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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아기로 잠깐, 엄마의 엄마로 잠깐’
  • 전순란
  • 등록 2017-02-27 09: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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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6일 일요일, 맑음


와이파이가 안 되서 애를 먹다 새벽 3시 30분에 스캔을 해서 일기를 겨우 보스코의 이메일에 보내고 눈을 붙였다가 7시쯤에 눈을 떴다. 9시 미사를 드리고 미리내 유무상통에 엄마를 보러가야 해서 일정이 빡빡하다.


어린이 미사는 여전히 시끄럽고 정신없었지만 생동감이 있어 좋다. ‘오정현’이라는 커다란 이름표를 단 꼬마는 미사 내내 아예 ‘관중석’으로 돌아앉아 저하고 똑같이 생긴 형하고 싸우고 주먹질하고 떠들고 하다가도 성가가 나오면 성당이 떠나가도록 악다구니로 부른다. 내가 ‘관중석’에서 보기에도 (왕년의 주일학교 교사로서) 속이 터지는데 ‘무대’ 위의 신부님은 아무 말씀이 없다. 내공이 짱짱한 건지, 둔한 건지 알쏭달쏭…


영성체 시간이면 첫영성체를 안 한 꼬마들이 우루루 먼저 나와 신부님의 안수강복을 받는데 그 말썽꾸러기도 투우처럼 뛰어가 머리를 들이밀고 신부님 역시 아이와 비슷한 자세로 강복을 주신다. 신부님도 어렸을 때 딱 저 모습으로 컸으리라는 게 내 추측이다.



보스코의 말로도 저런 애들이 복사단으로, 중고등부에도 나오고, 청년반에도 나타나서 주일학교 선생도 하고, 어른이 돼서는 각종 신심회도 사목회도 할 거란다. 사제성소, 수도성소도 저기 저 말썽꾸러기석에서 나온단다. 우리 눈에도 저렇게 이뻐 보이니 아아, 쟤들을 점지하신 하느님 눈에는 얼마나 어여삐 보일까? 또 그분 능력이면 쟤들을 갖고 뭔들 못하실까?


복음은 하느님의 섭리인데 신부님 강론은 생뚱맞지만 재미있었다. “예전에 본당 주일학교 경비를 보충하려고 일 년간 매주 복권을 샀는데 기껏 5천원이나 만원에 당첨된 게 고작이었다”, “이 본당 오기 바로 전 성당에서는 가까운 곳 복권판매소가 영험하다고 매주 복권을 사러 오는 자동차로 그 일대 교통이 몸살을 했다”, “내 경험으로도 같은 자리에서 열 번 벼락을 맞는 편이 복권 당첨보다 확률이 높더라” 강론을 듣던 내 생각은 하느님께 우리 동업해서 매주 복권에 당첨돼 좋은 일에 좀 쓰면 안 될까요? 묻고 싶은데, 아주 나쁜 생각은 아닐 것 같은데, 하느님과 동업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실 것 같다. 왜냐하면 그분은 복권당첨 대신 가난한 과부의 동전 한 닢을 기어이(?) 받아내신 특별한 취향을 가진 분이기 때문이다. 



유무상통 엄마한테 도착하니 막 점심을 시작하는 시각! 엄마는 3층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고 나는 이모 식탁으로 갔다. 이모가 식판을 앞에 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 ‘왜 그러세요?’ ‘먹기가 싫어서 그런다.’ ‘이모, 조카가 반찬으로 왔으니 어여, 시작합시다.’


옆자리 할머니가 요즘 우리 이모가 좀 이상해졌다고, 말도 안하고 식사 때도 저렇게 가만히 앉아있다고 귀띔한다. 이모도 ‘왜 이리 오래도 사는지?’ ‘언제나 죽을 수 있을지?’ 그 생각뿐이라며 탄식한다. 그동안 이모 앞에 앉아있던, 안성에서 오셨다던 할머니도 우울증으로 아래층 ‘효도병원’에 입원했다니 우울증도 노인들 사이엔 감기처럼 전염성이 높은 병이다.


반면에 세상에 걱정근심 없는 우리 엄마는 우리의 복이다. 아침마다 전화기에 대고 “충성!” 하는 딸의 구령에 “효도!”라고 큰소리로 답하는 엄마! 그래서 요즘은 되레 엄마가 성하고 건강하셔서 아들딸에게 ‘효도’를 하신다. 나야 한 달에 한 번 뵙지만 엄마와 보내는 시간을 시인이 참 잘 간추렸다. 


... 

우린 그렇게 서로에게 잠깐 꽃으로 피었었네요

엄마로 잠깐, 아기로 잠깐

아기로 잠깐, 엄마의 엄마로 잠깐…(수영, ‘우리의 잠깐’ 『우리시 2016년 7월호』)


엄마방의 와이파이가 작동이 안 돼 일기 써 보내는 일도 어렵고, 보스코도 전화로 빨리 내려오라 보채서 오후에 서둘러 내려왔다. 오늘 엄마한테서 자고 내일 오겠다던 내가 휴천재 마당에 조용히 차를 세우고 살그머니 서재에 “짠!”하고 나타나자 화안하게 밝아오는 보스코의 얼굴! 그를 보고 이리 마음이 놓이니, 여기서도 내 배역은 “아내로 잠깐, 엄마로 잠깐”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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