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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당신, 언제부터 이렇게 의식화됐어?”
  • 전순란
  • 등록 2017-03-10 10: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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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8일 수요일, 아침엔 눈바람, 오후엔 맑음


아침에 내 일기를 읽어보던 보스코가 뜬금없이 묻는다. “당신, 언제부터 이렇게 의식화됐어?” 그러면서, 지리산 산골에 사는 육십 대 후반, 농사꾼 아줌마 어투가 아니란다. “좋은 남편 만나서 그리 되었죠” 라고 하면서도 나도 내가 그리된 게 언제부터인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한신’에서 그런 토양이 최초로 갖추어졌다. 한참 민감했고 인지가 커갈 나이에 문익환, 문동환, 안병무, 이우정 교수님들을 모시고, 그 선생님들 가르침대로 민주화의 선봉에 서던 선배들을 바라보고 컸으니… 그런 토양 위에 심겨진 나무를 보스코가 거름 주고 키워냈달까? 


광화문 촛불집회의 젊은 커플들 사이에 서로 놀라 주고받을 물음이겠다. “우리 언제 이렇게 의식화됐지?” 부부는 식성과 얼굴만 닮는 게 아니라, 가치관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한다. (그리고 대한문 앞 늙은 부부들에게서처럼 함께 파멸할 수도)



<경향신문>에 12세의 시리아 소년 얘기가 나온다. 시리아 내전 6년 동안 그 전쟁의 고통에 노출된 아이들만 300만이라니! 소년이 구호활동가에게 물었단다. “죽음이 뭔가요?” 아버지가 차량폭탄 테러에 목숨을 잃은 소년은 아버지와 가족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을까요?” 묻는 소년에게 “아마 천국에 가셨을 거야”라고 위로를 했단다. 소년은 얼마 후 스카프로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했다. 죽어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천국에 갈 수 있기에….


감내할 수 없는 재앙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나약한 어린이일수록 ‘독성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자해하거나 자살하는, 정신적 신체적 자기파괴가 일어난단다. 이들을 치료해야 할 병원조차 90퍼센트 이상이 정부군, 러시아군에 파괴되었단다. 그들에게 ‘국가가 무엇이고 정부는 무엇인가?’


오늘 28세의 한화그룹 셋째 아들이 술집에서 부린 행패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고 80시간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는 뉴스. 언젠가 아들이 술집에서 술 먹고 행패부리다 매를 맞았다고 아비가 야구방망이와 가죽장갑을 끼고서는 내달아 ‘돈 줄 테니 너희 좀 맞아라’며 술집 종업원들에게 방망이질을 하고 돈을 던져주었다던 기사가 기억난다. 가치관이 그릇 전수되어 부자간에 함께 파멸하는, 대한민국의 졸부의 적나라한 모습일까?


아버지가 죽자 자기 목을 스카프로 조른 전쟁터의 아이, 술집에서 행패 부리던 아비를 똑같이 닮은 아들.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은 어떤 상황에서 건 어떤 형태로 건 가능하지만 부성애든 모성애든 올바른 가치관을 물려주지 않아 동물만도 못한 인간들의 비참한 얘기들을 본다. 



느티나무 독서회 모임. 최재천 교수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가 오늘 우리가 나눈 책이다. 이 책에도 물론 동물의 사례지만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


우리가 익히 아는 가시고기 수컷은 암컷이 알을 낳아 놓으면 암컷은 쫓아버리고 그 알 위에 정액을 뿌리고, 또 다른 암컷을 찾아 알을 얻는 일을 반복한 후 배다른 자식들을 자기 새끼로 정성스레 돌보고 키운단다. 아빠가 자식이 다 자랄 때까지 업고 다니는, 독침 개구리도 있다. 해마는 암컷이 수정란을 수컷의 배주머니에 낳아주고 가버리면 그 자식을 정성스레 키워 낸단다. 캥거루는 마음에 드는 암컷 앞에 배주머니를 열어 보이며 ‘당신이 나를 선택해 준다면 이 포근한 주머니 속에 당신의 귀여운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드리겠어요’라고 유혹하며, 암컷이 낳은 새끼를 배주머니에 받아들여 잘만 키워 낸단다. 하찮다고 동물을 깔 볼 일 아니다.



드디어 헌재의 탄핵선고 날짜가 잡혔다. 누구 앤지 모른다고 세간에 소문난 딸 하나를 위해 국정이 농락되고, 공산주의자였다 전향한 아비의 반공이념 하나만을 배워선지 ‘블랙리스트 국정’이 운영되고, ‘북한의 자동 붕괴’ 하나만 믿는다더니 극동화약고에 사드를 들여오고, (김무성의 탄식대로) 70년 기득권 세력을 통째로 무너뜨렸다고 보수언론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여자… 드디어 ‘박근혜 없는 봄’을 국민이 맞나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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