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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눈으로 ‘통일’을 말한다
  • 안중근 평화기자단
  • 등록 2017-08-02 17:51:20
  • 수정 2017-08-02 18: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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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출처=YTN 생중계 영상 갈무리)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


지난 6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 학술회의 및 기념식’에 참석했다.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12년 만이었기에 화제가 됐다. 기념식 축사 역시 주목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역대 정권의 남북합의를 남북이 함께 되돌아가야 할 원칙으로 대할 것”이라며 “당면한 남북문제와 한반도문제 해결의 방법을 그간의 합의에서부터 찾아 나갈 것”이라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남북 주도하에 남북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강조했다. 남북문제에 대해 이전 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입장을 비친 것이다.

그러나 남북공동선언을 합의한 2000년도 이후 최소 10년간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은 이어지지 않았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남북합의문을 아예 무시해버렸고,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는 이름만 언급만 되는 실정이다. 때문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다.


6·15남북공동선언문, 얼마나 알고 있을까


6·15 남북 정상회담 17주년을 맞아 안중근 평화 기자단 취재팀은 지난 7월, 신촌역 앞에서 지나가는 시민을 대상으로 ‘6·15 남북공동선언’ 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 서울, 신촌 길거리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 안중근평화기자단


신촌이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주로 젊은 세대들이 설문에 응답했다. 학생 신분의 한 응답자는 “수능에 나와서 들어는 봤는데 내용은 몰라요”라며 ‘들어는 봤다’에 투표했다. 한 중년부부는 “우리는 우리 (젊을)때 했으니까 알죠. 아니면 잘 모를걸요?”라며 많은 사람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또, 머쓱해 하며 ‘처음 들어본다’에 투표하고 간 커플들도 있었다.



전체 응답자 269명 가운데 6·15 남북공동선언문을 ‘처음 들어본다’고 응답한 사람이 83명으로 약 31%, ‘들어는 봤다’가 144명으로 약 53%, ‘내용도 알고 있다’가 42명, 약 16%로 집계됐다. 6·15남북공동선언문을 들어본 사람은 절반을 넘었지만,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16%도 되지 않았다.


남북합의서의 기본이 된다는 6·15 남북공동선언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회복될 리 만무하다. 실제로 남과 북의 관계와 인식은 6·15 남북공동 선언 전후로 나눌 수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전에도 굵직한 선언과 합의가 있었지만, 각국의 정상이 직접 만나 합의를 하고 공동성명까지 낸 것은 휴전 이후 처음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건이다.


6·15남북공동선언은 5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진 569자의 짧은 내용으로 남북통일을 위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 준다. 따라서 6·15 공동선언은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이다.


6·15남북공동선언문의 의의


 다음은 선언문 주요 항목들이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 행정관을 역임한, 재단법인 여시재의 김진향 선임 연구원(이하 김 박사)은 안중근평화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1항과 2항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1, 2항은 분단의 속성을 너무 잘 꿰고 있다”며 “1항에 ‘우리민족이() 자주적으로’라는 부분은 상징적으로 통일문제를 합의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주적이라는 의미가 배타성을 지니진 않는다. 당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선언문은 기본적으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에 바탕을 둔 것”이라며, ‘자주적으로’라는 부분이 결코 외세 배격의 의미가 아님을 강조했다. 


2항은 통일 방법에 대한 합의다. 여기서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공통점이 있다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남측이 주장하는 연합제란, 2체제 2정부를 유지하면서 동질성을 향상한 후 1체제 1정부로 가는 방법이다. 북측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1국가 2체제로 연방정부가 군사권, 외교권을 가지되 2개 정부가 자치를 이루는 방법이다. 


이 두 개 주장의 공통점은 두 정부가 통일 전 단계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2체제를 유지하며 남북 간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즉 남북의 주장은 모두 통일의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방법’이다. 김 박사는 “이 둘에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실질적인 통일의 방법을 구현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합의 후, 17년…이행한 사항 있나


공동선언 이후 장관급회담을 비롯해 남북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졌고, 분단으로 이별을 했던 이산가족은 반세기 만에 상봉했다. 스포츠 부분에서는 ‘KOREA’라는 이름으로 시드니 올림픽에 공동입장 했고, 이를 계기로 남북은 단일팀을 결성하면서 국내외적으로 남북협력을 과시했다. 


공동선언 이전에는 이산가족들의 접촉이 거의 없었지만, 선언 이후에는 주기적으로 상봉이 이루어졌다. 이산가족 상봉은 김대중 정부 시절 6차례, 노무현 정부는 10차례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북의 도발 후 북한 제재를 강화했고 이산가족 상봉 횟수도 줄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각각 2차례 상봉이 이루어졌고, 2015년에 상봉 이후 지금까지는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시점에서 이산가족들은 또다시 기약 없는 만남을 기다려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단순히 이별을 했던 가족들의 만남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남북이 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하고 통일이라는 희망에 한 발짝 딛는 계기이다.


‘6·15’를 이어나가는 ‘10·4’선언


▲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는 김대중 대통령(위), 10·4남북공동선언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는 노무현 대통령(아래)


6·15남북공동선언 만큼 알아야 할 중요한 선언문이 또 있다.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10·4 남북정상선언’이다. 남한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 사이의 회담을 통해 작성됐고, 2007년 10월 4일 오후 1시,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 정상이 공동으로 8개 조항에 대해 서명했다. 6·15 남북공동선언을 계승한 10·4 선언문은 남북관계를 긍정적으로 예측하게 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천안함, 연평도 포격과 같은 북한의 도발로 인해 대북제재 정책인 5·4조치가 실행되고 이러한 노선은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져 왔다. 현재 남북관계는 6·15 정신을 잊고 모든 대화가 단절되는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대북정책과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권 때문에 통일을 위한 협력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합의 이후 시작된 개성공단…현재는?


2003년, 6·15공동선언 이후 추진되었던 노력의 일환으로 개성공단이 들어섰다. 개성공단은 분단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협력이 미비했던 남북관계를 경제적, 문화적 교류와 협력의 장으로 탈바꿈하는 데 공헌했다. 또한 남북한 모두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북한이 군사적 요충지였던 개성공단 지역을 포기했다는 사실도 파격적이었다.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었을 때도 가동이 중단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만큼 남북 모두에게 개성공단이 의미하는 바가 컸다. 독일 동방정책의 설계자이자 집행자인 에곤 바 박사는 “남북 협력 중 가장 의미 있고 통일을 위한 실효성이 있는 정책은 개성공단”이라며 “남북 간에 있어서 가장 잘한 일은 개성공단을 만들어서 운영한다는 것이다. 왜 독일은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후회가 된다”고 했을 만큼 개성공단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그러나 잇따른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2016년 2월 10일,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의 가동을 전면 중단했고, 현재 모든 남북교류의 길이 끊어진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성과는…


남북공동선언 이후 눈에 보이는 정치, 경제, 사회적 협력과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 안에 퍼진 통일에 대한 인식이다. 멀게만 느껴지던 통일이었지만, 선언문 합의와 남북교류의 활성화는 평화통일의 가능성을 느끼게 했다. 


또한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악수를 하는 장면은 많은 시민에게 감동을 주었다. 김진향 박사는 “6·15 남북공동선언은 통일이 꿈인 줄 알았던 국민들한테 눈앞에 현실이 될 수 있겠다는 감동을 주었다. 세계적으로 한반도 평화가 제도화되고 통일로 갈 수 있다는 신뢰를 주었다”고 설명했다. 


2017년 남북관계의 새로운 기점에 선 대한민국,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6·15남북공동선언의 의의와 구체적 실현 현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6·15남북공동선언은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자 우리민족이 자주적으로 통일의 방법에 대해 합의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정치·군사적 부분뿐 아니라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의 분야에서 시민단체의 자발적이고 활발한 교류는 6·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이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이런 노력은 모두 무산되었다.


6·15남측위원회는 공동선언 17주년 기념식에서 발표한 대국민호소문에 “제재와 압박만으로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사실”이라며 “우리는 정부가 어떤 국제적 환경에도 흔들림 없이 남북관계 복원과 평화협력의 길에 과감하게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현 정부는 이를 명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7월 6일 베를린연설에서 남북합의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새 정부가 해야 할 과제는 남북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것이다. 6·15남북공동선언의 의미와 내용을 교육과정에 포함하는 등 그 의의를 기억하고 여러 방면에서 교류를 재개한다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구조를 만드는데 한 발짝 나갈 수 있을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문 전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안중근 평화기자단 - 전다현 인턴기자
(공동취재 : 박지민·송종원·안권훈·임용우·유창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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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정보]
안중근평화기자단 : 마지막 순간까지 동양평화를 염원했던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며, 글과 영상 등의 컨텐츠를 제작해 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 청년안중근> 소속 기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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