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지나고 나니 벌써 시월이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늦더위가 오래간다싶었지만 어느새 단풍나무 은행나무들이 고운 색으로 물들고 파란하늘에는 새털구름이 날아갈 듯 가볍다. 연휴동안 달콤한 휴식을 만끽한 이들도 있을 거고 이런저런 일들로 번잡하게 보내거나, 어쩌면 기간이 길었던 만큼 더 쓸쓸했던 이도 있었을 게다.
오랜만에 트럼프와 김정은의 말 폭탄이 난무하는 신문이나 뉴스를 멀리하고 「장자」를 읽었다. 마치 타임슬립처럼 잠시 다른 공간과 시간을 오간 기분이다.
유명한 종교학자이기도 한 오강남 교수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여전히 유교, 불교, 도교가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중에서 윤리와 실용을 강조하는 유교의 가르침이 ‘양’(陽)이라면, 상대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강조하는 도교의 가르침은 ‘음’(陰)이라 할 수 있단다. 그런데 도교의 가르침은 엄밀하게 말하면, 인간의 내면적 초월과 자유를 추구하는 ‘도가사상’과 주로 육체의 장생불사를 우선시하는 ‘도교신앙’으로 나뉜다고 한다. 그리고 ‘도가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게 바로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사상이란다.
장자(B.C.369-286추정)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극히 어지럽고 불안정했던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인물이라고 한다. 당시는 많은 사상가들이 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던 제자백가(諸子百家)시대로, 장자도 이런 사회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피력하던 여러 사상가들 중 한사람이었단다. 지금 우리가 보는 「장자」는 노장사상이 전성기였던 북송(北宋, 4세기) 때, 곽상(郭象)이 기존에 있던 여러 사본을 정리하고 줄여서 6만5천여 자, 33편으로 편집하고 자기 나름대로 각주를 단 것⑴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따로따로 발전해오던 노자철학과 장자철학이 2세기쯤 ‘노장(老莊)’이라 합쳐져 하나의 학파가 되었다는데, 짧은 어록이나 시, 산문형식의 「도덕경」과 달리 「장자」는 주로 이야기 형식으로 풍자와 해학, 비유와 함께 예리한 이론을 날카롭게 설파하는 게 특징이란다. 또 도가적 정치 실현을 이상으로 삼았던 노자에 비해 장자는 도가적 ‘삶’의 완성을 강조하고 있다고도 한다. 완고한 고정관념과 이분법적 사고방식, 거기에 기초한 맹목적인 가치관과 윤리관, 종교관 등을 스스로 깊이 살펴보게 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고 절대적인 자유를 찾도록 돕는다는 거다. 그러면서 장자는, 직접 “우리 얼굴을 씻어주고 단장해 주는 게 아니라 우리 앞에 거울을 들어주고 있다”(p.23)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모양의 삶이어야 도가적 ‘삶’을 완성하는 게 될까? 여기 아주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한 인물이 있다. 제5편 덕충부(德充符)에 나오는 애태타(哀駘它).
옛날 중국의 위나라에 지독히도 못생긴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자의 이름이 바로 ‘애태타’다. 그러니까 ‘슬플 정도로 등이 낙타처럼 구부러진 어리석은 사내’라는 뜻이다. 얼마나 못생겼으면 이름이 애태타일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상이 놀랄 만큼 절세추남(!)인 이 애태타를 한 번 만나기만 하면 헤어지지를 못한단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그를 떠나려 하질 않는다는 거다. 오죽하면 그를 본 여자들이 딴 사람의 아내가 되느니 그의 첩이라도 되겠다며 부모를 졸랐다고 했을 정도다. 어디 한군데 잘생기길 했나, 독특한 자기 생각이 있어 그걸 강하게 펼쳐나가기를 했나 그렇다고 무슨 권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돈이 많아 펑펑 퍼준 것도 아니고, 아는 게 많지도 않았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인기가 있을 턱이 없는데, 애태타를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그의 곁에 있으려 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왜 애태타를 만났던 남자나 여자나 모두 내 스타일이라며 같이 있고 싶어 했던 걸까?
애태타는 ‘나서서 주창하는 일이 없고, 언제나 사람들에게 동조할 뿐’이었단다. ‘화이불창’(和而不唱)이었다는 거다. ‘나’라는 자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 예컨대 물 같은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밥그릇에 담기면 밥그릇모양, 접시에 담기면 접시모양, 추우면 얼음이 되고 더우면 증발해 수증기가 되는 그런 사람이었단다.
그리고 태도가 ‘모호하고 분명하지 않다’고도 했다. 박력도 없고 결단력도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바로 제물론(齊物論)에서 말하는 ‘양행’(兩行), 즉 양쪽을 한꺼번에 보는 사람이었다는 것. 딱 부러지게 이거다 저거다 하는 게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다 포용해 감싸 안는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우물쭈물한 듯 글쎄요…하면서 머뭇거렸단다.
그때나 지금이나 강하게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 하고 무슨 일에나 능수능란한데다 빈틈없고 재빠르게 움직여야 능력 있는 사람이라 여긴다. 그렇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그런 사람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싶지는 않다. 어쩐지 향기로운 차를 앞에 놓고도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음미하는 게 아니라 냉수처럼 벌컥벌컥 마시고는 후딱 일어서야 할 것만 같아서다.
그리고 간과해서는 안 될 게 있다. 애태타가 언제나 주춤거리기만 했던 건 아니다. 노(魯)나라의 군주였던 애공(哀公)이 애태타의 사람됨을 알아보고는 재상 자리를 떠맡겼더니 온다 간다 말도 없이 곧장 떠나 버렸단다. 무언가를 분명히 해야 할 때는, 가차 없이 실행에 옮기는 인물이기도 했던 거다.
애태타는 ‘자신의 재질을 온전히 하면서도 그 덕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자연스레 드러났을 뿐!! 외부 조건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여유롭고 느긋했던 사람. 안팎으로 시원하게 트여 조화로우면서도 언제나 평정을 지켰던 사람. 그러면서 늘 즐겁고 봄날 같이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사람. 마음이 아주 고요해서 가볍게 찰랑거리지 않았던 사람. 그러나 결코 고여 있지는 않았던 사람, 너무 깊고 넓어서 그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었던 사람. 마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조르바 같았던 사람 애태타.
이러니 애태타를 만난 사람이면 남자건 여자건 모두 자기 스타일이라며 그와 함께 하려할 수밖에.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얼마나 평화롭고 상쾌할까.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겠다. 그러고 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끌리는 것도 역시 외모보다는 그 사람의 됨됨이다. 물론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에게 먼저 눈길이 가는 건 인지상정일 게다. 그렇지만 오래도록 먼 길을 같이 가고 싶은 사람, 길 위의 친구, 도반(道伴)을 꼽으라면 역시 애태타 같은 사람이다. 나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 그런 사람, 어디 없을까나.
⑴ : 「장자」오강남 풀이, 현암사, p.17-19 정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