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 주교황청 전 한국대사의 '선거 영성'에 대한 칼럼을 총 4편으로 나누어 연재합니다. - 편집자주
우리 인류가 탄 배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연초에 “지구의 종말을 밤12시로 잡는다면 지금 시침은 23시 57분 30초를 가리키고 있다. 작년보다 30초가 앞당겨진 까닭은 전 세계에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핵무기의 사용과 확대를 부르짖은 트럼프의 미대통령 당선 때문이란다. 1953년 이후 종말인 자정에 가장 가까워졌다”라는 신문 기사가 떴다.
“지구가 침몰하고 있어요! 갑판으로 올라오세요!”라고 미래학자들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데 우리는 여전히 “움직이지 말라”는 세월호 선실에서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마태 24,38-39) 뒹굴고 있지 않나? 인류의 운명을 염려하는 고함 중에는 우리가 몸담은 가톨릭교회 수장의 음성이 유난히 크게 들린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섯 번이나 거듭한 한 마디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됐소!”가 ‘프란치스코 충격’이라는 용어로 세계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가 그 한 마디를 특히 귀담아 들어야 할 이유는 하필 2014년 8월 18일, 명동성당에서 방한 마지막 미사를 드리고 서울비행장에서 이륙한 비행기에서 그 발언이 처음 나왔다는 점이다. 중국을 봉쇄하는 듯한 해군기지가 제주 강정에 건설 중인데다 박근혜 정권이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남한에 사드를 들여옴으로써 교황의 우려는 현실적인 불안이 되었다. 더구나 언론인들은 미국이 두 번째로 이라크를 침공하던 날(2003.3.20.), “다음 차례는 북한!”이라던 영국수상 토니 블레어의 연설을 잊지 못하고 있다.
중동보다 더 위태한 ‘세계의 화약고’ 한반도의 장래를 좌우할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국제사회가 권유하는 6자회담은 뒷전으로 미루고 대북 선제공격을 ‘검토’하고 있는 미국의 트럼프 정권, 해마다 휴전선에서 두 차례 열리는 한미연합군 군사훈련, ‘김정은 제거 특수부대 창설’ 운운하는 국방부, 재래무기로는 남한의 상대가 못 된다는 현실에 핵무기 하나에 의존하는 북한 정권, 성주군 사드배치로 인한 미중 긴장고조 등은 참으로 신중한 국민의 선택을 요구한다.
신앙인이라면 특히 북핵문제로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 사태를 넓게 주시하며 당사국들의 평화와 대화를 요청하는 교황들의 조언은 경청할 만하다.
“남북 긴장완화를 달성하려면 산적한 현안 문제들 외에도 대량살상무기 특히 핵무기가 점진적으로, 평등하게, 또 결연하게 폐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평화를 담보하는 최고법은 오로지 상호신뢰입니다”(성요한바오로2세 2003년).
“한반도를 비핵화하려는 노력은 어디까지나 협상의 틀 안에서 추구되어야 합니다. 그에 못지않게 (대화가 북한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 돌아갈 인도적 지원을 좌우하는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베네딕토 16세 2007년).
“바로 이것이 제가 한국 방문을 마치며 여러분에게 남기는 메시지입니다. (한반도의) 모든 한국인이 같은 언어로 말하는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 (…) 이제 대화하고, 만나고, 또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하도록 합시다.”(프란치스코 2014년)
신앙인이라면 우리가 날마다 바치는 ‘평화의 기도’를 함께 실천할 정치가, 개성공단을 재개하여 북한의 숨통을 틔어주면서 긴장을 완화시키고 북한을 6자회담에 끌어낼 인물, 이를 토대로 동북아에 평화의 바람을 불어올 세력을 뽑아야 할 것이다. 6·25 참화에서 우리가 배웠듯이, “전쟁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