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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예배당 찬송가와 성당 성가는 왜 그리도 분위기가 다른지!
  • 전순란
  • 등록 2017-03-27 10:30:37
  • 수정 2017-03-27 10: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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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6일 일요일, 맑음



어제 토요미사에서 성가를 목청껏 부르던 아들 덕분에 인사를 많이 받았다. ‘목소리가 좋다’느니, ‘정신이 번쩍 났다’느니 하여 목소리가 엄청 크다는 말로 들린다. 개신교에서 열정적으로 노래 부르던 환경(찬송가를 시작하면 끝 절까지 다 부른다)에서 가톨릭으로 건너오니 죄다 성가를 부르기 싫어 죽겠다는 시늉들이고(성가를 한 절만 부르거나 두 절 부르면 하느님께 대단한 생색이다), 누가 큰 소리로 노랠 부르면 오히려 ‘이 교우 왜 이래?’라며 쳐다보는 분위기다.


내 주변에 가까운 사람 두 명이 음치다. 고등학교와 청년 시절 본당에서 성가대 지휘를 했고 지금도 교민성당에서 성가를 지휘한다는 빵기 말에 의하면, 성가대에서도 으레 두어 명은 음치고 반은 절반음치여서 나머지 반이 부르는 노래에 묻어간단다. 


요즘 시아가 플루트를 배우고 시우가 콜위붕겐(악보 읽기)을 배워 합창 연습을 하는 동영상과 사진을 보고서도 이 바보 할머니는 입 하나 뻥끗하는 손주의 모습에도 감격에 탄성을 지른다. 하여튼 다행히 두 손주 음치는 아닌 듯하다.


시아, 시우 공작품


아범은 꽤 노래를 하는 편인데 우선 목청이 크다. 갓난이 시절 광주 ‘돌고개’ 아래 ‘농업시험장’ 옆 동네에서 세살 적에 걔가 울면 농장 저 편까지 소리가 들려 퇴근하던 보스코의 발걸음이 빨라지곤 했단다. 


로마에서 돌아와 중1에 편입학 했던 1986년 첫 음악시간, 선생님이 ‘오, 솔레 미오’를 가르치고선 ‘한번 불러볼 사람 손 들라!’하니 급우들이 일제히 빵기를 손가락질하더란다. 그래서 노래를 불렀더니 선생님의 촌평. ‘노랜 잘 불렀는데 발음이 좀 이상하구나.’ 그 말씀에 급우들이 모두 박장대소를 했고, 이탈리아에서 6년을 살다가 귀국한지 한 달도 안 된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무안해진 선생님, ‘선생을 갖고 놀았다’며 몽둥이찜질을 하더란다. 그래도 변함없이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부르니 아마 어려서 내가 날마다 자장가를 불러줘서 일지도 모르겠다.


의정부에 사는 새색시 미연이 집에 어제 함을 들인 엽이가 주례 선생 보스코에게 청첩장을 드릴 겸 12시에 우리 집에 왔다, 신부를 데리고. 미연이가 좋아하는 파스타를 하고 둘째 접시로는 쇠고기 안심슈트를 했다. 한 달 만에 엽이를 보니 기분이 좋다. 4년이란 시간을 함께 지냈다는 게 그만큼 정서적으로도 가까워졌다는 얘기다. 젊은이가 커서 이젠 자기 인생을 책임질 어른이 되었다는 게 흐뭇하다. 내년 ‘홈커밍데이’에는 저 부부가 쌍둥이라도 안고 왔으면 바랄 게 없겠다.



11시10분이 되었는데도 새 집사 박총각이 일어날 기척이 없다. 방문을 노크하고 “정현아, 친구 올 시간 다 됐는데 그만 일어나야지? 마루 청소도 하고 테이블 세팅하는 거 빵기형한테 배우고” 했더니만 고등학교 이후로는 늘 혼자여서 ‘일어나라’고 깨우는 소리를 하도 오랜만에 들어 그 소리가 너무 정겹고 고마웠단다. ‘이 젊은이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다 필요한 처지구나’ 직감하고 “그래, 내가 확실하게 굴려주지”라며 웃었지만 마음은 짠했다. 키는 다 컸는데 정서상으로 마음이 미처 다 못 큰 ‘큰아이’들이 주변에 자주 보인다. 그래서 어른이나 어르신이 필요한 거다. 태극기 두른 ‘늙은 것들’이나 집안에서만 버럭버럭 기고만장한 ‘꼰대들’ 말고.


송총각, 손총각, 라총각도 우리 집에 사는 동안 ‘신랑 교육’으로 청소, 테이블세팅, 설거지, 간단한 파스타와 요리를 배워서 지금은 현장에서 ‘사랑받는 남편’으로 뛰는 중이다. 빵기가 테이블보를 깔며 접시는 이렇게 놓고 나이프는 오른쪽, 포크는 왼쪽에, 컵은 이렇게, 냅킨은 이렇게 놓는다고 가르쳐주자 박총각은 ‘고급 레스토랑에 알바 나온 기분’이란다.


저녁 7시가 다 되어 언니네가 놀러오겠다더니 오빠만 올라왔다. 언니는 집밖 공기가 나빠 기침이 심해져 밖에 나오기를 겁낸단다. 폐수술을 받았으니 서울의 미세먼지가 더 힘들겠지. 오빠가 행여 ‘태극기 집회’를 열변할까봐 보스코 눈치가 보였는데 매부가 워낙 색채가 확실한 사람이어서 감히 말을 안 꺼낸 것 같다. 박근혜는 나라만 박살낸 게 아니라 가족마저 ‘촛불패’와 ‘태극기패’로 쪼개놓은 ‘가정파괴범’이요, 정상적인 애국시민 눈에 태극기를 역겨운 물건으로 만들고 만 ‘국기모독범’이기도 하다.


북한산의 일몰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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