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기] ‘현충일인지 우짜아노?’ ‘보건소 문이 닫혀 있어서’
  • 전순란
  • 등록 2017-06-07 10:30:16

기사수정


2017년 6월 6일 화요일, 흐리다 비


날씨가 흐리자 마음은 맑음이다. 비 온다는 소식에 제동댁이 양파를 캐는지 집 뒤 언덕에 걸쳐진 밭에서 마른 땅에 호미 찍는 소리가 힘겹다. 얼마 후 부르는 소리에 나가보니 양파 좀 갖다 먹으란다. 우리 양파도 있긴 하지만 구워 먹는 크기 외에는 안 될 것 같아 한기조씨에게 다섯 망을 부탁해 놓았다. 밀차를 가져가 우선 먹을 것을 반 망은 족히 되게 얻어다 놓으니 넉넉한 부자다.


마지막 남은 배나무를 솎고 봉지로 싸는 보스코에게 새참을 가져갔다가 혼자서 일하는 게 재미없다고 해서 곁에 쭈그리고 앉아 쪽파를 캤다. 작년에 살레시아 윤희가 준 씨앗을 심었는데 겨우내 뽑아먹고, 시우네 파김치도 담가 보내고, 잎이 져서 캐낸 게 작년 것의 세 배다. 실하게 살찌운 알뿌리를 보며 올해는 나도 누구에겐가 나눠줘야지 하고, 윤희에게 고맙다 하고, 이렇게 노력한 것(밭고랑에 심은 게 내가 한 일 전부다)에 비해 과한 소득을 올리면 마치 누군가의 노동력을 갈취한 듯하고, 진짜 농부 하느님께 다 시킨 듯해서 미안하다.


어제 광주교구청에 ‘5·18 비움과 나눔’ 전시회 작품들 중에서 



다리가 아프다. 요즘은 신경을 써서 운전하고 돌아오면 오른쪽 무릎 밑이 땅기고 아파 보건소에서 지어준 상비약(진통제)을 먹는데 동네 아짐들이 아프다면 바구니에서 볶은 콩 꺼내먹듯 사이좋게 나눠먹는 바람에 정작 내가 아플 때는 약봉지는 비어 있다. 보건소에 가야겠다 생각 없이 쌩하니 달려갔더니 보건소 문은 굳게 닫혀있고 뜰에 핀 꽃과 길냥이가 보건소를 지킨다. 양파 밭에서 풀 뽑는 아짐에게 ‘보건소 선생님이 어딜 갔는가?’ 물으니 ‘오늘은 노는 날’이란다. 아차, 그렇지 현충일이지!


촌에 살면 날짜도 요일도 공휴일도 깜빡한다. ‘에브리 데이 홀리데이’니까. 그런데 나보다 쬐께 더 무식할 것 같은 아줌마가 ‘현충일인지 우짜아노?’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아줌마는 오늘 노는 날인 거 어떻게 아셨어요?” “보건소 문 안 닫혔소? 그거 보면 노는 날인 거 알제” 이렇게 쉬운 걸. 다음에는 달력 없어도 보건소 문 열어보고 휴일을 알렸다!


보건소를 지키는 생명들 



일기예보에는 저녁 6시부터 온다고 했는데 점심때부터 비가 조금씩 뿌린다. 이 빗살을 이용해서 할 일이 무지 많다. 우선, 어제 광주엘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니 날벌레가 처참하게 차 앞머리에 짓이겨져 있다. 산칼리스토 카타콤바 파스콸레 신부님(돌아가신)은 이런 차를 보고 ‘날벌레 공동묘지’라고 했다. 엊그제 성심원 인애축제에도 조명등 앞에서 춰대는 그 날벌레의 현란한 춤은 마지막 남은 혼을 모두 쏟아 붓는 찬란한 의식이었다. 



저렇게 우리 차 불빛에 투신한 벌레들을 그대로 데리고 다니기 송구스러워 물비누를 차에 문질러 두었다. 내 계획은 비누질은 내가 하고 씻어내는 일은 당신이 양껏 하시라고 하느님께 합작의견을 냈는데 내일 아침에나 결과를 봐야겠다.



‘자유당’이 홍준표를 당대표로 뽑을지가 ‘딜레마’라는 뉴스. 그 생각만으로도 잠이 안 온다는 또 다른 홍씨도 그 당에 있고… 새 정부에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그 작자들을 보면 국민에게 버림받을 날을 재촉하는 것 같다. 누구 말대로 “홍준표가 그 당 대표가 된다면 그 당의 이미지나 도덕성과 딱 어울린다”


미국이 트럼프를 뽑고 트럼프가 서슴없이 저런 미친 짓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데, 보수꼴통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절대지지란다. 미국에도 한국에도 근본주의 기독교도 88퍼센트가 하느님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는다나? ‘인간의 잘못된 공업 활동이 기후변화를 일으킨다’고 믿는 사람들은 겨우 28퍼센트라니, 저런 숙명론자들과 어깨동무하고 우리는 망하는 길로 직진하는 중이다. 


미국이 ‘지구 경찰’의 지위에서 트럼프 덕에 어느 새 ‘인류 공동의 적’, ‘지구 환경 공공의 적’으로 추락하였다. 문제는 이 지구호에 우리가 함께 동승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인류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지구라는 ‘공동주택’에 함께 살고 있다는 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이 점을 지적하여 “찬미받으소서”라는 회칙을 냈다가 보수언론에게서 “지구상에 가장 위험한 인물”로 찍혔다는 사실도 심각하다. 


거의 한 달만에 보스코의 집필 작업도, 우리의 아침 저녁 기도도 정상화되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