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김수복) 연중 제19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7-08-11 21:31:11

기사수정



제1독서(1열왕 19,9ㄱ.12-13ㄱ) 해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호렙 산 위에서 일어난 신현(하느님의 발현)에 관한 이야기다(19,1-21). 엘리야가 바알의 사제들과 대결하여 전면적으로 승리를 거둔 다음, 그들을 모조리 죽여 없앰으로써 다시는 바알숭배가 살아나지 못하도록 해버리자, 아합 왕의 부인 이제벨이 카르멜 산 위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고받고서 몹시 격노하여 엘리야를 바알의 사제들이 살해된 것과 똑같은 모양으로 죽이겠다고 맹세한다.


이 위협을 전해들은 엘리야는 급히 광야로 피신하여 호렙 산(모세가 하느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산)까지 다다른다. 호렙 산에서 엘리야는 한 동굴에 숨어 있었는데, 하느님께서 당신을 만나러 나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지나가신다. 그러나 강한 바람, 지진, 불길은 주님을 앞서가는 선구자적인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조용하고 여린 바람 소리는 사람의 가장 깊은 곳을 울리시는 하느님의 내밀하면서도 강력한 현존과 활동을 상징한다. 그 친밀함과 부드러움으로 주님께서는 당신 예언자들을 대하신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접근하고 당신을 체험하게 하시는 것은 외부적인 어떤 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온 마음을 기울여 만나는 인격적인 상봉과 관계를 통해서다. 그리스도를 보내어 인류역사를 이끌어 가는 하느님께서는 마음 깊은 데서 이루어지는 그런 인격적인 만남과 관계를 원하신다.


시편(84) 해설

정의가 그분 앞을 걸어가고 

그분께서는 그 길 위에 걸음을 내디디시리라


당신 백성을 노예살이에서 벗어나게 하느님의 선하심과 강력하심을 찬미하는 노래이다. 하느님께서는 인류에게 항상 새로운 시대의 지평을 열어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두려워하고 충성을 다하여 사랑과 정의를 실천해야만 해방과 구원과 평화를 내려주신다.


제2독서(로마 9,1-5) 해설

<내 형제들을 위해서라면 저주를 받아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도록 사명을 받은 바오로는 자기 동족에 대하여 어떤 생각과 마음을 품고 있었던가? 당시 로마 교회에는 유다인 출신 신자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신자들 사이에서는 유다인들에 대한 문제가 신학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 같다. 그러나 바오로가 설교하는 복음도 히브리인들의 구약성경으로 입증되는 복음이요, 성조들이 받은 약속의 완전한 실현이요,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하느님의 힘에만 의탁하는 신앙으로 얻어지는 의화(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음)이다. 아브라함은 그러한 신앙을 실천함으로써 복을 받고, 믿는 모든 사람들의 선조가 되었다. 그러므로 유다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그 같은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는다.


바오로는 유다인들로부터 반감을 사고 박해를 받았지만, 자기 동족인 그들에 대한 애착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기가 서슴지 않고 저주라도 받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모세가 하느님을 거역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차라리 자기가 대신 벌을 받겠다고 나선 것과 같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편파적으로 다루지 않고, 모두 구원받기를 바라며, 그 어떠한 특권의식과 불의도 용납하지 않으신다.


복음(마태 14,22-33) 해설

<주님,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행하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하고 그 동안에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서둘러서 군중으로부터 피하여 숨으신다. 군중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면서 그러한 유혹을 물리치고 당신의 길을 꿋꿋이 지키신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힘을 빌려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힘에 의해서 인류를 구원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 하느님, 바람과 바다도 그에게 순종하는 하느님의 권능을 지닌 메시아시다. 그러한 예수님께서 무엇이 아쉬워서 부당하고 불의한 세력을 등에 업거나 그러한 세력을 휘두르실 필요가 있겠는가?


오늘도 세상 한 가운데서 살아가시는 그리스도께서 취하는 길 역시 마찬가지로, 불의한 금력과 권력을 약자들 위에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효과 있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가시는 길이다.


묵상


주님을 만나러 ‘자기 자신을 벗어나는’ 용기


신앙이란 하느님 아버지께 신뢰하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행위이다. 하느님 아버지를 자기 안에 모시고 힘을 내고 용기를 내는 행위이다. 전능하고 영원한 하느님께서 당신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은총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안에 당신 자녀다운 정신과 마음씨를 길러주신다. 그리하여 자녀들에게 약속한 위대하고 놀라운 상속을 받게 하신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고 형제가 되셨기 때문이다.


이제벨에게 쫓기는 엘리야 예언자는 거의 실망에 빠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몸소 그를 호렙 산 위로 나서도록 초대하고 ‘조용하고 여린 바람 소리’ 가운데 당신을 드러내 보이신다. 이에 엘리야는 위안을 받고, 하느님께 신뢰하면서, 자기의 사명을 다시금 수행하기 시작한다.


▲ 탈진한 엘리야에게 찾아온 천사.


조각배를 탄 예수님의 제자들은 역풍을 만나 풍랑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음의 동요가 그들을 심하게 강타했다. 아무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유령이다!’고 소리를 질렀다. 동요가 두려움으로 변한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스승의 조용하고 무거운 말씀이 떨어진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 말씀은 예수님의 능력이 불의한 사람들의 세력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구약성경의 개념에 따르면 오로지 하느님만이 격랑을 잠재우고 다스리실 수 있다. ‘나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이 하느님의 권능을 가지고 계시다는 말씀이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서 당신께로 가게 해달라고 청할 때, 그의 용기와 신뢰심은 대단했다. 그러나 막상 거센 바람을 보자 겁에 질리고 물에 빠지게 된다. 그는 주님께 살려 주시라고 비명을 지른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신다.


시련을 이겨내는 신뢰


하느님께서 실의에 빠진 엘리야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듯이, 시련과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힘을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의지하는 사람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신다. 그분이 우리를 만나러 오시고, 우리는 그분을 만나러 나서야 한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 속 깊은 데로 눈길을 집중해야 한다. 살아가고 활동하는 마지막 의미를 물어야 한다. 즉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당신의 현존을 깨닫게 하고 용기를 주신다. 엘리야도 산 위에서 기도했고, 베드로도 풍랑 가운데서 기도했다. 우리도 시련과 박해를 당할 때 기도해야 구원을 받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리는 사람들 앞에 구원하시는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신다. 그들이 실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당신의 강력한 팔을 펼쳐 당신의 정의를 드러내 보이시라고 간청해야 한다. 그럴 때 그들은 용기를 얻어 하느님의 힘으로 불의한 사람들의 사슬을 부수고 격랑을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다.



연중 제19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1열왕 19,9ㄱ.12-13ㄱ)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그가 거기에 있는 동굴에 이르러 그곳에서 밤을 지내는데,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주님께서 그에게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그러자 그에게 한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시편(84)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이시고

저희에게 당신 구원을 베푸소서  


제2독서(로마 9,1-5)

<나 자신은 저주를 받아도 한이 없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저 조상들의 후손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복음(마태 14,22-33)

<물 위로 당신에게 가게 하소서>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