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4일 금요일, 맑음
빵고신부가 부탁하여 ‘우편배달부’ 안드레아가 우리를 말펜사 공항까지 데려다 준다고 7시까지 성당 앞으로 오라고 했다. 10시까지 공항에 가면 되지만 오전에 할 일이 있다며 서둘렀다. 거기서 30분 걸리는 거리를 달려가 7시 30분에 도착하니까 12시 30분에 떠나는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다섯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화장실을 가다보니 기관총을 든 카라비니에리(전투경찰) 둘이서 구내 소성당을 지키고 있다. 그 옆에 환하게 웃는 교향님 사진도 있어 “아~ 이제는 교회도 기관단총으로 지켜야 하는 세상이 되었구나!” 생각하니 우리 교회가 과연 무슨 짓을 했나 돌아보게 된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그리스도교가 이슬람세계를 폐허로 만드는 중이어서 이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삼는 까닭에 언제부턴가 유럽 모든 성당에는 이슬람의 테러를 막는다고 성당 앞에 장갑차와 전투경찰을 배치하고 있다. 초승달과 십자가가 인류를 멸망시키는 날이 오려나보다.
공항경당엘 들어가서 보니 너무 조용하고 좋아 보스코를 오라고 해서 아침 기도와 로사리오를 하고 두어 시간 경당 안에서 책을 읽었다. 냉방시설도 너무 잘 되어 37도의 밀라노 더위를 잊게 한다. 제대를 눈여겨보니 제대보가 지리산 집 식탁보와 똑같아 얼마나 정겨웠는지… 동구권에서 온 어떤 아줌마가 갖다가 정성스레 제대를 덮었으리라.
10시부터 체크인을 한다는데 11시가 다 되어 그것도 100여명 승객을 직원 하나가 맡아서 시작하고, 보딩도 떠날 시간이 넘어서야 한다. 확실히 이탈리아에 온 걸 절감케 한다. 우리 탑승권은 가방 하나만 실을 수 있었는데 그걸 잊고 두 개를 끌고나왔으니 그럴 어쩐담? 고민을 하다가 10유로를 내고 두 손가방을 랩으로 멀칭을 하여 한 개로 만들어 내미니까 발권담당자가 잘했다면서 말없이 받아주는 여유도 역시 이탈리아에서만 가능하다.
체크인을 기다리다 두 딸을 데리고 휴가를 가는 아줌마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40여 년 전 보스코에게 ‘중세라틴문학’을 강의한 마싸 교수의 친척이다. 교수 사모님은 남편 강의를 위해, 학생 부인인 나는 남편의 수강을 위해, 운전할 줄 모르는 남편들을 싣고 와서 기다리느라 서로 얘기를 나눴고 우리 온 가족까지 집에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한 자상한 교수님 부부였다.
바로셀로나까지 두 사람 왕복이 30만원이니 물론 식사는커녕 물까지 사먹어야 하는데 승객 모두가 싸게 가고 싸게 오는 길이어서 억울하지도 않은 ‘저가항공의 현실’. 그래도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 주고 내가 운전 안하는 것만으로 대만족이다(우린 파일럿을 ‘비행기운전수’라고 불러왔다). 40분쯤 늦게 이륙했는데 20분만 늦었으니 하늘에서 서둘러 날았나보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1인용 5일치 버스표와 공항버스 왕복요금까지 사는데 43유로니 이 돈으로 우린 마패를 산 셈이다.
빵기가 예약해준 ‘에어B&B’는 시내 중심가 플라자스파냐에서 제법 가까운 곳으로, 소시민들이 그날그날 벌어 하루를 연명하는 생존경쟁의 열기가 가득했다. 곳곳에 차량통행이 금지되고 테이블이 차려져 만원 미만으로 거리의 낭만을 누린다. 문을 열고 나오면 세계 모든 인종의 얼굴이 알록달록 모자이크된 한 폭의 그림. 가우디(내가 늘 ‘아우디’라고 발음해서 아들의 핀잔을 듣곤 했다)만 아니고 하느님도 인간 얼굴을 온도 차이를 두어 예술적으로 구워 내셨다.
오늘은 바르셀로나의 첫날. 그동안 남편에게 짠순이 노릇을 한 게 맘에 걸려 하숙집 주인아줌마가 강추하는 전통 식당에서, 바르셀로나에 가면 꼭 맛보라는 파엘리아를 흰포도주에 곁들여 먹었다. 맛을 평하자면 된장을 약간 푼 모듬생선죽이다. 며칠 만에 먹는 밥이어서 어떤 밥이라도 기분 좋았으리라.
내일 점심을 위해 식품가게에 들렀는데 동남아출신 주인이 나를 한국사람으로 알아보고 반색을 하며 남편이 광주 사람이라니까 “경기도 광주? 전라도 광주?”를 되묻기도 “빨리빨리 일해서 빨리빨리 돈 많이 벌었어요”라며 자랑한다. 5년을 한국에서 부지런히 일해 이곳에 식품가게를 차렸다지만 부디 아픈 기억은 없었기를 간절히 바랐다.
옆방에 묵는 독일 아가씨 셋은 바다에서 신나게 놀고 와서는 저녁은 대충 찾아먹고서 10시가 넘자 뽐을 실컷 내고서 밤거리 구경을 나간다. 나도 한때는 그랬지만 역시 젊음이 좋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