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7일 연중 제8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대우탄금(對牛彈琴)이라는 한자성어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 비슷한 사자성어로 우이독경(牛耳讀經)이 있다. 우이독경이라고 하면, « 소 귀에 경읽기 »라는 것 정도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런데, 대우탄금? 소 앞에서 거문고를 탄다는 말이다. 후한시대에 모용이라는 사람이 편찬한 « 모자 »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하루, 공명의라는 악기 연주자가 야외에서 거문고를 타아가 멀지 않은 곳에 소 한 마리가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보고는 « 내 몇 곡조를 타서 저 소에게 들려주리라 »고 생각하고는 소를 마주하고 진지하게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다.
한 곡조 또 한 곡조 타는 곡마다 모두 우아하고 아름다운 곡이었지만, 소는 머리를 숙이고 풀만 수걱수걱 뜯을 뿐, 조금도 반응이 없었다. 공명의는 소에게 거문고를 타는 것은 공연한 헛수고임을 깨닫게 된다.
뒤이어, 그는 시험 삼아 거문고로 다른 소리를 내보았다. 어떤 소리는 모기나 파리가 앵앵거리는 소리 같았고, 어떤 소리는 강아지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그제서야 소는 비로소 꼬리를 휘적거리기도 하고, 귀를 쫑긋거리기도 하면서 제법 들은 체 하였다.
대우탄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심오한 도리를 담론하는 것을 비유하거나, 아무리 도리를 설명해도 전혀 알아 듣지 못하는 경우에 쓰이는 사자성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 예고를 들었던 제자들의 반응이 이와 같다. 그런데 제자들만 그러한가?
예수님의 부활이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정의의 저항이고, 거짓에 대한 하느님의 진리의 저항이고, 죽임에 대한 하느님의 살림의 저항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려면, 저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 대체 우리더러, 레지스탕스가 되라는 말인가? »라고 말하는 이들이 성당 다닌다고, 예배당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다면, 이 역시 대우탄금이 아닐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을 것이다. 오늘 복음은 안일하게 사는 것이 복이라고, 평안을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라고, 성당 다니고, 예배당 다니는 것이 기도 열심히 하고, 말 잘 듣고, 시키는 일에 토 하나 안 달고 사는 착한 사람 되는 것이라고 철떡 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도전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