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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봄눈, 너무 늦게 온 사랑’
  • 전순란
  • 등록 2017-03-08 10:05:51
  • 수정 2017-03-08 10: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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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7일 화요일, 새벽엔 눈 종일 맑음


봄눈이 내리는 날

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에 무덤을 열고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

나의 사람아 (정호승, “봄눈”)



아직 보내기엔 준비가 덜 된 미련이, 밤새 하얀 눈이 되어 미처 피지 못한 동백 꽃송이 위에 쌓이는 아침. 동백이 무슨 죄냐, 때가 되어 몽우리 져 기다리고 있었을 뿐인데! 추위야, 이별이 미처 정리되지 못했다지만 새순이 났다고 눈 흘기고 꺾어서 무엇하랴! 곧 녹아버릴 일이기에 봄눈이 내린 뜨락과 앞산 기슭이 서글프다. ‘봄눈’은 공원의 나무의자 한쪽 끝에 한 송이 붉은 장미를 들고 ‘너무 늦게 온 사랑’을 애틋하게 기다리는 노신사.


새벽부터 책상에 앉아 자판기를 토닥거리는 보스코에게 서재의 커튼을 열어주며 ‘어쩌면 올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봄눈을 보여줬다. 보스코가 서강대 철학과 동료교수 박병준 신부와 통화를 하다 오늘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성환 배 밭에 사시면서 몇 번이나 아들신부의 동료교수들을 초대하여 융숭한 점심대접을 해 주시던 분인데 이분도 봄눈이 녹듯이 떠나셨다…….



그가 학술원에 제출한다면서 서류를 준비하느라 바쁘기에 아침을 차려주고 나는 또 인월로 갔다. 소나타를 고쳐 줄 때까지 가겠노라 했으니 가야지. 사람이야 자기가 어디 아픈지 말도 하고 살다보면 자연 치료도 되지만, 차는 사람이 아픈 데를 찾아 고쳐줘야만 먼 길 달리는 나도 별 탈 없을 테니까… 그 불친절한 기사님(?)은 늘 바쁘단다.


“차가 아픈데 나을 때까지 와야죠” “어제와 똑같이 할 일이 이렇게 쌓여 있다구요” “기다릴 테니 할 수 있을 때 하세요” 사무실에 들어가 책을 펼쳤다. 책을 읽으면 서너 시간이야 잠깐 가니까 자리를 잡고앉아 보는 사람 없이 혼자 떠드는 TV도 껐다. 


내가 쉽게 포기하고 갈 것 같지 않아선지 그 남자가 초크 같은 걸 하나 들고 와 보여준다. “이게 범인인 듯 한데 역수입차라 한국엔 없고 프랑크프르트로 부속 보내라는 오더를 하시고, 부속이 오면 고쳐주겠다. 우선 헌것을 깨끗이 청소해서 끼우겠다. 또 불이 들어오면 이젠 오지 말고 아예 ‘현대 센터’로 가시라!”


시골 초보 기술자로서 ‘그깐 고장 하나 못 고쳤다’며 자존심이 팍 상했다는 말투에, 나도 그 일로는 더는 안 갈 생각을 먹고 차를 몰고 돌아오는데 차가 먼저 알고는 집에까지 다 오도록 아직 체크 등이 안 뜬다! 그냥 끌고 다녀도 된다니, 암을 지니고도 늙어 죽을 때까지 사는 사람도 많다는 생각에 그냥 타기로 하였다.


‘사드’ 거치대가 어제 밤 기습적으로 도착했단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주권국가가 아니다. 트럼프가 ‘언제라도 북한에 핵공격을 하겠다’는데 그걸 좋아라 쌍수를 흔드는 저 늙은이들은 제정신일까? 저들이나 우리는 살만큼 살았으니 죽을 만도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과 후손들은 불쌍해서 어찌할까나? 행여 지구 반대편에서라도 핵무기를 써서는 안 될 판에, 손바닥만 한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터진다는데 얼쑤얼쑤 춤추는 저들은 누굴까? (사태의 본질을 김동춘 교수가 잘 간추렸다)


미국 핵 공격에 북한 주민만 죽지는 않는다는 게 지난번 북한의 고체연료 미사일로 확인되었는데? 북에도 미국에도 제 정신이 아닌 이들이 하나씩 있어, 3년 전 한국을 방문하고 떠나면서 “제3차 세계대전 벌써 시작했네요”라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탄식이 현실로 다가온다. 원전 폭발만으로도 남쪽 끝 조금만 남기고 국가 전부가 오염돼 서서히 죽어가는 일본을 보고도 못 배웠는가? 


최순실만으로도 충분히 망한 이 정부가 바닥을 치는 정도가 아니고 무덤을 파고 국민 전부를 끌고 그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조선시대도, 일제시대도, 해방 후에도 민족과 국가를 파탄내면서 기득권만 지켜온 저 무리지만 한겨레 다 죽고 한반도 다 핵으로 오염된 다음 어디 가서 살겠다는 말일까?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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