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 HOLY SEE PRESS OFFICE >의 11월 19일자 보도자료를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보기)- 편집자주
프란치스코 교황은 19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World Day of the Poor)을 맞아 강론을 발표했다. 교황은 “삶의 여정에 필요한 양식인 ‘말씀’이라는 빵과 성체성사의 빵을 함께 받게 되어 기쁘다”고 말하며 강론을 시작했다.
교황은 성경에서 ‘그는 각자 능력에 따라’ (마태오 25, 15)라는 구절을 들어 “우리는 하느님이 보시기에 모두 ‘탈렌트’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쓸모없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으며 타인에게 무언가를 주지 못 할 정도로 가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교황은 탈렌트의 비유를 들어, 자신이 받은 탈렌트를 땅에 묻어둔 종의 잘못은 “선을 행하지 않은 태만(omission)”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종종 아무런 악한 일도 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것에 만족하며 자신이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주장하곤 한다고 비판했다.
악한 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하느님께서는 (규칙을 지켰는지 검사하는) 기차 검표원이 아니라 자신의 재산과 계획을 맡길 자녀를 찾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교황은 또한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 분의 자녀들이 다른 품팔이꾼들처럼 규칙을 지키고, 십계명을 따르는데 그쳐, 사랑이 넘치는 대답을 듣지 못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악한 종과 같이) 과거의 보물을 유지하고 지키는 데만 몰두한 사람은 하느님에게 성실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새로운 탈렌트를 가져오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 성실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을 발휘하여 타인을 돕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며 “자신에게 유용한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일, 그것만이 ‘올바른 태만’이다”라고 정의했다.
‘내 알바 아니다’, ‘내 일 아니다’, ‘사회 탓이다’라는 식의 무관심은 한 형제가 역경 속에 있는데 고개를 돌리는 일이며, 뭔가 심각한 문제가 우리를 불편하게 하니 채널을 돌려버리는 일이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악에 분개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태만’은 ‘무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가 선물을 해줌으로써 소중한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을 때, 우선 우리는 그 사람의 취향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하느님의 취향이란 ‘가장 작은이들’인 굶주린 사람, 아픈 이들, 외국인과 범죄자,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 즉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 하고 고통 받는 사람이며 역경 속에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이러한 무관심을 물리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장 작은 예수님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선하고 성실한 친구가 되는 것
교황은 또,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잠언 31, 20)는 성경구절을 들어 “진정한 힘이란 꽉 쥔 주먹과 팔짱이 아니라 바삐 움직이며 가난한 이들과 주님의 상처 입은 육신에 내미는 손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세간의 눈으로 볼 때 가난한 이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하늘의 길을 열어주는 것은 바로 이들이며 이들이야 말로 ‘천국에 가는데 필요한 여권’ 그 자체다. 가난한 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빈곤, 즉 영적 빈곤과 물질적 빈곤을 퇴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황은, 결국 빈곤을 퇴치하는 것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진정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면서 ‘삶에서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교황은 끝으로 “우리 자신을 위해 피상적인 것을 쫓지 말고, 타인을 위한 선을 찾도록 하자. 그리하면 소중한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채워질 것이다”라고 말하며 강론을 마무리했다.