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50주년을 맞이한 한국가톨릭농민회가 15일 오전 11시 경북 칠곡군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감사미사와 기념대회를 열었다. 농민회는 지난 5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고 다가올 반백 년의 세월을 준비하며, 하느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생명공동체’의 정신을 되새겼다.
이날 미사를 주례한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강우일 주교는 먼저, 대한민국 농촌에 드리운 암담한 현실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희생된 고(故) 백남기 선생의 안식을 빌며 강론을 시작했다.
강 주교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힘써온 농민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생명을 가꾸는 농사일이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돕는 중요한 사명임을 강조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농사 이야기는 전부 씨앗이나 열매에 관한 이야기다. 지구상의 모든 풀과 나무는 씨앗을 퍼트리고 열매를 맺는다. 땅을 비옥하게 하고 모든 동물을 먹여 살린다. 생명의 기초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농부는 자연을 살리고 생태계를 살리고 지구의 생명력을 풍성하게 하는 창조주의 협력자다.
강 주교는 “인류가 기계화·산업화에 몰두하면서 농업은 차츰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면서 인류가 농사를 버리고 땅을 버린 결과, 스스로 생명을 갉아먹는 상황이 됐다고 우려했다.
강 주교는 또 “지구를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을 다루는 농민”이라고 강조하며, “농민들이 생명의 역군으로서 후손들의 생명을 키우기 위한 미래 생명운동 실천에 앞장서면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 세상을 살려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는 전국에서 모인 가톨릭농민회 소속 600여 명의 신자가 참석했다. 도시공동체 신자들은 자신들의 먹거리를 지어내는 농민들의 소중함을 더 많은 사람이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농민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농촌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해준 도시공동체의 평안을 위해 기도했다.
농민들은 미사 예물봉헌으로 미역·쌀·천일염·꿀·유정란 등 교구별로 준비한 60여 종의 지역 농산물을 봉헌했다. 또한, 가톨릭농민회의 반세기 역사가 담긴 족자와 영상물도 함께 봉헌했다.
“농부이신 하느님과 생명의 길 가겠다”
미사를 통해 농사의 거룩한 소명을 되새긴 신자들은 미사 후 기념대회로 기쁨을 이었다. 정현찬 한국가톨릭농민회장은 대한민국 굴곡의 역사와 함께한 가톨릭농민회의 50년 애환을 추억했다.
가톨릭농민회는 창립 50주년 선언문을 발표하며 땅을 살리고 농업을 살리고 뭇 생명을 살리는 생명운동을 생활화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들은 생명중심의 가치관으로 생각을 바꾸고 소박한 삶을 실천해, 공존과 순환의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뜻을 모았다.
급격한 산업화로 목소리를 잃어가던 농민과 농촌을 대변했던 가톨릭농민회는 다가올 50년도 그리스도 신앙을 바탕으로 생명공동체의 가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농부이신 하느님과 함께 생명의 길로 가겠다는 가톨릭농민회의 이 같은 다짐이 성장과 발전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