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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초값이 500원이어서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 전순란
  • 등록 2017-04-05 11:17:19
  • 수정 2017-04-05 11: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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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3일 월요일, 맑음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결론은 ‘잊지 않으면’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어도 누가 그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는 알아 낼 수 있을 것 같다. 4·3사건도 그 일을 잊지 않고 끝까지 파헤친다면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고, 광주 5·18을 일으키고도 저런 망언을 하는 전두환을 주저앉힐 수가 있겠다.


그리스도교에서 신앙고백을 하듯, 독일에서 자기네 아이들과 국민들에게 부끄러운 과거지만 나치의 만행을 자꾸 주지시키는 것도 나치정권이 저지른 불의를 그대로 수용 않겠다는 확고한 정치적 결의를 정치적 행동으로 보여주는 국민교육이다. 독일의 태도는 일본과 얼마나 대조되는가! 우리 주부들부터 느티나무 독서회에서 하듯이, 모든 역사를 바로 알고 역사 속에 살고 역사를 올바로 세워 나가야겠다.


전두환의 5·18 발포지시


어제 저녁을 먹다 막냇동생 호연에게 “너도 혹시 오빠처럼 태극기 집회에 나갔니?” 물었더니 “내가? 아니”라더니 “촛불 집회엔 딱 한번 나갔었지”란다. 그런데 나간 이유가 기막혔다. 국일관에서 저녁을 먹고 차도가 차단되어 걸어서 서대문 쪽으로들 걸어가는데, 촛불 값이 다들 1000원 하는데 딱 한군데서 500원 하더라나. 그래 친구들이랑 하나씩 사서 집회에 참석했단다. 싼 맛에 끼어든 민주화현장이지만 생각보다 엄청 재미있더란다. 


오는 길에 ‘태극기집회’ 하는 사람들도 보았는데 깜이 안 되더란다. 악에 받힌 구질구질한 얼굴을 하고 증오에 찬 구호만을 치고 있어 ‘촛불집회’의 축제분위기에 너무 대조되더라나. 마치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탈 시대의 차이만큼 다르더란다.


그제 빵기에게 내가 아빠 친구와 ‘패절’했다니까 “엄마 왜 그러셨어요? 그분도 불쌍한 사람이에요. 박정희 시대의 향수에 병든 사람이거나 세뇌된 피해자예요. 그 사람들이 엄청난 권력을 갖고 휘둘러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일부가 남아서 흘러간 노래를 부른다 생각하고 그냥 봐 주세요”란다. 그 얘길 듣고 보니, 내가 승자집단의 일원으로서 좀 넉넉함을 보여줬어야 하지 않았나 뒤돌아보게 되었다.


박 총각이 아래층에서 인터넷이 잘 안 되어 4·19탑에 있는 카페에 나가서 내일 할 강의 준비를 하겠단다. 그런데 슬리퍼를 신고 나간다. 저런 차림이 의아해서 왜 그렇게 나가느냐고, 꼭 노숙자 같다고 하니까 “노숙자나 예술가나 같은 부류에요”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예술가나 노숙자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어디에 매이기를 태생적으로 거부하지 않는가!



벌써 일주일 가까이 영심 씨 살던 집을 고치기에 아무래도 궁금해서 보러 갔다. 집 전체에 겨우 색칠과 도배만 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사용한단다. 알고 보니 집주인이 이사를 안 들어오고 전세로 내놓았단다. 그래선지 페인트칠을 하면서도, ‘처삼촌묘 벌초하듯’ 희한하게 해나간다. 주변에서 보면, 집을 고치는 사람도 그 집을 사용하는 사람도 내 것과 남의 것을 대하는 자세가 철저하게 다르다. 언제 어디서나, 내 것이든 아니든 주인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은 당당하고 멋지다.


오늘 드디어 민주당 경선이 마무리 되어 문재인 씨가 당 후보가 되었다. 이제 경쟁이 끝났으니 더는 민망하게 서로 씹지 말고 함께 힘을 모아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제발 ‘남을 끌어내려야 내가 올라간다’는 바보 같은 생각은 안 했으면… 안희정, 이재명 두 사람 다 멋지고 젊으니까 차기와 차차기를 내다보면 되겠다. 그러고 보면 민주당은 복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이 떠나고, 그 죽은 그루터기에서 터져 나온 싹을 보며 이 사순 시기에 부활의 뜻을 나름대로 깨우치는 중이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동네 어른 아이들이 모두 평상으로 나온다. 해거름에 지난주 이사 들어간 영심 씨네 집을 다녀왔다. 동쪽으로 멀리 도봉산 오봉이 보이고, 집 옆으로는 개천을 끼고 있어 사방이 툭 터져 시원하다. 그니가 25년 만에 옮긴 집이니, 새집에서 새로운 기분으로 잘 살기 바란다.


영심 씨네 옥상에서 바라보는 풍경


함께 이사 온 생명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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