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 책장에는 여러 가지 패(牌)들이 진열되어 있다. 상패, 감사패, 공로패, 기념패 등등이다. 줄잡아 25개는 되는 것 같다. 대개는 내가 받은 것들이고, 일부는 아내가 받은 것들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증표 같기도 한 것들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세월의 잔상이 느껴지기도 하고, 인생의 허무함 따위가 농축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또 하나의 패를 자리 잡아 놓으면서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얄궂은 의문에 젖어본 적도 있다.
내가 사후에라도 ‘문학관’ 같은 것을 가질 수 있는 비중 있는 문인이라면 모를까, 이런 것들을 그냥 끌어안고 살다가는 훗날 자식들에게 괜한 부담을 주는 게 아닐까? 그러니 미리미리 하나씩 처리를 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또 언젠가 이웃 동네 문화원장을 오래 하신 분에게서 들었던 얘기도 생각났다. 그분은 수많은 패들을 모두 파쇄 처분하고 ‘문화훈장’ 하나만을 남겼노라고 했다. 그것도 본받고 싶은 일이긴 하나, 내게 패를 만들어 준 기관이나 단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 막상은 실행하기가 어려울 것도 같았다.
지난해 정년퇴직 때는 훈장 대상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하여간 우리 집 거실 책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갖가지 패들 가운데 요즘 들어 훈장도 하나 자리하게 됐다. 내가 받은 훈장이 아니라 아내가 받은 홍조근정훈장이다. 40년 근속을 하고 정년퇴직한 교육공무원들에게 주는 훈장이란다. 만40년을 채운 이들에게는 황조근정훈장을 준다는데, 아내는 만40년에 4개월이 부족해서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는 지난해 8월 31일 정년퇴직했다. 39년 8개월, 햇수로 40년 동안의 교원 생활을 평교사로 마무리했다. 당시에는 훈장은 바라지도 않았다. 전교조 교사인데다가 ‘교사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에 훈장 대상자가 아니라는 말도 들었다. 훈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기도 했지만, 일찌감치 포기를 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후 광화문 광장의 촛불이 세상을 바꾸어놓았다. ‘촛불혁명’이 대한민국의 진로를 새롭게 열었다. 조기 대선이 실시됐고, 새 정부가 출범했다. 무엇보다도 정의와 인권, 민주주의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아내에게도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받지 못했던 훈장을 올해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아내는 기뻐했다. 포기했던 훈장을 받게 되었으니 기쁨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진짜 큰 기쁨은 따로 있었다. 훈장을 주는 이의 이름이 문재인이라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었다.
아내는 지난해 훈장을 받지 못한 것이 천만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별 문제가 없어 지난해 훈장을 받았더라면 ‘훈장증’에 가장 혐오스러운 이름이 새겨졌을 테니, 그것을 평생 동안 간직하며 살아야 하는 것도 고역일 거라는 얘기였다.
아내가 지난해 정년퇴임 해에 훈장을 받지 못하고 올해 받게 된 것이 나로서도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일찍이 아내로 하여금 전교조에 참여케 했고, 지난해 초의 교사 시국선언에도 이름을 올리도록 유도했으니, 더구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내 이름이 오른 처지이고 보니, 아내가 포기했던 훈장을 받게 된 것은 내게도 큰 위로가 됐다.
지난해 훈장 대상에서 제외됐던 시국선언 관련 교사들이 올해 훈장을 받게 된 데에는 김지철 충청남도교육감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도 들렸다. 김지철 교육감이 전국시도교육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고, 정부에 대한 건의 절차를 밟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 문제를 충남교육감이 맨 먼저 제기하여 좋은 결괴로 나타났으니, 충남도 교육공무원이었던 아내로서는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이었다.
‘촛불’이 가져다 준 훈장
올해 충청남도의 ‘퇴임 교육공무원 정부포상 전수식’은 지난 8월 31일 오전 10시 충청남도교육청 1층 강당에서 열렸다. 이 전수식에 다수 교사들이 해외여행 등으로 빠지고 49명이 참석했다. 또 교사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려 지난해 훈장 대상에서 제외됐다가 올해 훈장을 받게 된 충남도 교육공무원은 10여 명에 달하는데, 그중에서 전수식 행사에 참석한 이는 아내 한 사람뿐이었다. 생각하면 다소 섭섭한 일이었다.
단상에 올라 김지철 교육감으로부터 훈장과 훈장증을 받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 나는 감격스럽기도 했다. 포상자의 목에 일일이 훈장을 걸어주고 훈장증을 전달하는 김지철 교육감은 머리를 깊이 숙이곤 해서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훈장증에는 대통령 문재인, 국무총리 이낙연, 행정안전부장관 김부겸의 이름과 직인이 새겨져 있었다.
행사 후에는 김지철 교육감 부부가 포상자 부부와 함께 일일이 기념촬영을 했다. 덕분에 나도 처음으로 김지철 교육감 부부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김지철 교육감을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부부가 함께 사진을 찍기는 처음이었다.
참석자들이 모두 돌아간 후 우리 부부는 교육감 방에 들러 김지철 교육감과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교육감의 책상 위에는 명패가 없었다. 교육감이 명패를 만들지 않으니 간부들의 책상에도 명패가 없다고 했다. 그게 충남도내 모든 학교들에도 파급되어 충남도 교육청은 명패 제작비로 지출되던 돈을 한해 수억 원씩 절약한다고 했다.
김지철 교육감은 생동하는 충남교육의 견인차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다른 품성과 가치관이 충남교육의 풍모를 새롭게 가꾸어 가고 있다는 평가다. 요즘은 모든 학교 현장들에서 일제의 잔재들을 정비하는 일을 벌이고 있다. 해방 후 70년이 지났는데도 교육 현장에 일제 교육의 찌꺼기들이 남아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일제의 잔재는 독재 시절의 찌꺼기이기도 하니 자연 생명이 길 수밖에 없을 터였다.
우리 부부는 아내의 훈장과 함께 충남도교육청에서 마련한 선물을 안고, 감사와 신뢰와 희망을 안은 기분으로 충남도교육청을 떠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