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6일 월요일, 제주는 비
제주교구청 주최로 각 본당 지도자들에게 열어 놓은 ‘사회교리학교’에 보스코가 강사로 초대받아 다시 비행기를 탔다. 유럽에서 온지 얼마 안 되었는데 말이다. 제주야 탔나 보다 했는데 벌써 도착. “빵기 빵고 찾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딱 요만큼이면 좋겠다”는 보스코의 말. 그럴라치면 제네바나 로마를 제주도로 끌어다놓는 기적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 기적이 일어나면 과연 누가 좋을까? 교회가 좋을까, 신자가 늘어서? 그러나 그런 기적을 보고서 믿게 된 신자는 기적이라는 약효가 떨어지면 교회를 떠날 게다.
인간의 간악한 성품으로 미루어 그 기적을 상술에 이용하는 장사꾼만 살아남는다, 빠드레 삐오(Padre Pio) 성인의 기적이 있던 몬떼 로똔도(Monte Rotondo)라는 곳엘 가봤더니 조그만 시골동네가 기념품 가게와 호텔과 식당 등 나날이 성인을 팔아먹는 장사꾼의 큰 도시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로마나 유럽의 도시들도 그럴듯한 성당을 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지…
심지어는 밀라노 ‘두오모’ 성당까지도 입장료를 내야 들어간다. 입장료를 받는 우리나라 사찰들처럼 유럽의 교회는 ‘성스러운 박물관’ 외에 다른 곳이 아니고 신자들은 예배드리는 교인이라기보다 관광하는 구경꾼으로 바뀌었다. 밀라노 대성당이 사제들에게까지 입장료를 받더라고 빵고가 단단히 화를 냈더니만 관자테 신부님이 밀라노 교구청에 건의를 하여 사제는 그냥 들어가게 조처한 일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에서 사찰마다 스님들에게 입장료를 받는다고 생각해보라.
이걸 풍자한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어떤 성인 사제가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곧이듣고 겨자씨보다 엄청나게 큰 믿음으로 기도했더니만 성당이 어느 섬으로 옮겨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신문에 기적이 대서특필되고, 관광객이 밀려오고, 숙밥업소에 가게에 술집이 밀려들고, 투명수녀복을 입은 누드 호스티스들의 서빙에 섬주민은 돈방석에 앉아 온갖 타락의 길로 들어선다. 보다 못한 사제는 다시 한번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기도를 올려 그 성당을 원 위치에 되돌려놓는다던 얘기.
비행기를 타고 7000미터쯤 오르니 가진 천연자원도 시원치 않은 이 땅뙈기에 우리 백성이 맨손으로 일궈놓은 전답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우리가 대대로 어떻게 만들어 놓은 세계인데 이 땅을 자기네 전쟁놀이터 쯤으로 생각하는 저 미치광이를 생각하면 화가 끓는다. 양키 양아치가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갖고 노는 게 부아를 돋고, 더구나 그자의 개떼가 되어 짖으면 따라 짖고 물라면 물어대는 매국노들 집단이 나를 미치게 한다. 한발 떼면 곧 닿을 내 나라 내 강토를 눈물이 글썽토록 내려다본다.
제주에 도착하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일기예보는 오후 세시부터 개겠다고 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린지 10분도 안 돼 짐이 나온다. 정말 살기 좋은 나라다. 렌터카를 찾으러 갔는데 그 넓은 비행장 인접지역 전부가 ‘렌터카 영업단지’로 꾸며져 있다. 희정씨한테 제일 작은 차로 예약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경차 모닝으로 내주었다.
나는 작은 차를 좋아한다. 이탈리아에서도 첫 번 자가용은 700CC 짜리 ‘피아트 127’이었고.다음 차는 750CC ‘판다’였다. 좁은 길에 운전하기도 쉽고 특히 주차하기에는 최고. 한국에서도 ‘마티스’를 탔으니 내 능력에 딱 맞다. ‘대사부인으로서 품위를 지키시라’는 서기관들의 성화에 못 이겨 구입한 소나타가 지금까지 13년간 ‘애마’ 노릇을 하고 있다.
교구청이 예약해 준 호텔 레오에서 여장을 풀고 ‘팔보효소 생생투’로 저녁을 먹고, 7시부터 보스코가 강연하는 연동성당으로 데려주고서 바로 돌아왔다. 그는 ‘인간과 인권’이라는 제목으로 두 시간 강연을 하고 돌아왔다. 멀리 떨어진 섬이어서 많은 면에서 소외되어 왔지만 좋은 주교님과 의식 있는 신부님들 덕분에 어누 새 우리나라에서 제일 깨어있는 교구가 되었다. 보스코의 강의도 그런 변화에 보탬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