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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하루하루가 새 하늘 새 땅’
  • 전순란
  • 등록 2017-05-22 1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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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1일 일요일, 맑음


새벽 2시 반에 걸려 온 보스코의 전화. 같은 방에서 자던 옆사람들 깰까봐 얼른 전화를 들고 나오려다 침대에서 쿵하고 떨어졌다. 되레 두 사람이 그 소리에 눈을 떴다. 방바닥에 박은 이마도 아프고, 사람들에게 미안도 하고, 예전 빵기 빵고가 2층 침대에서 잠뜻하다 떨어지던 시절이 생각나 웃음도 나고, 더 기막힌 건 시차를 거꾸로 계산한 보스코의 말. 한참 자는 사람을 깨워 “점심 먹었어?” 이태리가 우리보다 7시간 늦게 간다는 사실을 깜빡했나보다. 그런데 다행히 자다가 일어나는 일은 몸이 긴장하지 않은 상태여서 심하게 다치지는 않는다. 술 취한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7시에 주일미사가 있어 6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수도원 성당으로 올라갔다. 새벽에 내려오신 관구장 신부님과 세 분 신부님이 어머니들을 위하여 정성스럽게 미사를 올려주셨다. 관구장 신부님은 ‘한 사람이 바뀐다고 뭐 대단한 변화가 있겠는가’ 했는데 요즘 그게 아님을 매일매일 두 눈으로 확인한다면서 ‘하루하루가 새 하늘 새 땅’ 같다고 하셨다. 새 정권에 대해서 내가 들은 최고의 찬사 같다.


그리고 우리 가정도 수도원도 이렇게 새로워졌으면 좋겠다며 예수님이 떠난 자리에 ‘협조자’요 ‘보조자’ 성령께서 늘 함께하심을 일깨워주셨다. 그리고 영성가 헨리 나우엔의 얘기를 통해 우리도 성령을 맞이하라고 권했다.  


어느 날 나우엔이 마더 데레사를 만나 자신의 문제를 쏟아냈는데 그 고민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마더 데레사의 대답은 너무나 간결하더란다. “신부님, 고생이 많으시군요. 너무 걱정 마시고 딱 두 가지만 매일 실천해 보세요. 첫째, 매일 한 시간 동안 주님을 흠숭하십시오, 둘째, 죄라고 생각되는 일은 절대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입니다” 나우엔은 수녀님의 짧은 한 마디가 순식간에 존재의 중심을 관통했고, 그의 마음과 정신에 남아 일생동안 실천하게 되더란다.



더 놀라운 일은 마더 데레사도 평생 하느님 부재, 성령의 부재를 체험하고 영적 어두움 속에 시달리다, 주님께 간절히 매달린 끝에,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서 주님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성인들이 저렇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신앙의 흔들림에 고민하는 건 당연하며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령의 조력, 가난한 이와 고통받는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들과 함께할 때야 바로 그분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씀이다. 관구장 신부님은 미사 후에 단체사진만 한 장 찍고는 다시 바람처럼 달려 서울 관구관 행사 차 떠났다.


아침식사 후 우리는 운동할 사람, 나물 뜯을 사람, ‘솔향기길’ 걸을 사람, 이렇게 세 팀으로 나눠 각자 하고싶은 일을 했는데, 엘리와 나 율리아는 솔향기 길을 걸었다. 엄마들이 작년에 3시간 코스에 힘들었다 해서 올해는 2시간 코스를 걸었는데 좀 짧은 듯했다. 그래도 산길을 걸으며 바다와 섬, 꽃과 풀과 나무와 함께 사람들을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이렇게 만나다 보면 아들네 동기엄마들과 친해지고, 아들이 좋아하는 형제들의 가족과 더 살갑게 지내게 되는데 이런 산행을 통해 친교의 폭을 더 넓게 벌릴 수 있어 의미가 크다


서울로 돌아와 관구관에 도착해보니 축제를 하고 있다. 로마신학원에 계시던 성모영보회 원장 수녀님도, 수단에서 선교를 하시던 이해동 신부님도 만났다. 20년 전 수술한 다리가 말라리아를 3번째 앓고 나니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치료차 일시 귀국하셨단다. 신부님 그 큰 체구가 많이 왜소해져 에쿠스로 아프리카엘 갔다가 티코가 되서 돌아온 듯하다.


율리아가 집에 데려다 주어 편하게 돌아왔지만, 그 집 두 손주, 보스코와 요한이 수행까지 해준 화려한 귀가여서 가족 전부를 귀찮게 한것 같아 미안했다.


보스코는 대주교님과 바티칸대사관저에서 거행된 만찬에서 식사하고 늦게 돌아왔단다. 아틸리아대사관에 새로 부임한 최대사님도 사진에 나온다. 멀리 내 잔소리로 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이미 나온 그의 배가 더 불룩해지고 있을 게 틀림없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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