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치유는 ‘이쯤 되면 용서할 때가 되는 것’이 아닌, 깊은 관심을 갖고 오랜 시간을 들여 꾸준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 진정한 고문의 끝은 ‘고문 없는 세상’이 아닌, ‘고문의 상처가 없는 세상’, ‘고문이 모두 치유된 세상’입니다.
UN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26일)과 함께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의 개소 4주년 기념식이 23일 서울 국회의사당 헌정기념관에서 열렸다.
행사에는 ‘송 씨 일가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송정복 씨를 비롯한 고문피해자들과 국가폭력의 피해자들, 또 ‘KAL858기 폭파사건’의 유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기념식에 참석한 김근태치유센터 공동대표 함세웅 신부는 “지난겨울부터 국가적인 큰 변화를 겪고 있는 현재, 고문과 같은 참혹한 인권침해가 재발하지 않는 믿을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을 느낀다”며 “고문피해자 분들이 인고와 용기로 지켜온 인권의 불씨를 살려내기 위해 세 가지 희망을 가진다”면서 응원의 말을 전했다.
함 신부는 세 가지 희망으로 ▲모든 고문피해자들의 실상과 고통 그리고 생환하기까지의 노력과 분투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 ▲고문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치유 활동 ▲가해자에 대한 조사와 처분이 필요하다며 “모두가 간구하면 희망이 현실이 될 것을 믿는다”고 격려했다.
이날, 고 김근태 의장의 부인이자 동지로 뜻을 이어가고 있는 인재근 의원은 ‘숨’이 발전하게 도와준 모든 분과 고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고문피해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인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재고하겠다’고 밝힌 점에 대해 “이번 결단이 국가폭력피해자와 가족들의 짓밟힌 인권과 10년간 후퇴해온 민주주의를 되찾고 바로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며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다.
고문의 시간은 지났지만, 고문의 상처는 남아있는 취약한 역사에 대해 법적으로 인정하고 피해자와 가족 치유 및 지원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겠다.
인 의원은 “19대 의원 때 ‘고문방지법안’을 발의했지만, 당시 새누리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20대 의원으로 다시 인재근표 1호 법안 ‘고문방지법안’을 발의했다”면서 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노동운동가이자 고문 생존자인 유동우 선생에게 감사패가 전해졌다. 유동우 선생은 올해 3월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해설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상징’ 고(故) 김근태 전 국회의장은 1985년 전두환 군사 정권 시절,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구속돼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했다.
이때 남은 고문의 후유증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아내 인재근 의원은 당시 고문 사실을 미국 언론과 인권단체 등에 알려 사건이 전 세계에 알려졌고, 1988년 석방 후에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을 결성하는 등 민주화 운동을 이어갔다.
그는 고문의 후유증을 겼다가 2011년 12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명동성당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함세웅 신부는 “고문 피해자들의 치유를 위한 치유센터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2013년 6월 25일, 함세웅 신부, 인재근 의원, 김상근 목사, 이창복 의장, 이석태 변호사,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 등은 후원회원들과 함께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설립을 공식 선언했고, 김근태기념치유센터‘숨’을 개소했다.
치유센터‘숨’은 상담을 하며 감정을 조절하도록 도와주는 개인과 집단 치유 프로그램,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판소리로 소리를 내지르며 시작된 문화치유, 일반 의료지원 등을 하며, 이외에도 법률지원, 공개강좌 등의 활동으로 고문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치유하는 데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