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9일 일요일, 맑음
우이성당 테라스에서 올려다본 삼각산
오늘은 ‘성지주일(聖枝主日)’이어서 어린이 미사 대신 교중미사에 갔다. 내가 기억하기로 성지주일 전례는 성당 밖에서 시작하여 종려나무 가지를 축성하여 나누고, 앞장서서 들어가는 사제를 뒤따라 성당 안으로 들어가며 ‘호산나!’ ‘호산나!’를 부르는데 오늘은 성당 아래층에서 나눠주는 성지가지를 들고 들어가 좌석에 앉아 기다리니까 성당 뒤쪽(출입구)에서 성지가지를 축성하신 선부님이 성당 안을 돌며 우리가 들고 있는 나무가지에 성수를 뿌려주셨다. 세대가 바뀌며 전례도 바뀌니까…
우리가 들어올 때는 성지가지가 다 떨어져 빈손으로 올라왔더니 교우 한분이 보스코와 나한테 한 개씩 갖다 준다. 내 앞에 앉은 남자가 가지 4개를 갖고 있다 친구인 듯한 교우가 말없이 하나를 가져가니까 ‘다 쓸데 있어 가져 왔어’ 하며 내놓으란다. 보다 못해 내 것을 건네주며 “필요하면 이것도 가져요” 했더니만 “아줌마 건 안 가져요” ‘전순란의 심술이 약간 동했군’ 하던 보스코의 눈짓. 저런 일도 눈에 띄면 못 참는다고.
성주간이면 개신교 출신인 나로서는 전례 하나하나가 생소하고 신기하면서도 과거를 기억하여 현재에 재현하는 전통이 부럽기도 하다. 일 년 중 제일 긴 복음을 읽은 오늘, 이 성서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사’를 어쩌면 저리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기록했는지, ‘그 제자들이 주님을 정말 사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실생활에서 내가 그분을 얼마나 생각하고 기억하고 사랑하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이젠 나도 웬만큼 가톨릭 신자가 되어설까?
어제는 감기약을 먹고 버텼는데 오늘은 미사 중에도 엄청 힘들어 주저앉고 싶었지만 옆에 계신 80대 할머니가 얼마나 열심이신지 차마 자리에 앉을 수가 없었다. 미사 후 겨우겨우 집까지 걸어와(그제 정동에 가면서 보스코가 딱 그랬단다) 감기약을 다시 먹고 쉬면서 경향신문을 보았다.
집 옆 벚꽃이 하루 만에 만발했다
요즘 들어 뭍으로 올라오는 세월호에 관심이 커졌다. 경향신문 ‘원희복의 인물탐구’에서 “세월호 다이빙벨 이종인, 정부가 구조 안하고 못하게 한 행위 수사해야 한다”는 꼭지를 읽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공무원들 제발 조금만 해먹어라! 그리고 최소한의 의무라도 해라! 대형 참사가 났어도 컨트롤 타워만 높아졌지 실제 일은 제대로 하지도 않았다. 정부와 계약한 구난업체가 올 때까지 구조작업도 안했고, 남이 앞서서 하는 건 공무원과 그 업체가 방해를 했다. 협박도 했다. 새 정부 들어서면 구조를 안 하고 못하게 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천안함 참사는 (북한의 소행이 아닌) 좌초’라고 한 그 사람의 소신발언으로 정권에 밉보이기도 했겠지만, 관료들의 퇴직 후 일자리를 마련하는 해양구조협회에 가입하지 않아 불이익을 당했고, 그 협회에 가입하는 업자에게만 일감을 나눠 주며 밥그릇만 챙기는 공무원들의 꼼수가 참사를 가져왔음을 한 눈에 보여준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도 우리나라 공무원이 몇 명이나 소신껏 일을 하는가 머리를 흔들게 된다. 로마에서 공직생활을 할 때, 관저 벽감이 비어 있어 보스코가 한국적인 조각품을 하나 설치하려는데 ‘작가가 외교부에 등록된 인물이 아니다’라는 핑계로 거듭 본부의 방해를 받은 적 있다. 공관 예술작품 설치까지도 공무원과 결탁한 세력이 나눠 먹는 시스템! 조각가의 격한 반응과 언론의 낌새로 외교부가 물러서긴 했지만 “제발, 조금만 해먹어라”는 말이 내 입에서도 절로 나왔다.
공정하고 상식이 통하는 깨끗한 사회를 위해, 낡고 부정 부당한 과거의 폐악은 우리 촛불이 모두 태워 없애야겠는데, 보수언론이 총동원하여 띄워 올리는 인물, TK와 보수세력이 총궐기해서 지지하는 후보가 그럴 위인은 영 아닌 듯해서 참 답답하다.
그 후보도 진보진영에 가깝다는 말도 있지만 ‘세월호’에도 거리를 뒀고, ‘촛불’과 ‘태극기’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촛불’에 멀찌감치 거리를 뒀고, ‘사드’도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서서(‘국민을 위해서’란다) 오늘 김희중 대주교에게 지적을 받았다(박근혜도 ‘국민과 결혼했노라’고 선언했었다). 그가 당선되어 국회를 장악하러 ‘자유당’과 합당이라도 하는 날에는 ‘촛불시민’이라는 국민은 ‘죽 쒀서 개 준’ 참담한 절망으로 빠져들고 말리라, 4·19를 망치고 10·26을 망치고 6·29를 망친 아픈 역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