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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오늘의 6·10항쟁은 ‘호헌 철폐’도, ‘독재 타도’도 아닌 ‘최루탄 추방’
  • 전순란
  • 등록 2017-06-12 10: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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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0일 토요일, 맑음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면서 아침 일찍 산행을 떠나겠다는 율리아더러 혼자 일어나 혼자 알아서 가라고 했었지만, 모처럼 찾아온 친구라 맘에 걸려 나도 아침 일찍 일어나 고구마를 굽고 아침상을 차렸다.


창밖을 유심히 내다보던 그니가 감탄에 감탄하며 ‘눈길 닿는 곳마다 푸른 나무와 산이고 지천이 꽃’이라고 탄성을 올린다. 눈 익은 우리에게는 아주 평범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현실이 누구에게는 늘 마음에 품었던 꿈이기도 하고, 결코 닿을 수 없어 가슴에 가라앉았다. 이따금 떠오르는 슬픔일 수도 있다.



밤에 와서 달랑 잠만 재우고 보내는 게 안돼서 “나도 산에 같이 갈까?” 물으니 너무 좋아한다. 아마 나랑 함께 걸으며 하고 싶은 얘기도 있을 것 같아 부지런히 등산 채비를 했다. 그니는 인보성체수녀회 제3회인 ‘요한회’ 전국회장이자 옛날부터 수녀님들을 돕는 일을 해 와서 그 수녀회의 대부분 수녀님들과 친분이 깊다. 산청에 온 길에 함양본당 수녀님과 오늘 산행을 함께 하기로 했단다.


오도재에 차를 두고 삼봉산을 오르는 산길. 출발지에서 4km가 안 되는 거리지만 길이 험하고 가팔라서 힘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나라 산 대부분이 나무가 많이 자라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니 덜 덥고 더 상쾌하다. 


오르는 언덕길에서 남정 하나가 내려오다 수녀님을 보고는 진주 칠암동 교우라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수녀님들이 그 불편한 옷을 고집하는 것도 그 옷이 보여주는 상징성에서 오는 점이 많아서겠고, 당신들 스스로 그 옷에 걸맞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우리 집 오는 수녀님들에게는 내가 산행에 맞는 간편복을 권하곤 하는데, 대부분 좋아했다. 산행하는 몇 시간이라도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으시라는 내 선의로 받아들였으리라.


일두 정여창의 시비 


예전에 ‘지리산 멧돼지’들과 한 번 올랐던 산인데, 그 새 산이 더 높아지거나 가팔라지지는 않았을 테지만 힘은 더 들었다. 그만큼 나이는 들고 체력은 떨어진다는 신호다. 여러 남정네들이 산길에 방부목으로 계단을 만들고 있다. 빈 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길을 그 무거운 나무 덩이를 지게에 짊어지고 올라왔다니… 


두어 시간 오르고 한 시간 반을 내려왔는데 어제 서암에서 용유담 길을 걸으며 워밍업을 해선지 다리가 별로 안 아프다. 아무튼, 산에 가면 기분이 좋다. 꼭 산이어서라기보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자연스러움’이요 평화와 안식이리라. 


오도재를 내려와 함양읍에서 샤부샤부로 점심을 함께하고 율리아는 기사로서의 책무를 다 하고자 휴천재까지 날 데려다주고는 그니 집으로 달려갔다. 두 손주와 남편, 그리고 옥상에서 그니를 기다리는 서른다섯 포기의 상추가 있는 서울 공덕동집으로. 문을 열어도 푸른 산이나 진초록의 소나무숲, 지천의 꽃이야 안 보인다 해도 묵직한 바리톤의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달래는 목소리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환한 얼굴이 그니를 웃음 짓게 하려니… 꽃 중에 제일 예쁜 꽃이 역시 손주들이다.




6·10항쟁, 오늘 집회의 제목은 ‘호헌 철폐’도, ‘독재 타도’도 아닌 ‘최루탄 추방’이었단다. 연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을 직격탄으로 맞아 숨졌고, 그해의 집회 내내 그 외에도 최루탄에 의한 피해자가 속출했고, 그 집회 중에도 직격 최루탄에 이태춘씨가 머리를 맞고 고가다리에서 추락사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분신자살을 했던가! 


해거름에 텃밭에 물을 주는 보스코 


그 뒤 30년 지난 작년 겨울과 올봄 시위에서 우리는 완전히 최루탄을 추방했다(정확히는 1998년 만도기계파업사태를 끝으로 사라졌다). 그 대신 물대포가 등장하더니 지난해 백남기 노인을 직격해서 죽였다. 지난 집회에선 최루탄도 물대포도 소용없게 촛불로만 혁명을 성사시켰다. 그럼 ‘그 많던 최루탄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직도 독재가 판치는 터키나 바레인 등 10여 개 국에 천 억 원대의 물량이 수출된단다. 기왕 수출을 하려면 촛불시위나 수출하여 우리처럼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 정부나 만들 게 할 것이지!


함양은 바야흐로 양파의 계절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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