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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부활절인 오늘부터라도 머리에 재를 써야 할 우리 민족
  • 전순란
  • 등록 2017-04-17 10:23:22
  • 수정 2017-04-17 10: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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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6일 일요일, 맑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꼭 3년! 저 2014년 4월 16일 하루 종일, 아니 몇날 며칠, 근 한 달을 소란만 떨더니 대통령선거부정이 덮였다 싶었던지 박근혜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못하게 하였다! 이번에 세월호를 보니 저 집단들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지금 와서 가톨릭교회를 비롯(명동성당의 부활미사도 추모미사가 되었다) 사회단체와 온 국민이 벌이는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보도됨을 보면서도 여전히 속상하다. 그러니 실제로 가족의 죽음을 당한 가족과 부모는 어떻겠는가?


예레미아서의 한 구절대로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비통한 울음소리와 통곡소리가 들려온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예레미야 31,15) 아래층 박 총각이 죽은 애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는데 할 게 아무것도 없어 덕대 앞에서 깔개를 펴고 지나가는 동네 아이들에게 노랑 색종이로 종이배를 함께 접어 가슴에 달아주거나 꼬마들에게 챙겨 보내며 세월호 얘기를 들려주고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고 설명해주고 있었다.



박 총각이 우리를 보자 좀 겸연쩍은 듯 “참 쓸모없는 일하죠?”하며 웃었다. 그러나 박 군의 행사가 내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됐다. 마음이 너무 힘든데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겸손한 절망감! 우리 모두 이런 자세로, 부활절인 오늘부터라도 머리에 재를 쓰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 시시각각 이 조그마한 반도에 덮쳐오는 무서운 그림자를 보면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죽은 이들과 그 가족에게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포기한 홍준표와 그 지지자들이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라며 저 아픈 국민의 상처에 고춧가루와 소금을 뿌리다니! 한반도에 다가오는 전쟁의 그림자 밑에서도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저 엄청난 사회악이자 정치악을 뉘우치지 못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사회의 엄청난 불의를 외치는 국민을 향해서 ‘정치적이다!’라고 욕하는 자들, 특히 타인들의 고통에 중립을 지키라고 욕하는 종교인들에게 저주를! 그자들 입 밖으로 나온 말마디 그대로 갚아 주실 날이 오기를!


하지만 엊저녁 광화문에서 보스코가 발언한 세 마디도 있다. “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어쩌면 300명의 무죄한 죽음을 십자가로 주님께서 이 겨레를 구원하고 계십니다, 파멸과 전쟁의 참화에서! 박근혜 정권을 실제로 무너뜨린 것은 ‘세월호’였습니다”




엊저녁 엄엘리의 차를 탔다가 내 외투 주머니가 얕아서 핸드폰을 차에서 흘렸는데 집에 와서야 핸드폰 없는 걸 알고는 그걸 찾느라 위아래층으로, 옷 주머니마다 뒤지고 다녔으니 스스로 한심하다. 더 난감한 일은 거기 실어둔 전화번호를 대부분 기억 못한다는 사실이고 행여 차안에 떨궜나 묻고 싶어도 엄엘리의 전화번호까지 알 길이 없었다는 사실! 모조리 기억에 의존하여 수십 개 전화번호를 외우던 내 총기는 물건너 갔고…


엄엘리가 퀵서비스로 핸드폰을 보내주었다. 아저씨도 먹고 살아야 하니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하겠지. 기억력을 잃은데 대해 비싼 돈을 지불하고 핸드폰을 여니 부활인사가 50여 통!



부활대축일이니 밖에 나가서 점심을 먹자는 문 교수님 초대에 4·19탑까지 걸어갔다. 찾아간 채식식당은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경제난에 서민들이 지갑을 닫아 외식산업이 직격탄을 받는다는 뉴스던데 그 폭탄은 다들 어디로 투하된 건가? 그 대신 냉면을 먹고 4·19 민주공원을 찾아가 낼모레의 ‘4·19 혁명 57주년’을 앞당겨 추모하였다. 거기 묻힌 400여 명의 영령들에게도 이 나라의 운명을 빌었다.


교수님이 오셔서 엊저녁부터 우리 집이 ‘한 지붕 세 가족’이 되었고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하면서 하루가 넘어가는 중이다. 오늘은 날씨가 완연한 여름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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