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려병사와 장애인들을 수용하는 시립 복지시설 ‘희망원’은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병든 사람들, 거리에서 구걸하다 잡혀 온 거지들, 손과 발이 뒤틀린 장애인들, 피를 토하면서 기침을 하는 폐병 말기 환자들. 그런 사람들이 초창기에 모여 시작된 곳이다.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준 국가보조금 수백억 원이 대구교구 은퇴 사제들의 안락한 생활을 위한 노후복지기금으로 흘러들어갔다. 어려운 이웃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할 천주교재단은 오히려 인권유린의 주체가 되어 비자금을 만들고 부동산 구입이나 금융 투자 등에 사용해 왔다. 모든 교구와 본당에 감사원을 따로 두어 감찰할 수 있는 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시설에서 형편없는 먹거리로 연명하며 ‘희망원이 아니라 절망원’이 되어버린 대구희망원의 비리를 가장 가슴 아파할 분은 김수환 추기경이다.
어떻게든 힘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돈을 얻어다 갖다 주고, 봉사활동을 하도록 수녀회와 연결시켜 주었다는 추기경은 가난하고 소외된 그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어 희망원에 발길이 부쩍 잦아진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동안 갈등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다며 왠지 그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이들이야말로 예수님 사랑을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 아닌가. 그렇다면 이들 속으로 뛰어 들어가 그분의 사랑을 증거 해야지 왜 머뭇거리고 있는가. 그런데 이들과 똑같이 먹고 자면서 살아갈 용기가 있는가…’
이런 고민을 몇 사람에게 털어놓았지만 그 험한 일을 왜 시작하려고 하느냐면서 말리는 사람들뿐이었지 용기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천주교대구대교구 유지재단은 2016년 10월 13일 대구시립희망원에서 발생한 비리와 인권침해 사태로 희망원 원장 신부 및 책임자들의 전원 사표 수리와 행정처리를 완료하겠다는 관련 상호 합의서의 약속을 어기고 정의로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는 가톨릭 신자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과 동고동락하며 희로애락을 나누면서 살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추기경이 하늘에서 통곡 할 일이 자행되고 있지만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고 있는 대구교구와 미온적인 전체 가톨릭교회는 부끄러움을 통감하고 시대적 변화와 쇄신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 정부는 ‘사람이 먼저’인 국정철학의 신념을 갖고 힘차게 역동적인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교회도 적폐청산을 해야 한다. 교회의 변화와 쇄신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어야 한다. 역동적으로 변해야 하고, 무엇을 쇄신해야 하는가 고민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역사는 수난의 역사요, 순교의 역사다. 불모지에 뿌려진 신앙의 씨앗이 싹트고 꽃피는 과정에서 수많은 신앙 선조가 피를 흘렸다. 인간에게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다. 그런데도 신앙 선조는 배교를 거부하고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다. 하느님을 위해서 목숨까지 기꺼이 바쳤던 신앙 선조의 순교혼이 바로 한국 교회의 얼이다.
한국 교회는 일제시대에도 여러 형태로 탄압을 받았다. 한국 전쟁 이후에는 가난과 싸우면서 시대 징표를 읽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협박과 편견에 굴복하지 않고 이 나라 민주화 운동의 선두에 섰다. 우리는 교회사를 기릴 뿐 아니라 민족의 현재를 변혁시키는 누룩이 되고, 민족의 미래를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사명을 지녔다.
그러나 “천주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사람들의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뀌었다. 순교자의 후손임을 자랑하는 우리의 선조들이 목숨까지 내놓고 지킨 한국교회의 현실은 참담하다.
유럽 교회들이 문을 닫는 곳이 많다고 하지만 영국에 사는 필자가 다녀본 로컬성당들은 주일미사는 물론이고, 평일미사에도 적지 않은 신자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평화의 인사를 반갑게 나누며 열의에 찬 믿음을 전교하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할 때가 많다.
태어날 때와 결혼할 때, 그리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평생 세 번만 교회에 나오는 유럽인들이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듣던 필자는 런던 시내와 시골 성당들 매일미사를 두루 다녀보며 잘못된 정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유럽에서 유일하게 자체 성전을 갖춘 런던한인성당은 갈수록 신자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다. 독일과 영국 사목을 서로 교환하여 일주일동안 미사 집전에 임했던 독일 교포 주임사제의 뼈있는 한마디가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성전보다 사람이 먼저다”
신자가 없는 성전은 교회라 할 수 없다. 아무리 멀리 산다고 해도 마음이 있으면 주일이든 평일이든 상관없이 기도하러 오게끔 되어 있다.
종교가 가난한 사람에게 힘과 용기가 되어주기 보다 가진자들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끼리 친목 하는 단체로 변질돼가고 있다. 한국 교회는 쉬는 교우들이 점점 늘지만 속수무책이다.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려면 세상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불의를 보고도 침묵만이 길이라며 무조건 순명하는 교회의 틀에서 벗어나야 가능할 것이다.
사회적 사건과 흐름을 신앙적 눈으로 조망하며 자유롭게 토론하고 실행하기를 꺼려하는 교회는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들의 길은 언제나 그분 앞에 드러나고 그분의 눈앞에서 감추어지지 않으리라”
“그들이 한 모든 일은 그분 앞에서 백일하에 드러나고 그분의 눈은 언제나 그들의 길을 살피신다”
“그들의 불의는 결코 그분 앞에서 숨겨지지 않고 그들의 온갖 죄악은 주님 앞에서 드러난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선행을 눈동자처럼 보존해 주시고 인간의 자녀들을 회개하도록 하신다. 때가 지난 뒤 주님께서는 일어나시어 그들에게 되갚아 주시고 그들 머리 위에 벌을 내리시리라”
인간은 무엇인가,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의 선함은 무엇이고 악함은 무엇인가? 인간의 수명은 기껏 백년이지만 영면의 시간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바다의 물 한 방울과 모래 한 알처럼 인간의 수명은 영원의 날수 안에서 불과 몇 해 일뿐이다.
회피할 수 없는 하느님의 심판과 허무한 인간사를 매일 접하고 있는 우리의 삶이 좀 더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교회의 진면모를 향해 나가야 할 것이며, 정의의 빛이 우리를 비추지 않으면 해가 우리 위로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