심의 도구로 삼으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 하느님의 뜻을 저버린 사람에게 다른 어디서 행복과 기쁨이 나올 것인가? 우리가 물질 때문에 부모나 또는 친구와 마음을 상하고 나면 씁쓸하고 계속 기분이 언짢듯이, 하느님의 것인 재화를 하느님의 뜻대로 쓰지 않고 하느님과 마음이 상하고 나면 다른 무엇으로 그 상한 마음을 기워 갚을 수 있을 것인가?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무엇보다 앞서 추구해야 할 것은 하느님의 나라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을 어버이로 모신 자녀들의 가족이다. 인류는 하느님의 가족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고 운명 지어져 있다. 무엇보다 앞서 인류의 단합을 추구하라는 말씀이다. 인류의 화해와 합심을 추구하면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다. 결코 굶기거나 헐벗게 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미 이 땅 위에서 행복과 기쁨에 찬 하느님 가족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하느님의 나라로 거처를 옮겨 영원을 누리고 노래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올바르다고 여기시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요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사랑과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부족함이 없도록 마련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지니고 있는 특징은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첫째로 책임과 사명을 떠맡는 것을 뜻한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다. 자기의 주장과 사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활방식을 표양으로 전해야 한다. 무작정 사람들의 비위나 맞추려 눈치를 살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진리를 용기 있게 주장하고 관철시켜야 한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의 비평이나 욕지거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옳은 길을 꿋꿋하게 달려간다. 그리스도의 참된 일꾼일진대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서 자기를 통해서 부담 없이 수난과 박해를 당하실 수 있어야 한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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