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세월호 3주기 추모식에는 주요 대선주자들이 참석해 미수습자 수습과 진상규명을 이루겠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들의 반응은 후보에 따라 온도차가 있었다. 이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세월호 벼락치기에 대한 채점의 시간이 됐다.
한국 사회의 적폐를 드러냈다고 평가되는 세월호는 촛불대선을 앞두고도 한국 사회에 중요한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3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에서 미수습자 수색작업이 시작됐지만, 미수습자수습과 진상규명까지는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대선 후보들이 지난 3년간 남겨놓은 세월호 발자취를 살펴보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펼쳐지는 언어축제보다 이후 세월호 문제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실질적 지표가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있어 인연을 맺었다. 세월호 특별법은 참사발생 205일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문 후보는 진상규명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순간 단식으로 힘을 실었다.
특별법 제정에 있어서 핵심은 수사권·기소권 포함 여부였다. 당시 새누리당은 수사권·기소권을 제외한 특별법 통과를 고집했다. 유가족은 수사권·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유민아빠 김영오 씨는 46일간 목숨을 건 단식을 했다.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은 진실을 밝혀달라며 국회 앞까지 행진했고, 실종자 가족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눈물의 편지를 보냈다.
당시 문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직책을 맡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김영오 씨의 단식 중단과 특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8월 19일부터 열흘간 광화문광장에서 단식에 들어갔고, 야권이 유가족들과 연대해 특별법 제정을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사회에 알렸다. 또한 세월호 특별법에서 중요한 것은 여야 간 합의가 아니라 유족의 동의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문 후보는 자신이 세월호와 관련해 대표발의한 의안을 통과시키는 데는 노력이 미진했다. 문 후보는 자신이 발의한 세월호 법안이 상정된 상임위 회의에 4번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결국 그가 2014년 6월에 발의한 ‘공공기관의 사회적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은 지난해 5월 폐기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였던 안철수 후보는 여당의 방해로 특별법 제정이 지연되자, 정부와 여당을 향해 ‘특별법 거부는 세월호 승무원과 다르지 않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정부’ 등의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특별법 통과는 유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말하며, 야당 대표로서 앞장서 정부와 여당을 비판했다. 또한 국회 앞에서 농성중인 유가족을 방문해 진상규명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7·30 재·보궐 선거’에서 당이 패하고, 대표직을 내려놓으면서 행보가 주춤했다. 당 대표 사퇴 후 모습을 드러낸 그는 자신이 당 대표였을 때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이후 특벌법이 제정될 때까지 세월호에 대한 특별한 행보를 찾기 힘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시행령으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를 무기력하게 만들어도 대표일 때 보여준 세월호 문제에 대한 열정은 보이지 않았다.
정의당 원내대표였던 심상정 후보는 특별법 제정과 박근혜 정부의 시행령안 발표, 특조위 해체 등을 비롯해 세월호 문제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적극 나섰다. 문 후보처럼 특별법 제정 당시 청와대에서 열흘간 동조단식에 들어갔으며, 유가족과 함께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도보행진도 했다. 그는 당시 여야 간 합의된 특별법을 두고 무늬만 특별하다고 날선 비판을 했다.
이후 정부의 시행령 발표, 특별법 개정, 특조위 활동기간 보장 등의 문제에서도 기자회견과 집회 등을 통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심 후보가 일관되게 세월호 문제에 집중했다는 것은 그가 대선후보들 가운데 유일하게 3년간 세월호 추모식에 개근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유승민 후보는 특별법 제정과 정부의 시행령 발표만 해도 전형적인 여당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특별법에 대해서도 ‘여야가 합의할 문제’라며 세월호 가족들과 뜻을 달리 했고, 시행령에 대해서도 ‘정부의 영역’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세월호 인양에 대한 문제에서 변화가 생겼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세월호 인양을 세금문제 등으로 몰아붙일 때, 그는 당에서 독보적으로 온전한 인양을 외쳤다. 그는 기술적으로 세월호 인양이 가능하다면 정부가 나서서 온전히 인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정청회의에서도 외롭게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주장했고, 결국 박근혜 씨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이후에도 유 후보는 정부가 주관하는 세월호 1주기 추모제를 건의하는 등 세월호를 잊고 싶은 사람들 속에서 세월호를 외쳤다. 이후 세월호 국면에서는 유 후보의 특별한 행보를 찾기 힘들었지만, 탄핵정국이 시작되기 전까지도 정부의 재난대책 개선이 세월호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며 미흡한 정부대처를 지적했다.
홍준표 후보는 심상정 후보와 정확히 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세월호 문제에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특별법 제정 당시에는 유가족이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을 반대해, 법안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시행령안 발표, 특조위 강제 해산, 특별법 개정안 등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홍 후보는 일관되게 세월호 문제를 ‘세금낭비’의 개념으로 접근했고, 철저하게 정치투쟁의 문제로 발언했다. 그의 이러한 일관성은 일부 대선후보들이 세월호 벼락치기에 적극 나서는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세월호 추모식에는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으며, 언론이 이에 대해 질문을 해도 직선적이고 강렬한 표현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한편, < 뉴스타파 >에 따르면 SNS에서 세월호를 가장 많이 언급한 후보는 심상정 후보로 전체 게시글의 37.6%를 차지했고, 문재인 후보가 그 뒤를 이어 세월호 관련 언급이 전체 게시글의 31.7%를 차지했다.
촛불혁명으로 일궈낸 조기대선에서 세월호는 각 후보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공약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검증의 토대가 되고 있다. 일관된 모습으로 세월호 문제를 대하는 후보, 힘든 순간 함께 했던 후보, 상황에 맞춰 모습이 변하는 후보도 있었다. 세월호의 예언자적 소명이 차기 정부의 선택에서 어떻게 피어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