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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큰아들이 엄빠에게 주는 감사장
  • 전순란
  • 등록 2017-04-12 10:11:19
  • 수정 2017-04-12 10: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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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0일 월요일, 맑음


모처럼 하늘도 맑고 날씨도 따사로워 테라스에서 뒷산 벚꽃놀이를 했다. 집 옆에 화사하게 피어난 저 벚꽃은 40년 전 내 손으로 심은 나무다. 그곳에 샛길이 있어 마을 아줌마들이 화초로만한 나무를 길가로 죽 심었는데 제법 자란 나무들을 서광연립이 들어서면서 다 베어버리고 딱 한 그루가 남아 지나간 세월을 저리도 화려하게 꾸며준다. 


집안에서 해를 못 받아 보라색에서 연보라로 엷어지는 캄파눌라(아기종꽃) 화분을 테라스에 내놓아주며 ‘해 좀 쐬라’ 했더니만 금방 꽃송이들이 시들고 말았다. ‘어? 다 죽었네?’ 싶었는데 집안으로 들여놓자 나 어린 순서대로 기운을 되찾아 꽃송이를 바로 세운다. 옛사람 말대로, ‘아이는 한번 아프면 크고 새로 예쁜 짓을 하고’, ‘늙은이는 한번 아플 때마다 꺾이고 엉뚱한 짓을 하고’라는 말대로다.



어제까지 감기로 맥을 못 추니까 보스코가 나더러 ‘스페인 독감’에 걸린 게 아니냐고 묻는다. 그게 뭐냐니까 1918년부터 1919년 사이에 발병하여 흑사병 못지않게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1억 명의 희생자를 낸 조류독감이란다. 그런데 이름과는 달리 발병지는 스페인이 아니고 미국 시카고였단다. 


나도 한 사흘 고생을 했으니, ‘스페인 독감’이라면 폐렴으로 돌 때가 됐는데 오늘은 되레 멀쩡해져, 집을 팔고 아랫동네로 이사 간 영심 씨 부부가 놀러와 다과를 대접하기도 하고, 그니가 살던 집 뒷산에 그니가 심어 키운 두릅나무도 얻어다 우리 마당 그늘에 심기도 하고, 마당에 쌓인 낙엽도 오랜만에 청소하였다. 영심 씨는 새로 이사 간 집이 너무 비좁아선지 옛집에 와서 오늘 들여다보니 대궐 같단다. 아마 뒷산을 끼고 있고 농사지을 손바닥만 한 밭뙈기라도 붙어 있는 단독주택이어서 그리 느낄 게다.



2시 40분 KTX로 대구에 강연 가는 보스코를 쌍문전철역에 내려주고, 무릎이 아프다는 빵기를 태우고 ‘서울정형외과’엘 갔다. 엑스레이를 찍고서 별일이 아니라니까 본인은 물론이고 엄마인 나도 안심이 된다. 외국에서 아프면, 워낙 의료수가가 비싸서, 어디가 아파도 참고 참다 큰 병이 되기 쉽다.


나도 80년대에 무려 6년간, 썩은 이를 견뎌내고서 한국에 와서야 수술을 받고 부분틀니를 했다. 90년대 말 안식년에는 무릎의 인대 파열을 2년간이나 방치하다가 귀국해서야 다리 수술을 했다. 그래도 ‘엄살의 원조’ 보스코가 별 탈 없이 13년의 로마 생활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로서는 충분히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길” (강현덕 시인)


보스코는 오늘도 대구로 내려가 대덕성당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왜 하필 십자가의 고통으로 인류를 구하셨나?’ 라는 제목으로 사순시기 특강을 하고 올라왔다. 대덕성당 정 신부님께 초청받아 대구까지 내려간 것은 까마득한 먼 날의 인연 때문이란다. 보스코가 20대 청년이던 60년대,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서 편도선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을 적에 한 병실에 소신학생 하나가 수술을 받고 누워 있더란다. 같은 병실이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인연으로 그 소신학생이 먼 훗날 대구의 원로사제가 되어 ‘성염’(스님의 법명도 같고 해서 사람들이 한번 들으면 잘 안 잊는다)을 사순특강에 초청한 길이었다.


보스코는 주로 서서 강연을 한다. 키가 작아서 청중이 못 볼까봐 라는 구실이다. 장장 90분을 서서 강연하고서도 기차를 타고 자정 넘어 서울역에 도착해 집으로 왔으니 엄살쟁이라기보다 그 나이치곤 대단한 노익장이다. 마지막 전철을 타고 수유역에 도착하는 아빠를 마중나간 빵기가 집에 들어서면서 ‘엄빠’에게 감사장을 수여하겠단다. 엄마아빠가 이렇게 건강해서 (그리고 둘이 안 싸우고 사이좋게 사니까) 외국에 있는 두 아들이 부모 걱정 않고 씩씩하게 자기 길을 가게 해 주는 공적이란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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