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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그런데 다스는 누구 겁니까?’
  • 전순란
  • 등록 2017-11-13 10:59:35
  • 수정 2017-11-14 14:4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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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맑은 가을하늘


빵기가 제 키만 한 가방을 들고 서울에 왔다. 머리는 길어 꺼벙하고, 걔가 떠나온 곳은 지금 새벽녘이어서 시차로 눈은 반쯤 감겨 하품을 해대니 어미로서는 보기 딱해 가슴이 아팠다. 쟤는 무슨 팔자로 하루하루를 저토록 고달프게 살아야 하나? 이번에는 외교통상부의 회합에 발표를 하러 왔단다. 너무 힘들면 한숨 자고나서 해라고 일렀지만, 눈을 비비며 책상 앞에서 자판을 두드린다. 보스코는 바쁜 번역 일로, 나는 한목사가 어제 가져다 준 책을 읽느라, 우리 셋 다 책상 앞이다. 집안 분위기가 독서실이나 도서관 수준.



언제나처럼 9시 미사에 갔다. 갈수록 주일학생이 줄어든다. 부모의 관심이 없어선지 애들이 더 재미있는 것을 찾아 가는지… 처음엔 앞에서부터 다섯 의자씩, 모두 합치면 15개가 주일학생석이었는데 아이들이 줄어 의자 6개를 채울까 말까? 그나마 악다구니로 노래하는 꼬마가 딴전이라도 피우느라 조용하면 ‘무슨 일이 생겼나?’ 절로 눈길이 그리로 간다. 쟤들도 부모의 기분 맞춰 드리러 효도 차원에서 성당에 나오는 건 아닐지?


오늘 미사 강론 중에 신부님은 ‘준비성 있는’ 다섯 처녀와 ‘게을러 터진’ 처녀 다섯에 대한 복음의 비유를 풀다가 ‘부모는 애들을 위한다고 다들 돈 벌러 가서 애들은 어린이집에 맡겨지는데 걔들의 인생을 위해 정작 부모가 마련해 줘야 할 등잔기름은 돈이 아니고 애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라고, 호소했다. 돈이 많아진 단들, 바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커서 형제간에 재물 땜에 싸우고, 심지어 기업을 일으킨 늙은 아버지를 쫓아내려 재판까지 거는 자식들의 추태를 본다고 탄식하였다.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베풀 게 없어서가 아니라 나누지 못해서라며, 못 살더라도, 자녀들에게 베푸는 삶, 타인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물려주라 이르셨다.



그동안 내가 양파즙을 먹어 ‘나쁜 콜레스테롤’이 235에서 153으로 떨어졌기에, 보스코에게도 그동안 고지혈증 약을 안 먹이고 양파즙만 먹여 그 결과를 알아보러 선내과엘 갔다. 안식일교 의사님이라 토요일 문을 닫고 일요일에 병원을 열기 때문에 의외로 환자가 많다. 내 정기검진 결과표도 보여드리니 다 좋다며 보스코의 피검사만 해줬다.


엊저녁부터 금식을 한 보스코는 배가 고팠는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순댓국집엘 가겠단다. 좀 더 건강한 음식을 먹이고 싶어 ‘거긴 아침이 이어서 안 한다’, ‘일요일은 문을 닫는다’, ‘순대국이 다 떨어졌을 게다’라고 우기면서 순댓국을 먹지 말아야 할 온 갓 이유를 다 대도 기어이 그 집으로 들어섰다.





많이 배가 고팠던지 순댓국 한 그릇을 뚝딱 먹고 씨익 웃는 그를 보며 “그래 그 나이라면 먹고 싶은 것 다 먹어도 되겠지!”라고 나도 따라 웃었다.


4·19 탑 사거리를 지나 장미원까지 걸어갔다 걸어왔다. 돌아올 때는 우이천변 도로를 걸었더니 핸드폰에 불러놓은 만보기로는 7000보를 넘었다. 미루네 효소절식으로 보스코도 살이 많이 빠져 여러 해 못 입던 ‘알프스 목동옷’을 꺼내 입고서는 사진을 찍어달란다. 도봉산, 우이천의 시냇물, 그 맑은 물속에서 햇볕을 쬐는 피라미까지,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다.


그런데 이명박씨가 출국을 하며 국민의 속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내 남자는 5000원짜리 순대국밥으로도 저렇게 행복한데, 명바기는 몇 조원이라는 돈을 다 쓰려면 얼마나 살아야 할까? 그런 돈을 가졌다든가 국정원 돈을 착복했다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이 정부가 쓰잘데없는 보복정치를 하고 있다’느니, ‘그런데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고 묻는 기자들에게는 ‘상식 벗어난 질문 하지 말라’느니 하면서 쥐눈을 하다니! 그리고 ‘정치보복’ 발언을 대서특필하며 그 ‘적반하장’에 갈채를 보내는 보수언론들이라니! 


빵기가 이번에도 집에서 먹을 끼니가 별로 없다며 오늘 저녁은 탕수육에 짬뽕을 배달해 먹잔다. 중국집에서 쿠폰을 주고 갔는데 ‘이렇게 40번을 주문해서 먹으면 탕수육 한 접시를 공짜로 준다’는 문구. 우린 6개월에 한번쯤 불러다 먹으니 적어도 20년은 걸리겠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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