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일 목요일, 맑음
스무날을 두고 미세먼지와 송화가루가 쌓인 거실 바닥을 맨발로 걸을 때, 그 푸석하고 미끄러운 감촉은 내게 파충류를 맨손으로 쓰다듬는 기분이다. 나는 먼지 하나 없는 나무 바닥을 맨발로 걷기를 좋아 하기에 보스코더러 빨리 청소하자고 했더니, 먼지가 싫으면 자기처럼 슬리퍼를 신고 다니면 된단다. 그러다 먼지가 더 많아지면 구두를 신고, 더욱더 쌓이면 장화나 (서부활극에 나오는) 목이 긴 가죽 부츠를 신자고 할 게다.
서부활극에서 폭풍 같은 먼지를 일으키고 달려온 무법자가 바지도 안 벗고 박차가 달린 구두를 신은 채 침대에 턱 쓰러지듯 눕는 장면을 볼 때마다, 그 주인공을 엎어 놓고 엉덩이를 열대 쯤 철썩철썩 때려주고 싶어진다. 그러는 여자더러 슬리퍼를 신고서 바닥먼지에 기분 나쁜 생각을 털어버리라는 보스코, 그도 엉덩이 열 대 감.
오랜만에 아침 요가를 하니까 보스코의 자세가 영 안 나와 ‘다리를 쭉 펴고 복숭아뼈를 붙이고 목을 곧게 올리고’라고 했더니 “나 없이 잔소리 하고 싶어 어떻게 살았어?”란다. “그럼 당신은 올케처럼 착한 여자와 살아야겠네”라니까 “그럼 당신이 오빠 같은 사람이랑 살면 어떨까?”라고 응수한다. 기막히겠지. 지지고 볶고 던지고 깨고… 늘 평화로운 우리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좀 있을 꺼다. 다행히 보스코는 정쟁의 대상이 안 된다, 그는 언쟁에 백전백패니까.
다른 때 같으면 벌써 시차적응을 하고 남았을 그가 자주 졸고 아침식사를 하면서도 계속 하품을 하더니 “여보, 커피 좀 끓여 줘!” 커피잔을 놓고서도 졸고 있기에 빨리 마시라고 하자 “커피? 졸려서 못 마시겠어. 한소끔 자고 일어나서 마실게” 청소를 해주겠다며 아침부터 서두르더니 청소도 안하고는 코고는 소리가 난다.
체칠리아씨가 전화를 했다. 우리가 오랜만에 왔다고, 문대통령도 됐으니 축하식을 갖잔다. 청소를 하느라 바빠 라면이나 먹을 처지였는데 잘 됐다. 돼지고기 수육에 상추쌈을 해서 만나게 먹었는데 특히 아욱국이 맛있다. 대화는 자연스레 이번 선거로 갔고 프란체스코 제3회인 체칠리아는 사드 시위현장에서 본 태극기부대의 작태를 얘기하고, 고향이 김천인 스.선생은 18세 무렵 고향을 떠난 친구들이 서울, 부산, 대구, 사는 장소에 상관없이 ‘꼴보’로 굳어진 언행에 기막혀 한다. ‘박근혜 사건’을 보면서도 서울대 나온 지능과 상관없는 판단력을 보이더란다.
보수와 진보를 비교를 해봐도 보수의 끝간데 없는 증오심과 누구든 쏴죽이겠다는 폭력성에 비록 친구간이지만 섬뜩하단다.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보스코의 친구 중에도, 대개 가족사에 따라, 김천사람 못잖은 언행을 보이는 사람도 없지 않아 어려서부터 ‘정의 교육’과 ‘바른 가치관’을 배운다는 건 평생 중요하고, 그게 본인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리라는 생각이다. ‘사람이 정치로 구원받고 정치로 멸망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대로다. 나처럼 후천적인 교육(한신대 교육과 남편의 정의감)으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도 되지만… 같은 부모를 둔 우리 5남매 중에서도 하나는 태극기 부대가 되고 하나는 촛불을 들었으니까….
보스코는 오후나절 고춧대를 세워주고 나는 고추, 토마토, 가지를 손질하여 지주대에 묶었다. 날씨가 가물어 양파도 감자도 알이 형편없다. 매실도 작고 대부분 지루 떨어진다. 진이네 불루베리도 작년의 반타작이나 볼까 걱정된다고, 하동 매실도 물량이 형편없어 출하를 중지했단다. 기후가 바뀌면서 농작물도 바뀌니까, 앞으로 배추, 사과, 고추도 북한에서나 경작이 가능해진다니까 상시 먹던 농작물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통일이 필요해진다.
저녁을 먹는데 귀요미와 이사야가 왔다. 20여일 만에 만나니 무척 반갑다. 오늘부터 성심원에서 미루의 ‘지리산 힐링캠프’가 시작되는데 바쁜 시간을 쪼개서 달려와 주니 고맙다. 오랜만에 귀요미를 본 보스코는 연신 싱글벙글. 당장 남해 파스칼 형부네랑 전화해서 토요일 성심원 ‘인애축제’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