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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아아, ‘정치적 사랑’이 이토록 사람을 살리고 죽이다니!
  • 전순란
  • 등록 2017-05-12 10: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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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0일 수요일, 맑음


아침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했다. 문후보가 당선된 기쁨을 누구인가 함께 나누고 싶은데 안심하고 얘기할 만한 상대로 내가 뽑혔나보다. 우리 막내 시동생, 지난 겨울 광화문광장까지 소리 없이 왔다가 촛불 하나 밝히면서 아프고 답답한 심정을 불특정 다수와 공유하여 풀어내고는 폭폭한 현실로 돌아가곤 했었다. 


이럴 때 민중이 제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등장한다면, 이 암울한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메시아가 된다. 그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이해심이 깊어 아픈 상처를 쓰다듬어 주고 싸매 주며 앞이 캄캄한 사람들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줄 사람으로 기대된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이사 42,3) 그러나 그렇게 꿈같이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와 비슷하여 우리의 사정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찾고 그와 힘을 모아 이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려 한다.


문재인대통령 취임

▲ (사진출처=한겨레)


막내 서방님은 모처럼 어젯밤 잠자리가 편했다며 형수가 사는 동네는 좀 이상하다고 한다. 좀 이상한 게 아니라 많이 이상하여 어떤 뇌구조를 가졌나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다는 격한 게시물도 많단다. 내게 더민주당의 참관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던 병수씨도 전화를 해서, 우리가 사는 함양도 28% 밖에 문 후보 표가 안 나왔다며, “30%만이라도 넘었으면 이렇게 속상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경남이 0.6%만 더 나왔어도 1위가 됐을 텐데 보수의 벽을 못 넘은 게 억울해요” 라며 펑펑 운다. 사나이가 사나이를 위해 울다니…


혹자는 노대통령을 ‘실패한 대통령’이라고도 하는데 그런 말이 안 나오도록 문대통령 임기 동안 끝까지 함께 마음을 모아 지키자고 다짐도 했다. 그 말에 나는 “노무현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빛나는 인간됨이 문재인에게서 다시 피어난 겁니다. 노무현의 공과를 되돌아보아 새 대통령은 더 잘하도록 도웁시다”라며 그를 다독여줘야 했다. 어느 정치가가 한 사나이에게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들을 수 있을까?


내게는 영원히 대통령일

세상의 단 하나였던 사람

그 사람

노무현 (유시민)


오늘 ‘노빠’이자 ‘문빠’인 미루도 “우리 동네 사람도 아닌 ‘저 경상도 사나이’에게 왜 이리도 마음을 빼앗겨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줄줄 흐르는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그 인물의 진실함, 인간됨, 그 모든 걸 알기에 지금까지 문재인을 도왔던 모든 사람들은 이제 그의 짐이 되지 말고 다들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 그가 잘 할 수 있게 몸과 맘을 다해 도와야겠다는 각오를 하잔다.



도정 체칠리아씨가 ‘문 후보의 당선을 이렇게 그냥 보낼 수는 없다’하여 내가 파스타를 해가고, 그니는 치즈와 야채를 굽고 포도주로 축배들 들었다. 친정어머니도 합석하셨다. 예전엔 TV에서 이명박근혜 화상만 나오면 서둘러 끄는 게 ‘조건반사’였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문대통령의 취임식과 연설을 시청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아아, ‘정치적 사랑’이 이토록 사람을 살리고 죽이다니!


오후 4시. 보스코는 미루네 부부와 하동 묵계의 강신부님 댁에서 오마리아 교수님과 임봉재언니랑 모여 지리산 위로 뜨는 보름달을 보면서 문대통령 당선을 축하한다고 갔고, 나는 목 치료도 받을 겸 ‘느티나무 독서회’ 모임에 빠질 수 없어 함양으로 갔다.


희정, 미해, 혜진, 윤희, 연수씨가 왔고 우리 독서회 역사상 처음으로 용환씨란 남자가 회원가입을 청하러 왔는데 책도 열심히 읽을 것 같고 말도 잘하는데 과연 우리 여자들과 잘 어울릴지 두고 볼 일이다. 우리 여자들만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잘 맞을지 걱정되어 앞으로 세 번쯤 나오고 나서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다.


10시가 넘어 귀요미 미루가 싸준 떡을 들고 보스코가 돌아왔다. 지리산 ‘산상축제’가 재미있었다며 얼굴이 무척 밝은 것으로 미루어 다들 기분 좋은 달(M00N)맞이를 한 것 같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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