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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이나라의 ‘착한 사마리아사람들’은 ‘종북좌빨’로 욕먹어 왔다
  • 전순란
  • 등록 2017-10-11 10:26:30
  • 수정 2017-10-11 14:5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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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9일 월요일, 맑음


성심원의 아침엔 은행나무가 있고 은행을 줍는 늙은 여인이 있다. 몽둥가리손에 세 개 남은 손가락으로 은행을 주워 두 손가락으로 든 검은 봉지에 담는다. 강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는 먼산을 가리우고 강건너 고속도로에서 미친듯이 달려가는 차들은 마치 목적지도 모르는체 앞차가 달려가니까 따라서 달리고 뒷 차가 따라오니 그저 달리는 형국이다. 우리 가여운 인생 같다.


단식에 모인 사람 중에는 절반가량이 천주교신자여서 새벽 미사에 참석을 했다. 오늘은 젊은 신부님이 미사집전을 했다. 요나의 얘기는 니느웨로 가기 싫어, 그곳 사람들이 구원받는 게 싫어 심술을 부리는 모습으로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우리 심보 그대로다. 남이 안 되면 겉으로는 동정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네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고소한 마음이 깔려 있을 때가 많다.




오늘 복음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젊은 신부님은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는 종교인의 물음과 ‘누가 그 가련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는 주님의 반문으로 엮어져 있다고 지적해주었다. 우린 내 이웃이 되어줄 사람을 찾아 헤매지만 내가 이웃이 되어 줄 사람은 적극적으로 찾지는 않는다.


12월 마지막 독서모임에서 내가 주재하여 함께 읽을 책이 ‘이석기내란음모사건’을 문영심 작가가 소설화한 「이카로스의 감옥」이다. 첫 대목에 함세웅 신부님의 추천사가 나온다. 이 사건희생자 구명운동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에 잠시 주저했지만 ‘이때 문익환 목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했는데 그분이라면 “지난 70년간 조작된 간첩사건으로, 용공으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고문과 불법으로 독재의 희생양이 되었소? 저런 젊은이들이 무엇으로 나라를 전복하고 어떻게 내란을 일으킬 수 있겠소? 우리도 한때 같은 죄목으로 감옥을 갔는데, 함신부, 무엇을 주저하고 있소? 저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십자가이며 부활입니다.” 하는 음성이 들리더란다.


그래서 함 신부님은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은 오늘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그들에게 돌을 던진 가해자로 고백하고, 진심으로 뉘우쳐야 하는 사건입니다.”라고 성토하신다. 내 주변에 꽤 진보적인 사람들조차 국정원이 조작하고 개처럼 짖어댄 매춘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믿는 경우가 나를 당혹시켰다. 


보스코가 교회 내에서나마 그들을 보호하는데 조력한 사실은 참 보람 있었다. 기득권에 강도당한 이 사람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그 착한 사마리아 사람마저 빨갱이로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이 일을 이유로 추기경이, 주교가 공공연히 보스코를 종북좌빨로 단정하더라는 얘기를 전해 들어서 하는 말이다.



성심원 미사에 온 소담정 도메니카를 만났다. 3개월만이다. 앞뒷집에 살며 쌓아온 정이 남다르다. 우리 모입장소로 함께 와 그동안의 밀린 얘기를 소나기처럼 쏟아냈다. 그러다 슬한재 카타리나가 집을 고치느라 휴천재에 와 있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듣고 당장 휴천재로 달려갔다. 로마에서 돌아온 짐이 제자리도 못 찾았고 빨래나 집안도 엉망이어서다. 갑자기 찾아오는 손님은 사람을 번쩍 정신 들게 한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언제라도 주변 정리가 되어 있게 살라는 산교육이다.



미루네 효소절식 사흘째. 오전엔 ‘니시 건강법. 몸관리’를 배우고 실습을 했다. 이 요가를 배우고 집으로 돌아가서 계속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하지만 한두 명이라도 있다면 나름대로 성공이다.


오후 2시에 미루네 가게에 가서 차대접을 받고 지리산 둘레길 제6코스, 곧 수철마을부터 성심원까지의 12km 구간 중 6km, 산청약초시장까지 걸었다. 성심원까지의 나머지 6km는 여자들 다섯 명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차로 돌아갔다. 역시 대한민국은 아줌마가 지킨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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