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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 전순란
  • 등록 2017-03-29 1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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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8일 화요일, 흐림 


저게 안개냐? 황사냐? 미세먼지냐? 이 셋 다 아니고 초미세먼지란다. 옛날 같으면 맑은 날과 흐린 날, 안개 낀 날, 비 오는 날 정도로 나누고 외출을 하는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건만 요즘은 집 밖으로 나가려면 여러 번 생각을 하고 때로는 외계인 같은 흉물스런 차림으로 눈만 내놓고 다니는 모습을 해야 한다. 숨은 꼭 쉬어야 사는데 어른들이야 중금속이 몸에 쌓이고 쌓여도 살날이 얼마 안 남았지만, 아이들은 어찌 한담?


내 친구 영심씨가 이사를 간 집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집수리를 하는지 외벽에 사다리를 놓고 페인트를 칠하고 집안에서는 방바닥과 벽에 도배를 하나 보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아주 부자거나 너무 가난한 집이 아니면 거의 비슷해서, 이사를 간 후 비워진 집은 모두 허접하다. 저런 먼지구덩이에서 사람이 살아왔나 믿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그 먼지구덩이에서 희로애락의 시간을 보내다들 간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에 사는 재미가 훨씬 낫다’는 말에 역시 고개가 끄덕인다.



35년 전에는 그 집에 ‘쌍둥이네’가 살았다. 딸 둘이 태어난 후에 나온 손주들이라 쌍둥이를 향한 할머니의 지극정성은 동네 사람들이 흉내도 낼 수 없었다. 그런데 정작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는 더 이상 며느리와 손주들과 함께 살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동네 아이들에게 호랑이 할머니로 소문났던 그분은 남의 집에서 도우미를 하다가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내 친구 영심이가 그 집으로 이사 오던 날은 깊은 가을이었다. 그녀가 공터에 피어있는 코스모스 옆에서 울고 있었다! ‘새로 이사 왔냐?’ ‘잘 왔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물어도 되느냐?’니까 살살이꽃이 고와서 운단다. 6·25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복녀로 태어나 할머니 손에서 컸단다.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댁 주변에 늘 코스모스가 피어있어서 할머니 생각에 눈물 났단다.


‘코스모스를 좋아하면 그 꽃이 많이 핀 가평에 가보자’ 위로하고 우리가 이웃으로 만난 첫날에 내 차로 가평과 청평을 한 바퀴 돌고 왔다. 오가는 길에서 그녀의 아팠던 ‘허 스토리’를 듣고서 우리는 절친이 됐다. ‘조손가정’이었지만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은 그니는 누구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엄마였고 다정한 내 친구였다. 내가 없으면 우리 가족을 살펴줬고 동기간처럼 살가웠는데 이젠 담 밖으로 “영심아! 노올자!” 라고 부를 친구가 더는 없어 너무 허전하다.


점심에 체칠리아와 엘리사벳이 찾아왔다. 내가 서울에 와 있다는 걸 나보다 더 잘 아는 친구들의 관심이 참 고맙다. 점심은 밖에서 먹자고들 하지만 ‘그래도 간만에 만나는 친구들인데’ 하면서 부지런히 점심을 준비한다. 미처 못 다한 것은 함께 만들면 된다. 여자 손님들이 오는 걸 더 좋아 하는 이유다.


점심을 먹고 후식과 커피를 들고는 뒷설거지는 보스코에게 맡기고 우리 세 여자는 4·19탑으로 갔다. 그곳에 있는 카페에서 다른 엘리사벳을 만나고 싶기도 해서다. 미아리로 이사 온 친구를 찾아보러 인천 사는 친구들이랑 놀러온 길이란다. 4월이면 언제나 찾아오던 4월의 혼령들에게 안부인사도 여쭙기 위해서다. 진달래 개나리가 화려하고 눈부시게, 흰 매화가 이 뿌연 대기 속에서도 투명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우리 셋은 가톨릭 신자여서 4·19 혼령들에게 독재세력의 마지막 잔재물 박근혜 없는 봄을 맞은 이 나라의 미래도 돌봐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거기 ‘사월학생혁명기념탑’에 새겨진 이은상 시인의 탑문이 해마다 내 가슴을 에이게 한다.



“1960년 4월 19일 이나라 젊은이들의 혈관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명 학생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제단에 피를 뿌린 185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속에 그들의 피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되살아 피어나리라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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