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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부활 제2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7-04-21 18: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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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사도 2,42-47) 해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 지속하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 한번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매일 그 부활을 생활과 현실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적용해야 한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그 부활을 다양한 방법으로 지속시켰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구원의 진리를 배우고, ‘빵을 나누기 위해 함께 모여 생명의 빵을 자기들 가운데 보존하고(참조. 사도 20,7.11; 1코린 10.16),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바치고, 진리를 증거하고, 구원 계획에 참여하였다(참조. 사도 4,24-30).


 - 형제적 친교(親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형제적 친교를 잘 간직하여 보존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가장 적합한 생활 형태가 공동생활이라고 여겼다. 특히 주일 전례 때 사도들의 회고담과 증언을 중심으로 연대하고 기뻐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 같은 공동생활이 가장 잘 드러났다. 초대 교회에서 친교(親交)는 마음을 합치게 하고, 특히 가난한 형제들과 연대감을 깊이 느껴 사유 재산을 내놓아 공동소유로 관리하기에 이르렀다.


시편 (117) 해설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모든 겨레들아>

 

이 시편은 감사하는 노래로서 아마도 초막절 축제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함께 모여 주님을 찬미하는 시편이고, 그 찬미에 참여하도록 노래하는 시편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극복해야 할 어려운 고비들이 많았다. 그 고비를 극복한 성공과 승리는 하느님의 선물이요 은총으로써 기렸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거두신 승리를 두고 이 시편으로 기쁨을 표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배척하고 무시했지만, 하느님께서 부활이라는 놀라운 방법으로 영광스럽게 해주신 분이시다. 주님께서 이루신 그 업적은 신자들의 마음속에 찬미하고 감사하는 노래를 우러나오게 한다. 


제2독서(1베드 1,3-9) 해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는 ‘살아 있는 희망’으로 다시 태어났다>

 

-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남(3-5절).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 병을 떨치고 건강을 회복한 사람처럼 미래 계획을 다시금 세울 수 있게 한다. 사실 죽음은 더 이상 그의 시야를 가로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살아 있는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그의 앞길을 보장해 주신다(참조. 로마 8,18-24).


 - 시련을 통과하여(6-9절). 이 믿음이 황금처럼 귀중한 것이 되려면 시련을 거쳐야 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불의(不義)와 불신으로 말미암아 일어날 수 있는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심판자로 영광스럽게 와서 최후 심판을 내리시리라는 생각은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거룩한 생활을 선택하는 데 가장 강력한 충동이 된다. 벌써부터 기쁨으로 넘치는 이유는 결정적인 구원에 도달하리라는 확신과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요한 20,19-31) 해설

<우리는 부활하신 분에 관한 사도들의 증언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 바라볼 줄 안다(19-23절). 십자가의 발치에서 요한은 예언자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요한 19,34.37). 그 순간에 다른 사도들은 멀리 달아나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지금에야 비로소 사도들은 수난의 표시인 옆구리의 상처를 보고 예수님을 알아 뵙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당신의 성령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는 성령께서는 쇄신과 화해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분이시다.


당신의 성령을 선물로 줌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창조 행위를 계속하신다(참조. 창세 2,7). 사도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죄악을 이긴 당신의 승리에 참여하게 하신다.


- 증언을 받아들인다(24-31절). 토마스는 부활한 분이 나타나실 때 참석하지 못하고, 다른 사도들의 증언도 믿지 않았다.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그에게 주신 훈계는 우리에게도 뜻이 깊다. 육안으로 보는 것으로부터 믿음으로 건너갈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새로운 생활양식은 인간적인 방법으로써 알아들을 수 없다. 그 분은 이제 직접 보이지 않으신다. 그러나 당신을 믿는 사람들(교회)을 통하여 역사 안에 살고 계신다. 믿음만이 부활하신 분이 우리 가운데서 살아가심을 알아차릴 수 있다. 


묵상

 

지금은 부활하는 시간이다


오늘의 전례는 파스카(건너감)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다. 당신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로 하여금 초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새로운 생활을 묵상하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살아 있는 희망’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선언한다.


부활의 신학적 의미


부활에 대한 믿음은 초대 교회 생활의 초석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하느님께서 그를 부활하게 하셨고, 그 부활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셨다(사도 3,16; 4,10). 이렇게 하여 예언자들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메시아가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현양되고(2,34), 주님의 종이 영광을 받고(필리 2,7-9),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의 오른편에 서시게 되었다(사도 7,56).


사도행전은 구약성경의 표현과 상징을 취하여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썩도록 버려두지 않으신 거룩하신 분으로 제시하고(2,25-32),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 놓아두신 새로운 아담으로 제시한다. 그 분은 집짓는 자들이 내어버린 돌이었으나 주춧돌이 되셨다(4,11).


이처럼 부활이라는 사건으로 아드님이 아버지로부터 영광을 받으신다.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지신 하느님의 아들’로 세워지신다(로마 1,4). ‘주님이요 메시아’, ‘머리요 구세주’로서 선포되신다(사도 2,36. 5.31).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지상(地上) 생애 동안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은총을 드러내셨다. 이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맨 처음으로 구원되어 새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가셨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사람들



예수님께서 죽음을 거쳐 부활한 첫 사람이시라면(1코린 15,20), 우리는 모두 신뢰를 가지고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을 기다릴 수가 있다(로마 8,11). 그렇지만 이미 지금부터 우리는 새로운 생명의 신비에 참여하고 있다. 실상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이미 부활하여 있는 사람의 생활이다. 라자로처럼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죽음에서 벗어나 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하시는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그 분의 생명에 참여한다(요한 5,25).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1요한 3,14).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변화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생명은 이미 그리스도의 활동 영역 안으로 들어갔다. 부활하신 분의 생명에 참여하고 있다.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묻힌 우리는 그 분과 더불어 부활했고,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신 하느님의 권능을 믿게 되었다(콜로 2,12). 우리가 참여하여 누리는 새로운 생명과 생활은 부활하신 분의 생명과 생활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에페 2,5-6).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에페 5,14).


이 같은 근본적인 확신이 그리스도인을 인도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높은 곳에 있는 것을 추구한다. 그리고 비참한 육신이 영광스런 육신으로 마지막으로 변하기를 인내로이 기다린다. 그러면서도 지금부터 그 미래에 대한 보증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부활


우리는 이미 요한이 한 말을 강조한 바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요한 5,25). 이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교는 ‘내세’나 ‘내일’의 종교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종교임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는 오늘 이 순간에 우리 각자와 인류 전체 안에서 죽음과 부활이 이루어지게 하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쁨을 느끼게 하신다.


오늘도 우리 각자와 인류 안에서 무엇인가가 죽는다. 이기심, 헛된 꿈, 낡은 관념이 죽고, 더 큰 사랑의 능력으로 부활한다. 고통 받고 수난하고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 구세주 예수님의 부활이 실현된다.


부활 역시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다. 부활은 사람 각자와 인류의 모든 선택과 결단의 기로에서 거듭 생겨난다. 부활은 투쟁을 거쳐 거듭 얻어진다. 이기심과 분열에 죽은 다음에라야 생명과 사랑과 평화로 부활한다.


신자들은 ‘지금’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고 있으며, 그 건너감의 확실한 표시는 사람사랑・인류사랑・자연사랑이다.


끊임없이 이기심과 분열과 증오를 극복하고(죽고) 단합과 사랑을 선택하는(부활하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파스카의 기쁨이다. 생명과 부활에 대한 살아 있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비관과 우울에서 벗어나게 한다. 개인주의와 다른 사람에 대한 무관심이 가진 바를 나누는 새로운 생활,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활로 변한다.




부활 제2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사도 2,42-47)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 놓더라>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


시편(117)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도다

 

제2독서(1베드 1,3-9)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는 ‘살아 있는 희망’으로 다시 태어났다>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상속 재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요한 20,19-31)

<팔일 후에 예수님께서 오시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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