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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이젠 누구한테나 ‘왜 저러나?’ 아닌 ‘아, 저렇구나!’ 하는 시선을 보내면서
  • 전순란
  • 등록 2017-06-23 10:34:35
  • 수정 2017-06-23 11: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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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2일 목요일, 맑음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사람 각자가 하나의 우주라는데… 나사(NASA)에서 그 많은 석박사가 작은 별 하나를 탐사하려 해도 얼마나 힘들고 복잡한가! 그런데 우주에서 보면 하나의 먼지가루만도 못한 인간이 그 많은 별들을 머리에 품고 사유할 수 있는 소우주라니… 인간을 사귀면 사귈수록 마치 블랙홀 같이 다가가 닿을 수 없는 심연이요. 신비 자체이다.



그러니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작은 우주로 지어내신 하느님 손길은 실로 놀랍다. 그런 사람을, 나와 전혀 다른 땅에서 온 외계인을 배우자라는 명분을 내세워 내 틀 속에 우겨 넣으려다 보니 우리는 얼마나 고생하며 시행착오를 거치나! 더구나 저 먼 별에서 말썽꾸러기로 추방당하여 우리 품으로 귀양 온 생명들, 그야말로 어느 만화처럼 Ex-E.T.로 찾아온 자녀들을!(관련영상


어제 독서회에는 오랜만에 희정씨도 보았다. 나와 출석일자가 달라 오랜만에 봤다는 말이 맞다. 작년 겨울에 심리적으로 ‘격정의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모든 게 의미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 무위의 시간이 영원히 갈 것 같아’ 곤혹스러웠는데 봄은 왔고 겨울과 함께 모든 것은 묻히더란다. 긴 터널을 빠져 나온 듯한 자유로움에 더 넓고 깊어진 자신과 마주앉아 그 결과물을 어루만진단다. 삶을, 타인을 보는 넉넉한 시선! 이젠 누구한테 “왜 그러나?”가 아닌, “그렇구나!” 하는 시선을 보내면서 많이 편해졌단다.


처음 나를 만났을 땐 “저 언닌 어느 별에서 왔지?”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도 지구별 주민으로 여기고 별 어려움 없이 다가올 수 있다나… 늘 똑같던 그니, 아니 ‘예전의 그니가 지금의 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 역시 접수하고 바라보는 시선을 수정해야 한다. 요즘 우리 친구 중 ‘인간이라는 심연’(보스코가 집필하고 가르치던 ‘철학적 인간학’ 제목이다)에 빠져 힘들어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내 벗 희정씨는 남몰래 그 과정을 치렀는데 그 친구는 그 과정이 유난히 눈에 띄어 더 안타깝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 인생의 외길을 찾아내어 ‘무소처럼 외뿔로’ 힘차게 걸어가는 일은 오로지 혼자만의 몫이기 때문에 조용히 지켜보아야 하는 시간도 있다.



7시 30분에 휴천재를 나와 8시 20분 서울행 버스표를 끊었다. 대합실에 전국 각지로 가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멀쩡하게 생긴 50대 남자가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나님 안 믿으면 암 걸려요” 쇳소리로 시끄럽다. 견디다 못한 기도아저씨가 시끄럽다고 의자를 던지며 소리치는데도 의자를 피하며 그를 놀리듯 “예수천당…” 


그런데 맙소사! 버스를 탔는데 그 사내도 탄다. “나 망했다!” 하필 내 옆자리에 앉으려기에 얼른 가방을 놓았다. 내 앞에 앉은 그 남자 앉자마자 코를 곤다. ‘예수천당’보다 코골이가 훨 낫다. 저 사내에게 끌려다니시던 예수님도 좀 쉬고 싶으셔선지 그에게 수면제를 처방하셨나 보다. 강변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탔는데 멀리서부터 다시 들리는 “예수천당…” ‘으악! 조당꺼리가 여기까지 또 따라오다니…’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고 12시 30분 종로 연동교회 지하 식당(다사랑)에 도착하니까 이사들은 이미 식사를 끝내가고 있었다. 기장여전도회의 사무실로 옮겨 이사회를 하고, 4시 혜화동에서 엄엘리 만나 인천 월미도 고모니카 집으로 갔다. 이엘리, 엄엘리, 모니카, 나, 이렇게 여자만의 자유롭고 무한한 대화. 맛있고 정성 가득한 음식 우리 넷은 한창이나 행복했다.


6·25 영령들을 위한 원불교 교무님들의 기도


개신교 목사님들의 기도


불교의 기도


가톨릭의 기도


보스코는 미루네 베이비시터에 맡기고 올라온 길이다. 오늘 화개장터 골짜기 의신마을에서 ‘지리산종교연대’가 6·25를 맞아 “2017 지리산 생명평화 기도회”를 여는 날이다. 귀요미네가 휴천재로 찾아와 보스코를 싣고 두어시간 달려서 화개로 들어가고, 각 종단이 6·25 영령들을 위로하는 기도회 행사를 치르고, 그에게 점심을 찾아 먹이고, 빗점골로 데리고 들어가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전사한 돌서들 골짜기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팥빙수도 사먹이고, 다시 휴천재까지 실어다 집에 두고 갔단다. 저 베이비를 두고 하루 짬 내는 일이 내게는 여간 힘들지만 미루만 보면 입이 귀에 걸리니 다행히 나는 안심하고 다니러올 수 있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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