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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얏호! 내 차도 드뎌 박혔다!”
  • 전순란
  • 등록 2017-04-19 10:47:55
  • 수정 2017-04-19 10: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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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8일, 비


작은손주 시우가 넘어져 안경알이 심하게 긁혔단다. 제네바에서 안경점에 가니 상상 이상의 돈을 달란다며 EMS로 보내왔다. 비싼 송료에 고쳐서 다시 보내도 그곳의 십분의 일도 안 된다. 덕성여대 구내안경점 아저씨는 시우 안경 한쪽은 괜찮으니 긁힌 쪽만 바꾸라면서 고쳐서 지리산으로 보내 주마고 했다.


주룩주룩 빗속에 덕대 캠퍼스를 나서는데 수위 아저씨가 “어제 총무과장과는 얘기가 어찌 되셨어요?” 묻는다. “워낙 과장님이 좋은 분이어서 마을사람들 고충을 쉬이 알고 다음부터는 시험기간 중에도 통과하게 허락하더군요. 내가 고맙다더라는 말을 전해주세요” 했다.



오늘 유무상통에 들러 엄마 얼굴을 잠깐만 보기로 했다. 한 달간 비워놓은 휴천재 텃밭이 돌아갈 즈음에야 슬슬 걱정 된다. 미리내에 점심시간 12시 30분에 정확하게 도착했는데, 벌써 노인들이 식사를 마치고들 나오신다. 안면 있는 할머니마다 마치, 당신이 우리를 위해 점심을 준비라도 하신 양 “특식이야! 소머리국밥이여, 어여 와서 먹어요” 하며 반기신다. 오늘 점심은 어떤 분이 모든 식구에게 소머리국밥을 냈단다. 엊저녁부터 푹 고아 삶아진 국물 속에 보드라운 소머리가 할머니들이 이로 씹지 않아도 저절로 목구멍을 넘어가게 생겼다. 


그런데 엄마는 식당에서 밀차를 밀고 나오다 나에게 손을 흔들고 그냥 지나가신다. ‘우리가 누군지 모르시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아니겠지, 무슨 일이 있겠지?’ 하고 뒤따라 방으로 올라가니 딱 한마디 “잘 먹었냐?” ‘아하, 딸을 몰라보신 건 아니구나’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제도 그 유명한 모대감님의 행동에 가슴이 아팠다. 90세 나이라지만 밤 9시에 수도원 방마다 문을 두드리시며 “누구 없어요?”라며 돌아다니시는 노인의 외로움에 맘이 에이었다. 그렇지만 “신부님, 내가 누군지 아세요?” 여쭙자 “알고말고요. 저 사람 엄마”하시며 보스코를 가리키셨다. 내 남편이 (중1학년 때부터 보신 당신 제자) ‘보스코’임을 알아보시고, 내가 보스코 성인의 엄마 ‘맘마 말가리타’ 세례명을 가진, 그의 아내임을 알고 계시다는 뜻이다.




엄마 곁에서 한 시간 가까이 낮잠을 잤다. 엄마 침대 옆 안락의자에 앉아 SNS를 검색하던 보스코 말이, 엄마가 침대에 누웠다 앉았다, 연신 TV를 리모콘으로 켰다 껐다 하는데도 내가 잘도 자더란다. 정말 피곤했었다. 비도 심하게 내리고 있었다.


맘 같아서는 오늘 거기서 자고 오고 싶었지만 조카 수녀가 부활절 ‘엠마오 소풍’ 대신 휴가를 받아 휴천재에 온다 해서 지리산으로 달렸다. 그 억센 장대빗속을 헤치고 달렸다. 별로 크지도 않은 나란데 비가 쏟아지다 돌풍이 불다 간혹 해가 나기도 하며 국지성 기후를 보이고 있었다.


‘덕유산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나오는 길에 내 차에서 쿵 소리가 났다. 주차했던 차가 후진을 하면서 직진하던 내 소나타 뒷바퀴 쪽을 박았다. 보스코가 웃는다. 내가 이리저리 박고만 다니더니 드디어 박히기도 했구나 하는 표정이다. 나도 따라 웃었다. “아싸, 야호! 나도 박혔다!”


그래서 그동안 내 차에 박힌 차주인들의 별별 희한한 반응을 다 보아왔기에, 그때마다 ‘담에 내 차가 박히면 저런 반응을 안 보이고 좀 더 폼 나고 멋진 멘트를 날려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인사사고가 아닌 것만도 다행이에요. 차는 사는 순간부터 망가지게 마련이니까 염려 마세요. 그냥 보험처리 해주시면 최소한만 고칠 테니까 맘 놓으세요. 빗속에 별 탈 없이 잘 다녀가세요” 함양에 문상하러 간다던 남정들은 이 여자의 하도 태연한 친절에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이고 보스코는 듣다못해 곁에서 큼큼 목을 가다듬는다.


7시에 에스더수녀가 함양에 도착하여 싣고서 휴천재로 들어오는데 바람이 무섭도록 세찼다. 오직 한 가지 걱정은 비바람에 휴천재 배꽃이 다 지지나 않았을까 하는 것. 하지만 주인의 귀가를 기다리던 배꽃은 그 거친 바람에도 나뭇가지를 꼭 붙잡고 절반쯤 잎을 틔운 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본 집안의 화분들은 엄마 없어 몇날며칠 얼굴도 못 씻은 아이들 몰골이었다.


한 달 만에 안주인을 맞는 휴천재 텃밭 


소나타에 실려온 짐들

 

주인 없던 휴천재 화분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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