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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성염] 세월호가 우리를 침몰시켰다(?)
  • 성염
  • 등록 2017-03-02 10:46:48
  • 수정 2017-03-02 11: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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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밝힐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곽찬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집회나 천주교 미사에서 인사를 하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한결같은 호소는 “잊히는 게 두렵다”는 한 마디였다. 지난 3년간 주류 언론이 나서서 국민들로 하여금 이 사건을 잊게 하려고 온갖 술수를 부렸기 때문이다. 신앙인들 눈으로 보면, 세월호에서 희생된 젊은이들과 남겨진 유가족은 2014년 4월에 한국 땅(바다)에서 공권력과 언론에 “강도 맞은 사람들”이다. 그것도 처음에는 방송3사의 24시간 생중계 앞에서 강도를 맞았다!


2014년 4월 16일의 참사는 대한민국 역사의 갈림길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나타난 무능·무책임한 정부의 행태, 진실을 어떻게든 은폐하려던 언론들, 세월호 유가족들을 공격하는 우익 집단들의 행패는 이 사회 기득권자들의 가면을 벗기고 민낯을 보여주었다.


그나마 다른 한편으로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젊은 죽음과 가족들의 울부짖음에 공감하며 ‘진실 규명’을 위한 행보에 지지·성원을 보내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전국곳곳에 노란 리본이 물결을 이루어 우리 겨레가 얼마나 인정 많고 이웃과 동고동락하는 민족인지를 드러냈다.


그해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은 세월호로 시작해서 세월호로 끝났다. 서울공항에서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시면서 세월호 유가족 손을 잡았고, 대전에서도 광화문에서도 말없이 그들의 손을 잡고 아픔을 나누었다. 


“가톨릭신자들은 현대 세계 안에서 정의를 수호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성취한다”(세계정의, 50항)는 가르침대로,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발설하는 가톨릭신자들의 양심은 신자 개개인의 구원과 영원한 멸망을 판가름한다는 가르침을 내린 것이다. 각자의 시국관에 따라 멋대로 할 문제가 아님을 깨우쳐주었다. 교구마다 추모미사를 거행하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한 주간도 빼놓지 않고 시국미사를 올려왔다.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교황님, 거 노랑리본 좀 떼세요. 남세스럽지 않으세요?”라는 기자 질문에 “타인의 고통 앞에서는 중립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한 마디는 대한민국의 현시국과 인류사에 길이 남길 명언이 되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강도 맞은 사람들을 피해서 길 반대편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세월호 법을 두고 유가족이 양보하라!”), 강도당한 사람들을 걷어차고 욕하고 침 뱉는 사람도 있다(“시체 장사 그만해라! 돈 수억씩 벌었다며?”). 신자 대통령과 신자 비서실장은 거국적 사건에 손을 털었다(“청와대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 “그날 9시 45분 이미 손써본들 소용 없었다!”, “대통령은 할 일 다 했다!”).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의 손을 거듭 잡았다고 해서 “갈등 분열 조장하고 떠난 교황”이라고 욕한 가톨릭명의의 단체도 있다. 그 단체는 서울 명동성당 입구에, “교황이 (…) 세월호 유가족을 다섯 번 만나게 한 강우일 주교를 파문하라!”는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평소 선량하고 열심한 교우지만 구체적 ‘정치 사건’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이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만다.


드디어 탄핵 정국에 들어서면서 세월호 침몰 후 처음 9시간 대통령의 행적이 탄핵의 핵심 사안이 되었다. 지난 해 총선 전만 해도 200석 개헌선을 장담하던, 견고한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을 무너뜨린 것은 세월호였다! 그럼에도 일부 국민은 아직도 “세월호가 어때서?”라고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대선정국에 들어섰다. 이번 대선은 ‘세월호 투표’이기도 하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가족에 대한 동정을 표하고, 사건의 진상과 책임소재를 밝히고, 공권력의 책임을 인정하려는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진상조사를 방해한 집단, 유가족의 호소를 묵살하고 침묵한 정치인은 그 매몰찬 인간성으로 보아서도 국가지도자로 뽑히면 안 된다. 단언컨대, 이번 선거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할 국가의 일차적 임무를 확인하는 일이다.



[필진정보]
성염 : 주교황청 전 한국 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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