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사랑’이란 단어를 호흡처럼 언급한다. 그러나 사람의 몸이 들어간 ‘성’(性)은 달갑지 않은 주제다. 나아가 ‘쾌락’이란 단어는 더욱 거북해한다.
사랑은 분명 아름다운 것인데, 남녀가 사랑을 하면 성적인 것으로 발전한다. 서로의 성을 느끼며 쾌락이란 감정을 얻는다. 인간의 창조에는 성과 쾌락이 껴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왜 남녀가 성적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하셨을까.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설립 10주년을 기념해 25일, 서울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성의회관에서 특별 강연회가 열렸다. 로마 교황청립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원 호세 노리에가(José Noriega) 신부는 ‘인격적 사랑과 몸의 의미’를 주제로 강연하며, “인간의 ‘성’이 인간의 ‘성화’로 나아가게 한다”고 했다.
먼저, 노리에가 신부는 일반적인 남녀 간의 성을 살피며 “남녀의 성이 자녀 출산과 자기과시, 사랑 등 기능적인 측면이 있지만, 성을 기능적인 것으로 국한하면 하찮은 것이 된다”고 했다.
그는 쾌락을 ‘충만함을 향한 충동’으로 해석한 그리스 학자들을 언급하며, 성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인간 사랑의 경험이 성의 경험으로 시작된 것을 살피게 된다고 했다. 성의 수수께끼를 파헤치다 보면 참된 에로스의 진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 노리에가 신부의 설명이다.
성(性), 인간의 성화를 향해 가는 문
이성을 볼 때 우리 안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이 움직임은 내가 능동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은 우리를 이성에게 개방적인 존재로 만든다. 성에 의해 다른 사람이 내 존재를 움직이게 하면서 본래 우리의 존재가 나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노리에가 신부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 수동적 사랑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스스로가 관계적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거울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 이성 앞에 섰을 때, 내가 관계 안에서 창조됨을 깨닫게 된다. 상대는 나를 공유하고 있고, 내가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을 상대가 말해준다”고 했다.
그는 사랑으로 깨닫게 되는 스스로의 관계성이 자신의 정체성뿐 아니라, 자신의 미래가 어떨 것이란 것도 알려준다며 “한 남성이 한 여성 앞에 서 있는 것은 자신의 육신도 상대를 위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를 위해 있다는 떨림은 상대를 위해 내가 존재한다는 떨림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상호 존재방식은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친교에서 자기증여의 친교로 발전하게 한다. 사랑의 경험은 ‘우리’라는 말을 낳고, 떨림은 충만으로 향하는 길이 된다. 이 충만은 결국 “당신이 실현되기에 내가 실현된다”는 고백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비로소 참된 성취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바로 여기서 사랑의 경험이 하나의 빛으로 다가온다. 미래의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르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내 운명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 삶이 이 사람의 삶이란 것도 깨닫는다. 사랑이 빛으로 밝혀주기 때문에 안다.
노리에가 신부는 “상대가 행복한 것이 나의 행복이고 나의 행복이 상대의 행복이다. 이것은 내 마음에 그 사람이 들어있기 때문이고, 이것은 내가 능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상대방이 내 안에 살기 시작하면서 사랑은 현존하는 선물이란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결은 욕망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노리에가 신부는 성을 통해 상대가 나에게 영향을 주고 빛이 되며, 여기서 나오는 쾌락은 친교가 주는 충만함을 맛보게 해준다고 했다. 단편적인 성행위 그 이상의 기대이며 기쁨으로 쾌락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노리에가 신부는 사랑의 위대함을 설명하며 ‘정결’의 개념을 새롭게 소개했다. 그는 사랑이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 방법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정결이라고 했다.
수녀님들의 정결, 부부의 정결, 미혼자의 정결 등 여러 정결이 있다. 하지만 정결은 욕망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정결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탁월함’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결은 성적인 충동뿐 아니라 애정과 의지, 소중함 등의 욕망을 참되게 통합하는 것이다.
노리에가 신부는 남녀가 사랑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 의해 변화되기 시작하고, 그 사랑의 논리로 삶을 살면서 자녀 출산을 통해 부활의 삶으로 나아간다고 했다. 노리에가 신부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던진 질문을 다시 던지며 강연을 마쳤다.
이제 그러면 하느님이 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하느님은 왜 남녀가 성적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하셨을까. 바로 인간의 성을 통해 인간의 성화를 향해 가는 문을 마련하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