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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내일 아침 해가 떠도 눈을 뜨지 않기를…’
  • 전순란
  • 등록 2017-11-10 10: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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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8일 수요일, 맑음


새벽에서야 잠들었는데(일기 쓰느라) 오늘 할 일이 줄서 있어 아침 일찍 일어났다. 8시 반이 되자 퇴비 나르는 아저씨의 호출. 주문한 퇴비 110포를 싣고 왔는데 어디다 쌓아야 할지 묻는다. 작년에 날라 온 퇴비는 한쪽에 치우고 두 군데 나눠 쌓아 달라고 부탁했다. 한포에 200원씩 더 주면 배달을 해서 쌓기까지 해 준다. 오늘 온 아저씨가 주인이고 바쁠 때는 서너 명의 도우미를 쓴다는데 주인이 해주는 솜씨는 역시 사뭇 다르다.



대부분 초봄에 배달을 부탁하니까 주인이 몸소 와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가을에 가져다 달라고 해서 한 2년 부개 속에서 더 발효를 시켜 밭에 뿌린다. 냄새도 안 나고 채소에도 좋다. 그가 퇴비 배달을 처음 온 게 한 10년 전쯤이다. 젊은이가 얼마나 성실한지 기특하다 싶었는데, 오년 쯤 지나 장가를 가고, 이제는 다섯 살 두 살의 딸딸이 아빠가 되었노라며 가족이 생겼으니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말 한마디도 어찌나 예쁜지 커피와 간식을 주며 엄마와 아가들의 선물도 챙겨줬다.



10시쯤엔 심야전기 보일러 마그네틱이 속을 썩여 ‘한전아저씨’가 와서 점검을 했다. 자기가 점검해 보니 경동보일러에 문제가 있다 하고, 전화를 받은 ‘경동아저씨’는 한전이 문제라고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을 두어 번씩 부르다 보면 보일러는 저절로 고쳐진다. 오후에는 경동아저씨를 불렀는데 한 이틀 두고 보면 답이 나올게다.


휴천재 지붕과 이층 데크의 칠이 다 벗겨져 칠 아저씨의 견적을 받았다. 한300만원 든단다. 단독주택에 사는 호강의 값을 단단히 치러야 할 판이다.


내 머리가 지끈거리는 줄 알고 예쁜 아우님들, 윤희와 희정이가 우리 텃밭에 심으라고 양파 모종을 갖고 위문방문을 왔다. 거의 6개월간을 못 본 아우님들을 보니 신이 나서 불편했던 마음이 다 사라졌다. 우리 집에 양파 모종이 들어온 줄 어떻게 알았는지 드물댁이 어제 손수 괭이질을 해서 뒤집어 놓은 밭에 멀칭을 하자고 올라왔다. 하기야 텃밭구석에도 풀 대신 양파가 크면 좋겠기에 여름 내 버려둔 구석을 둘이서 양파밭으로 ‘개간’하였다. 퇴비를 뿌리고 괭이질을 하고 비닐로 덮어 세 고랑을 장만하였다. 




이 하루를 누구랑 놀지/ 마당에 조팝꽃/ 산에 진달래/ 누구랑 놀지?

그 여인과 놀아/ 누구?/ 아침식사 때 밥과 국을 날라다 준 여인…

오늘은 그녀와 시 속에서 놀자. (이생진, ‘아름다운 하루’에서)


「우리詩」에 오랜 만에 시를 올리신 이생진 시인의 서늘한 마음(그분은 늘 미소를 짓고 계시는데 서러울 만큼 쓸쓸하다)이 와 닿는다. 상처하신지 벌써 몇 핸가?


오늘 밤 잠이 들면/ 깨어나지 말기를,

내일 아침 해가 떠도/ 눈을 뜨지 않기를!…



요즘 부인의 치매를 보살피며 그야말로 ‘치매행(致梅行)’에 이르며 각고의 수도를 하고 계시는 홍해리 선생님이 보내주신 시집 "매화에 이르는 길"의 끝 시가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서리 내린 들녘  잠자리의 기도 같은 저 시는 마지막 연에서 우리에게 답을 준다.


오늘 밤에 잠들면/ 깊은 잠자고

내일 아침해 뜨면/ 깨어나기를! (홍해리, ‘역설’에서)


시집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가을렛슨’의 시인 채희문 선생 부인께 전화를 했다. 2년 전 뇌졸증으로 쓰러져 언어 중추를 다치셨다니 부인의 말대로, 시인은 제일 좋아하던 장난감을 잃은 아이가 되셨단다. 


지난 일 년 사이에 우리 동네에서 형제처럼 가까이 살던 ‘은경이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얼마 뒤 ‘태영아버지’도 돌아가셨고, 그래도 젊던 ‘병협이아버지’도 가신 얘기를 전화로 나누면서 ‘남편이 저렇게라도 살아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라는 한 마디는 홍해리 시인의 심경 그대론가 보다. 이 가을에 우수수 낙엽이 지듯, 멀고 가까운 거리에서 잊혀간 이들을 기억하라고, 머지않아 우리 모두 낙엽이리니 ‘죽은 이들을 사랑하라고’ 11월이 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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