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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문정마을 ‘전설따라 삼천리’
  • 전순란
  • 등록 2017-03-22 10:57:07
  • 수정 2017-03-22 11: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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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21일 화요일, 맑음

 

어젯밤 비 온 끝이라 웬만하면 하늘이 맑을 텐데 중국에서 오는, 도움이 안 되는 미세먼지가, 사드 보복과 풀 세트를 이루어 우리를 괴롭힌다. 지리산에서도 맑은 하늘 보기가 일 년 내내 어렵다. 이탈리아도 사하라사막에서 날아오는 먼지가 그곳 토질을 개선하듯, 중국의 먼지가 우리 토양을 개선해왔다는데, 그 나라가 성급히 공업화하는 바람에 황사현상이 공해가 되고 말았다.

 

요즘 세상이라는 게 맘에 안 든다고, 트럼프처럼 국경에 담을 싸놓고 살 수가 없고, 멍청한 박근혜 때문에 사드로 맘고생 몸고생 하는 국민더러 중국 매연과 미세먼지가 싫으면 외출을 삼가고 집에만 있으라는 정부의 대답에 기가 막힌다.



엊그제 장 신부님 댁에서 회식하는 자리에 마르타 아줌마가 문정발 전설따라 삼천리를 들려주었다. 아줌마들이 밭 매면서 동네 이름에 붙여 부르던 노래가 먼저 나왔다. 세동에 새를 잡아, 쑥구지 숯불에 구워, 한남의 함지박 담아, 언터 어른 얼렁 갖다드려라!” 세동도 한남도 인근 마을이고 숯꾸지는 우리가 사는 문정리 옛 이름으로 근처에 흔하던 참나무 숯을 구워 팔아 그리 불렸고, 언터는 저 아래 원기(原基) 마을의 본 이름이다.

 

재밌는 얘기도 해달라고 졸랐더니 세동 효녀를 들려주며 실화란다. 세동에 살던 효녀가 함양읍으로 시집갔더란다. 어찌나 엄니가 보고 싶던지 캄캄한 그믐밤에 겁 없이 함양고개에 올랐단다. 그런데 고개 위에 커다란 호롱불 두 개가 있어 그걸 따라오라는 말 같아 한 고개를 넘고, 다른 고개에 이르면 고개위에 다시 호롱불이 나타나서 그걸 따라 고개를 넘고, 그러기를 밤새 하다 보니 그 호롱불이 세동 친정집 싸리문 앞에 멈추더란다. 너무너무 고마워 가까이 가니 휘익 돌아서서 저만치 가는데 호랑이더란다.




그 새댁의 딸이 아직도 백연마을에 사는 임영근이 마누라란다. 그 꼬부랑 할매는 나도 아는 분인데 동네 할매들은 그 얘기들을 하고 또 하면서 엄니가 보고 싶어도 못 가던 세월(동네 아짐들 대부분이 삼십리 안팎에서 시집왔다)을 달래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가밀라 아줌마도 한가락 거든다. 제동댁이랑 날이 막 풀려 쑥 뜯으러 진이네 염소막쪽으로 올라갔는데, 커다란 바위 옆 높다란 나무 위에서 까치가 요란스럽게 울더란다. 가까이 갈수록 더 큰 소리로 난리를 치더란다. 그래서 바위 밑을 내려다보니 누런 짐승이 숨어 있었는데 호랑이 같더란다. ‘에그머니나하고 오금아, 날 살려라도망쳐 왔단다.

 

아래층 진이엄마도 27년 전 (남편 토마스는 생업을 위해 통역을 가서 없고) 혼자 토종벌을 보고 흑염소를 치던 때 얘기를 한다. 비가 엄청 쏟아지던 깊은 밤 염소가 비를 피해 움막으로 잘 들어갔나, 염소막은 문이 열려있나 걱정되어 염소막에 갔더란다. 그걸 보고서 염소막 있는 바로 그 곳이 범밭골이라면서 아직도 호랑이가 나온다고 동네 할매들이 절대 가지 말라고 난리더란다. 진이엄마도 그 얘길 듣고서는 밤에 더는 못 가겠더란다. 말하자면 낮에 일하고 어둔 밤에는 집에서 편히 쉬라는, 내일은 내일 몫의 또 다른 고생이 기다린다는 배려 같다.

 

나도 지리산 휴천재에 지붕 얹은 지 24, 주민등록을 옮긴 지도 10년이 넘었으니, 지리산 호랑이, 백두대간 끝자락 청룡등뼈’(우리 휴천재의 집터를 지관地官들이 그렇게 부른다)를 기웃거릴 커다란 누렁이와 한번쯤은 통성명해야겠는데 요즘은 호랑이는커녕 동네 하룻강아지도 안 보인다.

 

오늘 하루 종일 이 나라 견찰이 사람으로 환생할 마지막 기회를 잡을까 눈여겨보는데, 전혀 기미가 없다. 3억 혐의를 받은 노무현은 봉하마을로 잡으러 갔는데 800억 먹은 박근혜는 청와대 차량으로 호위해 왔고, 헌재가 파면한 죄인은 대통령님이라 경칭하면서 헌재가 기각한 대통령은 노무현씨!’라고 불렀다니, 전직대통령은 대검에서 수사했고 파면대통령은 지검에서 수사하고, 뇌물죄 하나에 엮인 사람은 3시간마다 범행일체를 현장 중계 했는데 13가지 중죄는 일체 브리핑이 없었다! 박근혜를 구속수사하라는 국민여론 70%를 우롱하는 세력이 정말 역겹다. 역시 타고난 천성에 길들여지니 바뀌는 일이 쉽지 않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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