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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인간이란 완벽하게 불완전하다’
  • 전순란
  • 등록 2017-04-07 10:38:25
  • 수정 2017-04-07 10: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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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6일 목요일, 맑음


후진을 하던 아저씨에게 그만 서라고 했지만 못 들었는지 계속 언덕 아래로 내려온다. 차체를 탕탕 쳤더니 창문을 열고 왜 남의 차를 두드리냐고 화를 낸다. 택배 물건을 들고 얼마나 찾아 헤맸던지 내리는 비에 택배기사는 머리는 물론이고 온몸이 후줄근 젖어 있다. “화가 많이 나셨군요. 비는 쏟아지고”


대문은 막혀있고, 벽들로 막혀진 문에 그려진 나무에 그린 하얀 하트에 쓰여진 이름은 이 집에 으스스한 족보나 연대기 정도로 보였겠지? “그런데 택배를 배달해야 할 이 집은 왜 문을 막았을까?” “집에 들어갈 때는 사다리를 타고 넘어가나?” “네이버를 보면 이 번지가 틀림없는데…” 보고 또 보고 “이 집에 무슨 사연이 있어 주인이 빨간 벽돌로 출입문을 막아버리고 나서는 다시는 누구도 그 집에 얼씬도 못하게 했나?”



어두운 빗속에서 ‘귀곡산장’이나 ‘전설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얘기라도 상상했을 택배기사는 막힌(봉한) 문 앞에 홀연히 나타나 차를 두드리던 예쁜(?) 여인를 보자 귀신을 본듯 화들짝 놀란 표정이더니만 택배물건을 내던지듯 내 손에 건네고 ‘오금아 날 살려라’는 속도로 자리를 떴다. 어젯밤 늦게 우리 집에 온 택배 이야기다. 


그 문에 사연이 있기는 있다. 북쪽 대문에 기나긴 골목길이 나있어 근30년 그 길로 다녔는데 동쪽으로 6미터 도로가 나면서 그쪽으로 차를 세우려고 쪽문을 하나 더 했다. 그러다 집장사가 우리집 골목으로 나란히 들어오는 국민주택 두 채를 사서 연립을 지었다. 그런데 옛날에 한 측량이라 밀리고 밀려 새로 측량을 하니까 그 집 땅 몇 평이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고 우겼다. 동쪽에도 문이 있으니 우리가 드나드는 골목길을 자기네가 차지해야만 억울한 그 땅을 되찾는단다.


골목길 절반은 우리 땅, 나머지 절반은 문서상 여전히 ‘도로’로 되어 있어 안 된다고 버티자 자기가 조폭출신임을 자랑하는 시공자와 건축주의 협박은 험악해졌다. 소송을 걸어왔고, 말남 씨 조언대로 동쪽 쪽문을 막고 여전히 골목길로 다니겠다는 우리 주장에 도봉구청이 양편 변호사를 불러 조정을 하였다. 곡절 끝에 우리가 집을 헐고 다시 지으면 우리가 깔고 앉은 그 집 땅을 되돌려주기로 하고, 우리 골목길은 30년 통행한 유일한 통로니까 그대로 존치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막힌 쪽문


사연 있는 골목 


그 뒤 아랫집 최 선생네 아들이 그 넓은 터에 원룸 건물을 지으면서 그 집으로 들어간 우리 골목 땅을 되돌려주었다, 담장까지 쌓아서. 그래 널따란 골목길 주차장을 확보하게 됐다. 우리 집 올 적마다 말람 씨가 누가 이리 좋은 주차장 마련해 줬제?하는 공치사와 바로 그대 덕분입니다라는 내 아첨의 신앙고백이 이어진다. 문제는 오늘 온 택배기사처럼, 주소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골목길 끝자리가 우리 집이리라는 짐작을 못한다는 점인데 골목 초입에 우리 주소를 따로 붙여놓아야겠다.


점심에 ‘귀요미’ 미루, 인천의 이엘리, ‘모자 체칠리아’랑 창동 ‘하누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보스코가 회냉면을 즐겨 먹는 걸 알고 그 집에서 만나자는 미루의 제안. 한 얼굴 하는 여자들이어서 입귀가 올라간 보스코에게 한꺼번에 예쁜 여자 넷을 만나는 소감을 물었더니 “여자 넷을 다 어따 쓰냐? 한 여자도 간수하기 힘든데”라며 시치미를 뗀다. 



그 말도 맞다. 어제 받은 잡지를 보니, “결혼은 판단력이 부족해서 하고, 이혼은 인내력이 부족해서 하고, 재혼은 기억력이 부족해서 한다”고 쓰여 있다. “인간이란 완벽하게 불완전하다”는 제목처럼, 기왕 한 결혼 좀 힘들어도 버티고 살아야 하는데 갈수록 황혼이혼으로 우리나라 이혼율이 옮겨가서 60대 이혼율이 30~40대를 앞섰단다. 특히 60대 이후 남성의 이혼상담은 ‘돈 버는 기계’로 살다 퇴직하거나 실직하여 집안에서만 머물며 ‘삼식이’라 불리든가, 보스코처럼 간식까지 챙겨먹는 ‘오식이’으로 구박받다 보니 자신만을 위해 살고 싶다는 울뚝밸이 태반이더란다.


점심 후 ‘모자 체칠리아’는 그냥 가고 미루와 엘리는 우리 집으로 와서 커피와 어제 구운 쿠키를 들면서 자녀들의 연애와 혼사, 교회내의 가십거리, 요즘 정국의 갈피를 두고 한참 한담을 나누다 헤어졌다. 세 여자와 함께 앉아 얘기를 나누는 보스코는 입이 여전히 두 귀에 걸려 있어 여자들 앞에선 역시 ‘남자란 완벽하게 불완전함’을 보여준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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