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기] ‘먹는 게 남는 거’라면 ‘내가 쓴 것만 내 재산’
  • 전순란
  • 등록 2017-03-06 11:14:35

기사수정

2017년 3월 5일 일요일, 맑음


이젠 7시 30분 미사 시간에도 세상이 훤하다. 먼 산의 눈도 골짜기나 나무 밑에만 실낱만큼 남아 지나간 계절이 겨울이었음을 말해주고, 냇가의 실버들 가지가 연두로 달아올라 지금은 봄이라고 일러준다. 도랑가 차돌을 들추면 겨울잠이 덜 깬 개구리가 부시시 고개를 든다.


장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를 해 주시니 마음 한가득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고해성사를 보고 나서도 내게 주신 말씀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는다. 오늘 사순절 첫 주일 복음이 유혹사화여서 신부님은 하와가 유혹받는 장면을 들어 “인간은 하지 말라면 유난히 더 하고 싶어지는 유혹을 받는다”며 주어진 것에 감사할 때 유혹에서 멀어진다 하셨다.



초등학교 산수시간 선생님이 꼬마에게 물었단다. “사과가 다섯 갠데 세 개를 먹었다면 몇 개가 남았겠니?” 꼬마는 망설임 없이 “세 개요” “왜?” “할머니가 먹는 게 남는 거라 했어요” 그렇다면 우리 재산도 ‘내가 쓴 것 만 내 것’이라신다. 죽고 나면 남은 재산은 어차피 다 남에게 남겨지니까 ‘내가 살아있을 때 쓴 재산만 내 것’이고, ‘선행에 쓴 재산만 영원히 내 것’이라는 강론말씀은 참 설득력 있다. 살아생전 다 써보지도 못할 기하급수적인 재산들, 다 놓고 떠날 텐데 남의 재산 때문에 최순실 같은 사단이 난 것 아닌가! (그니의 명의로 된 재산만 수천억이라지 않는가.)


이번 최순실 사건을 보면서 못된 짓 하다 쇠고랑 찬 인간들 대다수가 ‘서울대 출신’이다. 낙원에서처럼, 좋은 머리가 절대 좋은데 안 쓰이고 어쩌면 하나같이 못된 짓에만 그 머리를 쓸까! 서울대는 없어져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오늘 최재천 교수가 쓴 「생명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에 ‘동물도 거짓말을 한다’편에서 “동물도…”라면 “인간은 당연히 거짓말을 한다”라는 전제가 붙는단다. 저자가 서울대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던 시절, 학생들이 낸 레포트의 상당수가 내용이 똑같은 걸 발견하고 고민을 했단다. 처벌 학점을 줘버리면 간단했겠지만 학생들 역시 “재수 없어서 당했다”고 투덜거리며 끝날 것 같았다.


그래서 학생들을 한 명씩 만나 “능력 있고 복 받은 자네가 더 가지려는 이런 모습은 훨씬 덜 가진,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이들에게 무거운 죄일세. 그래도 한 가지 약속만 하면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하겠네. ‘지금 이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정도(正道)만을 걷겠다고 나와 약속하게. 그래도 자네가 굶어 죽는 일은 결코 없을 걸세” 아마 그 학생들도 교수님도 영원히 잊지 못할 면담이었고 졸업 후로도 그 학생들과는 지금껏 연락이 오간단다. TV 앞에서 거짓말 하는 저 서울대생들이 이분에게 배웠더라면…


내가 이 얘기를 들려주자 보스코도 학창시절의 얘기를 해준다. 신약신학 시험에서 두 신학생의 답안지가 거의 똑같았더란다. 중간고사 없이 기말에만 시험을 치루니 학점이 안 나오면 그대로 퇴학이라서 둘도 없이 친하던 친구들끼리 도움을 주고받았던가 보다. 우리 한신에서도 그랬지만 신학교에선 교수님이 문제만 내주고 감독이 없이 시험을 보므로 부정행위는 그대로 퇴학을 의미한다. 


때마침 성경 ‘원전비판’을 강의한 교수신부님이어서 두 답안지에 원전비판을 가하여 원본과 사본을 밝혀내고서 두 학생을 불렀더니 한 명이, 서품 전 마지막 학년이지만, 자퇴하고 신학교를 떠났단다. 남은 한 명은 사제가 되었는데 아깝게도 1년 만에 주님 품으로 떠났단다. 두 사람도 최재천 교수를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오후에는 오늘도 밭일을 했다. 보스코는 배나무 나머지 잔손질을 하고 자른 가지들을 모아서 치웠다. 나는 요한나 아줌마가 조각낸 감자에 재를 한껏 묻혀서 멀칭한 이랑 세 곳에 심었다. 한 조각 감자에서 자식들이 주렁주렁 매달릴 여름을 기대하며 감자위에 흙도 수북하게 덮어줬다. 남은 밭 한 골엔 호박고구마를, 다른 한 골엔 야콘을 심을 생각이다. 밭이랑을 타고 앉아 넘어가는 태양 아래 저 풍요로운 자연을 건너다보는 난 엄청 부자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