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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부활을 약속받은 이들에게 모든 떠남은 영원을 향한 한 걸음’
  • 전순란
  • 등록 2017-09-01 10: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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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31일 목요일, 맑음


세 식구 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가방을 싸고, 쓰레기를 버리고, ‘떠날 모드’로 올인. 보스코나 빵고는 수도생활로 다듬어져 자기 주변 정리는 완벽하다. 8시 45분 미사에서 주임신부님은 고별사 강론을 하면서 정작 떠나려니까 지나간 12년의 추억으로 울먹이신다. 그 많은 사람들을 병자성사와 장례미사로 영이별해 온 추억, 이제는 당신이 이곳과 영원히 헤어지는 슬픈 감정을 어찌 주체할 수 있으랴? 모든 떠남은 영원을 향한, 천국을 향한 한 걸음임을 다짐하신다.




미사가 끝나고 미사 온 교우들이 제의방으로 몰려와 정든 신부님께 이별의 입맞춤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성당 안에 많은 분들이 거의 7, 80에 가까운 나이어서 이번의 작별이 영별임을 서로 알기에 서러움이 컸다. 나도 교우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신부님 댁으로 가서 부모님들께 인사를 드렸다.


그분은 내 뺨에 입을 맞춰 주시며 이젠 다신 못 볼 것 같다며 울먹이셔서 나까지 울 뻔했다. 아래층 루이지 할아버지 신부님도 우리 이마에 축복해 주시며 ‘다시 못 보더라도 잘가오’라고 인사하신다. 오늘 트렌토 가까운 비고 카베디네(Vigo Cavedine)에 사는 로세타 아주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 공동묘지 경당입구에 RESURRECTURIS라는 문자가 눈에 들어온다. ‘부활을 약속받은 분들에게’라는 뜻이다. 오늘 페친 소식에서 소베로니카 아주머니도 부활을 약속받으러 먼 길을 떠나셨고, 지금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서성이시는 고비오 아버님(미루의 시아버님)도 부활을 약속받았음을 아시며 한결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고 계시리라.




10시 20분 빵고를 로마쪼(Lommazzo)역에 데려다 주었다. 교우들에게서 손주나 막내아들처럼 보살핌과 사랑을 듬뿍 받고 떠나니, 여름 더위로 고생은 좀 했겠지만 인생에 도움이 되는 많은 것을 받았고,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그리고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배워 앞으로 청소년 사목 활동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게다. 다섯 시 반에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끌고 비행장에 가서 도착하는 후배를 맞아주었단다.


우리도 11시에 관자테를 떠나 트렌토를 향해 동북쪽으로 250Km를 더 올라갔다. 북쪽으로 갈수록 산은 가팔라지고 빙하가 밀고 간 거대한 계곡이 마치 돌 자르는 칼로 벤 듯이 신비로운 절벽을 이루고 있다. 1997년 크리스마스, 60대 중반(지금의 내 나이)의 쟌카를로 신부님이 당신 집에서 함께 보내자고 우리 부부를 초대를 해서 이 길을 처음 달렸다. 그 뒤로도 신부님 댁을 대여섯 번 방문했기에 가족 전부와도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알프스 가는 길에 신부님 댁 가까운 동네에 여관을 정하고 신부님 큰누나 로세타 아주머니를 찾아뵈러 갔다. 아주머니는 ‘이 불쌍한 늙은이를 찾아주어 고맙다’며 우릴 반기신다. 아주머니는 ‘작년까지만 해도 운전을 했는데 이제는 사고를 낼 것 같아 운전대를 놓았다’ 하신다. 그분 연세가 96세! 하지만 ‘나이 이기는 장사 없다’고 2년 전에 비해 너무 쇠약해지셨기에 까닭을 물으니 한 해 사이에 아래층에 멀쩡하던 올케가 죽고 뒤이어 늘 골골하던 동생 루치아노도 따라 죽고, 트렌토에 살던 바로 밑의 엔리코마저 죽자 온 몸의 힘이 빠지더란다. 그래도 층계를 오르내리고 걷는데 먹는데 이상이 없다며 제발 하느님이 서둘러 불러주시면 좋겠단다.



재작년 여름에 미루네와 함께 갔던 가르다 호수(Lago di Garda)엘 갔다. 시즌이 완전히 끝났는지 거리는 텅 비고 호수가도 한산하다. 우리에게는 모든 장소는 반드시 사람과 연결되어 있고 그 사람에 대한 추억을 따라 많은 곳을 여행한다. 오늘도 이태 전 미루네와 함께 갔던 지점에서 사진을 찍고 ‘알바티카노(Al Vaticano)라는 식당엘 갔으나 귀요미의 발랄하고 가뿟하고 깔깔거리는 웃음이 없어 모든 게 쓸쓸하기만 하다. 덤으로 주는 식전주 식후주를 보니 이사야도 생각났다. 사랑스럽기만 한 이 끌림을 무슨 수로 막는담?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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