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현재, 한국에 남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38명이다.
2015년 12월 28일, 불가역적으로 체결됐다고 하는 ‘한일 위안부 합의’로 인해 우리는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기가 더 힘든 상황에 놓였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인가?
해결 방법 중 하나는 남과 북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다시 만나게 하는 일, ‘교류 재개’의 방법이 있다. 1992년 12월 9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후 보상에 관한 국제공청회’를 기점으로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간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북한의 핵 개발로 남북 간의 마찰이 있었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민족’과 ‘성(性)’ 이라는 키워드로 남북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남북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의 만남은 일제 식민지 지배와 남북 분단의 참상을 모두 간직한 역사적인 만남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남한만의 문제가 아니며 북한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2007년까지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남북 피해자 할머니간의 교류는 여러 성과를 남겼다. 먼저, 이 교류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 세계에 알려졌다. 1993년 비엔나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는 남측의 김복동 할머니와 북측의 장수월 할머니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국적의 안루프 오헤른 할머니가 참석했다. 일본군 종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증언하면서 위안부 문제가 더 이상 아시아 동양인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됐다.
또, 남북 피해자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히로히토 일왕의 유죄를 이끌어낸 성과가 있었다.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 여러 아시아 피해국가가 연합해 최초로 일본정부를 상대로 민간 차원에서 형사 책임을 촉구했고 국제시민법정, 남북 전문가 10인의 공동검사단이 남북공동기소장을 작성했다.
제8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아시아연대회의를 통해 한국에서 위안부문제만 다룬 국제대회에 북측대표단이 참여해 처음으로 남북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남북 측은 공동선언문을 통해 모든 전쟁자료를 공개하고 ‘위안부 강제동원 부인 철회’, ‘조사법안 마련’, ‘진상규명위원회 설치하여 일본역사교과서에 위안부제도와 전쟁범죄 기록’,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탄압 중지’, ‘인권보호 평화헌법 개악 중단’ 등을 요구했다.
이처럼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때부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간의 만남이 단절됐다. 이른바, 천안함 사태와 5·24 조치 등으로 인해 남북교역이 중단되고 인도적 지원까지 차단되는 등 남북의 연대활동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2012년 북한은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에 만남을 요구하였으나 통일부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도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하는 등 북한에 대해 강경 대응을 계속했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이어가며 남북연대를 가로막는 조치가 계속 된 것이다. 그 후 2014년 심양에서 남북, 해외 공동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되고 2015년 12월 25일 평화 통일을 위한 남북여성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서 이전처럼 적극적으로 남북교류가 재개되어야 한다.
북한 측에서는 ‘12·28 한일합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의사를 표명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 또한 아베 총리에게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수용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한의 공감대 형성을 통해 남북한 피해자 할머니와의 만남을 재개하여 지난 한일합의를 무효화하는데 앞장 서야 할 것이다.
안중근 평화기자단 - 전지환 인턴기자
(공동취재 : 김영수·변용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