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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시선] 공감능력 상실, 한국 사회 만연한 핵폐기물
  • 최진
  • 등록 2017-03-17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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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로부터 영화를 통해 청년들에게 세상을 전하는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아직 청년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실험극장 ‘i-시네마테크’ 상영에 대한 내용을 살폈다. 


▲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는 지난 15일 ‘청년, 영화로 세상을 바라보다’를 주제로 실험극장 ‘i-시네마테크’를 출범했다. ⓒ 최진


첫 상영작의 이름은 피터 갤리슨, 로브 모스 감독의 ‘핵의 봉인’이라는 영화다. 낯선 이름이다. 고민 없이 참가 신청을 했다. 탈핵 문제에 적극 참여치 못한 죄책감이 담긴 결정이었다.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는 ‘청년, 영화로 세상을 바라보다’를 주제로 15일부터 매월 셋째 주 수요일 오후 7시에 이 행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장소는 서울 마포구 예수회센터 이냐시오 카페다. 1층이고 주변이 한산하므로 찾기 쉽다.


‘실험극장’이란 행사 성향과 ‘핵’이라는 단어가 친근했다. 이냐시오 카페도 친근했다. 주최 측은 방문객을 과하게 반기지도, 그렇다고 방치하지도 않았다. 수다가 한창인 커피숍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누워서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중간에 자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지만, 괜히 했다. 누워서 보는 자리는 일찍 온 새들이 이미 둥지를 틀었다.


▲ 영화 ‘핵의 봉인’ (사진출처=redactedpictures.com)


모든 추억을 생매장한 땅, ‘후쿠시마’


후쿠시마. 일본 땅 한 지명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차츰 기억 속에서 흐려지던 러시아 체르노빌의 계보를 잊는 죽음의 땅. 영화는 이 후쿠시마를 통해 오늘날 퍼지고 있는 핵의 향기를 청년들에게 전했다.


핵이 퍼지고 있다며 자신에게 달려온 아들. 그러나 도주의 끝자락에서 노인의 몸은 이미 방사능에 오염됐다는 판정이 나온다. 그리고 노인은 죽음의 땅에 홀로 남았다. 


피폭된 소들을 어떻게 죽이겠냐며 정부의 도살 명령에 저항하는 농부. 소를 팔아 돈을 벌어온 그였지만, 아직 살아있다며 풀을 뜯는 소들을 차마 ‘처분’할 수 없었다. 그도 그 땅에 남는다.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던 장소에 들러 추억을 설명하는 여인. 식탁에는 최후의 만찬에 사용됐던 간장통 하나가 허망하게 놓여있다. 


사람의 온기는 사라지고 기껏해야 추억만 남았다. 남겨진 사람이 떠올리는 추억과 도망쳤던 사람이 떠올리는 추억이 모두 후쿠시마에 생매장됐다. 그 추억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땅이 후쿠시마다. 


▲ 영화 ‘핵의 봉인’ (사진출처=redactedpictures.com)


핵폐기물 재앙 알려야 하는 시간, 최소 ‘1만 년’


미국도 나온다. 핵무기를 개발한 장본인이자, 최대 핵보유국. 핵에 대해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다. 적어도 한국보다 오랫동안 핵을 다뤘고 많은 핵을 가진 ‘핵 선배’다. 이 선배가 쩔쩔매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핵을 ‘봉인’하는 방법이다.


앞서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사실 중 하나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점이다. 후쿠시마를 통해 핵이 낳은 죽음의 향기를 전했다면, 미국 핵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내가 다큐멘터리 영화다’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준다.


핵 관련 전문용어가 쏟아진다. 그러나 내용은 크게 어렵지 않다. 핵심은 아직 인류가 핵을 봉인할 방법을 못 찾았다는 것이다. 숱한 방법이 나오지만 막연하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는 거침없이 핵을 사용하고 그 폐기물을 만들고 숨긴다.


핵폐기물이 막연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시간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핵폐기물을 봉인해야 하는 시간으로 1만 년부터 수십만 년까지 제시한다. 이 기간에 핵폐기물은 건드려선 안 되는 공포 그 자체다. 따져보니 신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가 대략 1만 년이다. 핵폐기물은 앞으로 최소 1만 년 후까지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이 죽음의 덩어리를 1만 년 뒤의 후손들에게까지 전해야 한다.


그래서 1만 년 후를 예측해야 하는 학자들은 두렵다. 신석기 시대 원시인이 스마트 폰 사용설명서를 만들어야 하는 꼴이다. 고민이 생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왜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처럼 핵을 소비하고 있을까’.


▲ 영화 ‘핵의 봉인’ (사진출처=redactedpictures.com)


공감능력 상실, 우리 사회의 핵폐기물 


후쿠시마를 통해 드러나는 죽음의 단절. 미국 학자들의 고뇌 등을 살피며 영화가 끝나자, 다시 이냐시오 카페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실이다. 문제는 영화가 실화를 소재로 제작됐다는 것이다. 착잡하고 무거운 상황은 스크린이 아닌, 현실에서 상영되고 있다. 


핵의 봉인에 대한 문제는 오늘 우리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문제다. 관속에 들어갈 때까지는 물론, 뼈조차 남지 않았을 1만 년 후에도 남아있다. 그것을 지금 우리가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심각성을 우리 사회, 나부터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i-시네마테크는 공감을 넓히려는 목적으로 출발했다. 주최 측은 자식이 죽어 통곡하는 부모를 보며 조롱의 글을 적어대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공감의 부재로 봤다. 함께 사는 이들의 슬픔도 공감하지 못하는데, 세상 어떤 아픔과 공감하겠는가. 공감능력의 상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핵폐기물이다.


그래서 상실되는 공감을 확대하기 위해 청년들을 초대했다. 젊은이들이 공감 능력을 회복해야 미래가 따뜻할 수 있고, 그래야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i-시네마테크는 ‘핵의 봉인’을 시작으로 공감에 대한 지향을 두고 고민과 노력을 해나갈 심산이다. 


▲ 영화가 끝난 뒤 상영작과 관련해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 최진


영화가 끝난 뒤에는 상영작과 관련해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그것도 누워서, 커피와 츄러스를 제공받으며 말이다. 이런 호사를 누리는데 드는 비용은 없다. 공짜다.


사실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청년이라고 보기 힘든 어르신도 있었다. 내가 봤다. 그러니 누구든지 현관문을 열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 대신 선착순 40명이다. 4월 i-시네마테크는 19일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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