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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월급만큼만 하라구. 너네 회사일 너 혼자 다 하냐?”
  • 전순란
  • 등록 2017-11-17 11: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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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맑음


얼마 전 “공무원들이 월급은 엄청 받으며 일은 정말 안 한다.”는 기사를 읽기도 했고, “과도한 업무로 쓰러지는 공무원이 많으니 공무원을 충원해야 된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시골에서 귀촌한 사람들이 체감하는 공무원들의 노동 강도는 농사일을 하는 귀농한 사람들에 비해 훨씬 낮다. 그래서 ‘놀고먹는 공무원이 너무 많아 그 숫자를 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말도 있다.


내가 보기에는 농부가 자기 일을 뼛골 빠지게 하듯, 그렇게 일을 하는 공무원은 전 세계에 얼마 없을 게다. 아마 그런다면 벌써 세상이 바뀌었을 테니까. 그런데 우리집에 그렇게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빵기야, 일 좀 그만해! 한국에 와도 네 얼굴을 볼 시간이 없잖아? 월급만큼만 하라구. 너네 회사일 너 혼자 다 하냐?” “엄마, 다른 직원들도 가족들이 다들 똑같은 질문을 한대요.” 말하자면, 이런 문답은 모든 NGO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내가 연관된 단체의 직원들도 그 박봉에 그 치열한 열성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 일하는 동력은 아무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생기나보다. 말하자면 돈이 아니고 인간이다!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누구나 즐겁고 행복하고 박봉에도 힘이 난다. 내 친구 한목사도 그 가난한 살림에도 타인을 돕는 일이어서 늘 기쁘고 행복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오늘 7개월 만에 ‘목우회’ 모임을 가졌다. 총무인 로사 언니가 많이 아팠고 내가 오랫동안 나들이를 했고 인 의원은 의정활동으로 너무 바빴다. 일산 아파트를 팔고 이태원에 새집을 마련한 한데레사 언니네 집들이 겸 모임을 가졌다. 처음엔 열 명이었는데 돌아가신 분도, 지방으로 가고 요양원으로 떠난 분도 있어 여섯 명만 남다보니 허전하다.




그래도 다행은 우리 중 제일 나이 많으신 송데레사 왕언니가 아직도 건강하시다는 거다. 지난 번만해도 집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한데레사 언니가 이번엔 집에서 가까운 ‘보리굴비정식’집에서 점심을 냈다. 언니네 집에서는 커피와 티라미수, 그리고 과일을 마련했다. 음식 장만과 집안 청소가 싫어 음식 대접은 물론 다과마저 밖에서 대접한다는 요즘 애들과는 그나마 차이가 있다. 


언니네 집은 용산 미군기지가 있을 적에 미군들에게 비싼 값으로 사글세를 놓던 집으로 정원과 집구조가 외국인들 구미에 맞게 잘 지어졌다. 딸의 직장이 가까워 이곳으로 이사를 했는데 나무와 풀과 가까이 있고 싶어 1층을 샀단다. 예전에 언니가 우리 집에 세 살 때가 우리 정원의 전성시대였으니 새 집의 뜰도 언니 손에서 잘 관리될 게다.


모임을 마치고 3시쯤 강북에 사는 인의원과 송데레사 언니랑 우리집에 들렀다. 보스코를 보러 왔는데 미루도 와 있어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김근태 의장이 돌아가시고 아들네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하며 ‘외로울 사이도 없이’ 바쁘고 분주하고 밝은 생활을 하는 비결은 바로 손주들이란다. “넌 누굴 닮아서 요렇게 예쁘니?” “할머니 닮아서죠!” “넌 누가 세상에서 제일 좋으니?” “물론 할머니죠.” 그 말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그니의 얼굴엔 엔돌핀이 팍팍 나와 해님처럼 빛난다. 



97세의 친정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찾아갔는데 아들 며느리에게는 눈치만 보던 아버지가 큰딸을 보자 대성통곡을 하시더란다. “손주놈들은 늘 오줌똥 갈아주면서 이 늙은이가 오줌 한두 번 지렸다고 여기다 쳐박아두냐?”고 통곡하시더란다. 한참을 딸을 붙들고 우시던 아버지, 갑자기 “아야, 이거 사진 찍어!” 하셔서 울음판이 웃음판이 되고 말았다며 ‘역시 인생이 코메디’라는 그니. 요즘 야당의 행패로 속터지는 국회에서도 인의원을 지탱하는 건 늘 ‘긍정의 힘’이다.




104세의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한목사도, 낼모레 100세 생일을 맞으시는 시어머니를 오늘 방문하고 돌아온 미루도, 97세를 맞은 우리 엄마의 경우도, 효자가 자식의 효도를 받는다는 이치를 이 담에 누리길 축원한다. 



저녁엔 ‘정대협’ 일로 하루 종일 고생한 한목사, 우리 귀요미 미루, 보스코와 빵기가 모여 함께 보내고 각자 왔던 곳으로 돌아갔지만 뜻으로 서로 끈끈하게 묶인 맘들이다. 내일, 떠나 온 아내에게로 돌아가는 빵기는 그동안 물어 모은 먹이를 두 자식을 위해 차곡차곡 챙긴다. 다들 떠난 자리에 또 얼마간 보스코와 나 둘만 남는다. 남쪽에선 땅이 흔들려 난린데 ‘제발 어머니이신 가이야 여신이여, 화를 푸소서.’ 빌게 된다. 제발 인간들이 정신 차리고 가이아 여신을 그만 괴롭혀야 할 텐데…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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