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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속수무책 ‘마초 가부장’⑴
  • 김혜경
  • 등록 2017-09-11 15:10:45
  • 수정 2017-09-11 15: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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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을이다. 하늘은 푸르고 높다. 옅은 새털구름은 날렵하기만 하고 부서지는 햇살아래 맑은 바람은 가볍고 가볍다. 독서하기 딱 좋은 때라지만, 막무가내 길을 나서 마구 쏘다니고 싶은 그런 계절이다. 


그러면서 생뚱맞게도 읽기가 아니라 ‘쓰기’가 떠올랐고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 1945~)가 생각났다. 아마 좋은 날씨에 자꾸 내 마음을 빼앗겨 해야 할 일들을 미루면서 게으름을 피우다보니 좀 찔렸나보다. 그는 낙제를 하고 정학을 당하면서도 영화에 빠져 지내다 간신히 고등학교를 마친다. 무역회사 통신담당으로 입사했지만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정리해고 대상이 되자 소설을 쓴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처음 썼던 그 소설로 겨우 스물셋에, 단번에 「문학계」 신인문학상(1966)과 일본의 대표적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까지 최연소로 수상(1967)하면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다. 


그러나 도시의 아파트에서 종일 방에 틀어박혀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면서 몸도 생각도 나약해진다. 그러다 문득 소설가는 직접 몸으로 일상생활을 살아내면서 고뇌도 하고 글도 써야 함을 깨닫는다. 멍하니 지내던 생활을 다잡고자 등단 이듬해 문단과 연을 끊고는 시골로 내려간다.


나는 샐러리맨 하면서 그 상을 받았다고. 출판사들이 오미코시(가마·お神輿)에 태워 ‘잘한다, 잘한다’며 구름 위로 띄워주더군. 그러면서 TV에 나가라, 이 주제로 써라, 참견해 대고. 하지만 부도 직전 회사에서 사회의 쓴맛, 단맛 다 본 내가 속을 것 같아? 소설가는 연예인이 아니라고. 글은 혼자 쓰는 거야!


오로지 그는 자기 자신과 홀로 맞서며, 오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가노의 산골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토요일도, 일요일도, 명절도 없이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달걀 두 알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는 내리 3시간 글을 쓴단다. 그다음에는 혼자 삼백 평이나 되는 정원의 꽃과 나무에 물도 주고 잡초도 뽑으면서 가꾼다고 한다. 겨울에는 눈도 치운단다. 밤 10시면 잠자리에 들고. 그래서인지 칠순의 노인 같지 않게 아주 건강하고 힘도 넘쳐 보인다. 스물세 살부터 계속해온 오십년 째의 글쓰기 습관이라는데 100권 넘게 책을 쓸 수 있었던 비결이지 싶다. 오십년을 하루같이 스스로에게 그처럼 철두철미하고 성실한 삶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철학자하면 니체를 꼽는다는 마루야마 겐지의 화두는 ‘자립’이란다.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고(孤)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단다. 가족이나 직장, 나라에 의존해서 살다보면, 내가 왜 사는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된다는 거다. 외롭다면서 엄살이나 피우지 말고 인간이라면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이룰 수 있는, ‘궁극의 목적’을 가지란다. 세상을 혼자 살아가겠다는 건 오만불손한 태도이긴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이상은 혼자 사는 방식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단다. 샐러리맨 같은 생활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거다. 한마디로, 고독을 이길 힘이 없으면 문학을 목표로 할 자격이 없다고 단언한다.


▲ 마루야마 겐지 작가. (사진출처=KBS ‘TV 책을 보다’ 갈무리)


세상에 대해, 모든 집단과 조직에 대해 홀로 버틸 대로 버티며 거기에서 튕겨 나오는 스파크를 글로 환원해야 한다. 가장 위태로운 입장에 서서 불안정한 발밑을 끊임없이 자각하면서 아슬아슬한 선상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그 반복이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p.207)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 따위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 자신을 완전한 고독 속으로 강하게 밀어 붙이라 조언한다. 그러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자신과 만나는 짜릿한 순간이 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과연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마루야마 겐지처럼 홀로 버티는 게 가능할까. 대단한 작가는 글을 쓰기위한 에너지부터가 남다른가보다. 어쨌거나 그에게서 글을 쓰려는 이의 각오를 배운다. 섣불리 소설이나 시 같은 걸 쓰겠다 덤빌 일이 아니다. 어디 글뿐이랴. 삶을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겠지.


그런 그에게서 몹시 아쉬운 건 역시 여성에 대한 시각이다. 지나친 남성우월의식이 곳곳에 배어 있다. 예컨대, “여자가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여자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라거나 “제2의 어머니에게 매달리듯 여자에게 구속당하기 싫다. 정신까지 모두 바칠 정도의 상대는 아니다.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나눌 만큼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지 않는다” 또 “여자가 이러니저러니 잔소리가 많을 때에는 한 방 주먹이라도 날려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p.214-215)라는 구절에서는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면서 결혼은 왜 했을까.


정원과 텃밭은 오롯이 힘센 남자인 자신이 가꾸고 힘이 약한 아내에게는 화분에 물주는 일조차 시키지 않는 걸 자랑삼는다. 내보기에 화분에 물주기가 집안일보다 한결 상쾌하고 재미난 일이다. 요리와 청소, 빨래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데, 아이도 없다면서 집안일도 아내와 함께하고, 꽃도 나무도 같이 키우면 더없이 좋으련만. 


그리고 비라도 내리면 마당 가꾸기는 할 필요가 없다. 쉬면 그만이다. 하지만 집안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해야 한다. 집안일이 힘들다는 건 어찌 보면 일 자체가 물리적으로 힘들어서가 아니다. 하지 않으면 금방 지저분해져 엄청 표가 나는데 아무리 잘해도 표가 나지는 않는다. 잘하는 게 본전이다. 매일매일 계속 되풀이되는 본전치기라 따분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그래도 어쨌든 하기는 해야 한다. 이런 집안일을 고스란히 혼자서 오십년을 해왔을 아내 가미야 후미코는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그 탓인지 그에게서는 올곧게 늙어온 이들에게서 보이는 여유로운 든든함보다는 고집스러운 견고함이 더 많이 느껴진다. 뚜렷한 자기철학으로 칠십이 넘도록 글쓰기에 전념하며 살아온 건장한 남자노인소설가에게서 젠더의식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문학은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⑴ “마루야마 겐지와 마초 가부장”, 기자협회보, 한국기자협회, 2017. 9. 6에서 따옴.


⑵ “문학은 1대1로 대결하는 예술…떼거리로 하는 게 아니다”, 「chosun.com」, 북스:어수웅의 Dear 라이터, 2017년 8월 18일 마루야마 겐지와의 인터뷰 중에서.




[필진정보]
김혜경 : 서강대학교를 졸업했다. 광주문화원 편집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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